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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13. 2023

편의점 아저씨도 몇 권씩 책을 내는데

봉달호 『셔터를 올리며』,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회사 도서관의 신관코너는 꼭 들르는 편이다.

신간을 살펴보던 중 ‘봉달호’라는 이름이 보였다.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몇 번 본터라, 봉달호=편의점 아저씨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이전에 냈던 이 분의 신간도 도서관에서 봤었는데 굳이 대출하진 않았었다. 기고 글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라는 건방지고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에 발견한 신간을 대하는 마음은 좀 달랐다.

‘최근 신간 말고 예전에 낸 책들도 섞여서 꽂혀있는 건가...?’라고 무심히 생각하며 맨 뒷장을 펴니,

출간 연도가 바로 올해, 2023년이었다.


내용도 기고글들과 달리, 긴 호흡으로 부모님들로부터 시작된 장사의 연대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가 장강명이 추천사에 “소설가로서 심각한 직업적 위기감을 느꼈다.”라고 쓰여있는데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실패와 치부를 덤덤히 기록해 낸다는 게 여전히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가 편의점을 차라기 전 마지막 실패(?) 작인 중국에서 차렸던 식당인 <하하호호>는 방송 론칭부터 종영까지의 나의 실패기와 흡사하기도 해서 많이 뜨끔했다.

먼저 상호, 식당 이름을 ‘하하호호’라고 지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갈빗집 이름을 대체 왜 그렇게 지었을까. 상호 아래 ‘한국식 불고기’라고 작은 글씨로 설명을 달아놓기는 했지만 그 이름을 듣고 누가 갈빗집을 연상할 수 있을까. 소주장학생 이후로 작명 2연패다.
(중략)
요리를 단품으로 만들어 내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규격화·체계화·상품화하여,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놓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중

핑계를 대기는 참 쉽다.

휴가철이라서, 경쟁 드라마가 세서, 회사가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등등.


이런 핑계를 대면 위로받기도 쉽다. ”그래그래 너는 너무 잘했는데 운이 없었네. 회사가 너무 했네. “ 등등.

일시적으로 위안이 되는 가벼운 말들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 끝은 굉장히 공허하다.


남들도 나에게 직언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진짜 원인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걸 직시하는 게 굉장히 수치스럽고 부담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회피는 회피를 낳고 결국 자신감은 더 떨어지게 된다. 회피보다는 일단 큰 칼로 나를 찔러서 피가 나더라도 다시는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지 않을 쪽을 택하려고 한다. 어렵지만 이 책의 필자가 그랬듯 그렇게 해봐야겠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24시간을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재로 몇 권의 책을 묶어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 만으로 나에게 의미와 계기가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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