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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n 02. 2023

연예인 정신건강 얘기했다 엔터사 퇴사한 이야기

예능 피디가 되기 전 마지막 직장 생활

피디 지망생이던 대학 졸업반 시절 우연히 SM 엔터테인먼트의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부서는 해외마케팅 부였다.


사실 어릴 때부터 피디가 되고 싶었으나, 몇 년 연속 서류/면접 탈락에 지치던 차에 천재적인 합리화로 비록 피디는 아니지만 엇비슷한(?) 계열의 엔터 쪽 일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름 1년 간 열심히 일했고, 예쁨도 받았다.


그러다 1년 인턴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사내 트레이닝 팀 정규직 제안을 받았다.

정식 면접 자리는 아니었는데, 팀장님께서 트레이닝 팀에 가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캐주얼하게 물어보셨고 고민 없이 답했다.


"연습생이나 소속 아티스트의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관리해 주는 멘털 케어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 답변을 듣고 난 팀장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분명 1년 간 나를 예뻐해 주셨었는데...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면 이 답변 하나로 퇴사를 종용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답변에 대해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엔터사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는 '아티스트'다.

당시 아티스트의 정신 건강을 1순위로 챙겨야 한다는 내 답변이, 소속 아티스트를 잠정적으로 멘털에 문제가 있는 존재로 취급했다는 것이 부정적인 반응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인턴이었기에 당시에 소속되어 있던 아티스트를 가까이서 장시간 본적이 거의 없다. 그런 주제(?)에 멘털 케어를 해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얘기를 했으니 얼마나 얼토당토않게 보였을까 싶다.


내가 왜 저런 답변을 했었는지 10여 년 만에 곱씹어 보자면,


비록 아티스트의 생활을 밀접하게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지만, 상상해 보자면 데뷔 시점 등 그 모든 것이 기약되어 있지 않고, 내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그룹의 특성상 주력 멤버가 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겪게 될 개인적 박탈감이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안 핏줄 내에서 우열만 갈려도 개인의 인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모르는 특정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나의 순위와 가치가 매겨지고 그것을 낱낱이 내가 알게 되는 직업이 연예인의 본질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인으로서의 장점도 많겠지만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직업의 특성상, 트레이닝 팀을 제안받은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건 '멘털 케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팀장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답답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멘털 케어란,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도 없는 영역이거니와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보고 낸 의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팀장님의 싸늘한 표정을 보았고, 나는 그 대화를 끝으로 엔터회사에서 나와서 다시 예능피디 준비를 시작했고 2년 여를 준비한 끝에 예능피디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예능피디가 되고 나서도 팀장님과 밥도 먹으며 잘 지내는 관계고 여전히 감사한 분이다.


하지만 저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렇게 같은 답변을 할 것만 같다.


아, 물론 앞에 "가시적인 아웃풋이 나오는 트레이닝과 관리가 중요함을 알고 있지만~"이라는 멘트를 덧붙이긴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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