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은지 피디 Sep 14. 2022

당신은 '정말' 여행을 좋아합니까?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_정지우 지음

사람들은 흔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마치 국민 대부분의 취미가 ‘음악 감상’인 것처럼 말이다. 종종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괜히 난감해지곤 했다. 그냥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내가 과연 여행을 좋아할까. 여행이 뭐 길래.


사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대답처럼 흔한 대답도 없을 것 같다. 과연 그런가. 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여행할 때만큼 스트레스받을 때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그것을 지우기 위한 (몹시 귀찮은) 여행 계획 세우기, 생각지 못한 변수에서의 당황 및 무기력감 이런 스트레스를 돈과 시간을 들여서 굳이 하는 게 사실 여행의 실체 아닌가.


내가 유리 멘털이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쉽게 여행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저러한 일련의 스트레스를 뻔히 알면서 여행을 즐긴다고 말하기 스스로 가증스러워서 말이다. 나 스스로 가장 가증스러웠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스물두 살에서 스물일곱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소위 말하는 ‘스펙녀’였다. 거의 모든 시간을 대학 동아리 외에 외부 활동 (교환학생, 기자 인턴, 광고회사 인턴, 엔터테인먼트 인턴, 라디오 조연출, 해외 활동 등등)을 쉴 새 없이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넘치는 스펙으로 인해 이력서에 어떤 한 줄이 더 임팩트 있을까 골라 쓰는 ‘청춘’이 돼버렸다.




화려한 스펙은 또 다른 화려한 스펙을 고이 모셔다 주었고 나의 면접은 ‘스펙 쇼핑’으로 변질됐다. 사실 나는 그다지 진취적이고 열정으로 가득한 이십 대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성공적인 쇼핑을 위해 늘 그런 척 치장해왔던 것 같다. 사회가 요구하는 청춘의 모습이 너무나 단조롭고 명확했기에 그다지 힘이 없는 난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외국어는 기본에 준수한 학점으로 성실도를 서류 전형에서 어필하고 면접 때는 당찬 목소리와 웃는 얼굴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십 대를 연기하되 너무 튀어서 ‘들이면 다루기 까다로운 아랫사람’으로 보여선 안 된다. 수 십 번의 면접을 본 결과 얻은 결론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냉소적이고) 세상을 그저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에 안정적으로 발을 디디기 위해 가증스럽게 연기하며 ‘쇼윈도 청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아니 오히려 그러한 나의 얕은 속임들이 통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 누구나 사교적이고 열정 가득하고 밝고 성실한 사람과 일하고 싶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예전에 스터디를 같이 했던 오빠가 만약 저런 사람이 있다면 약에 취한 사람일 거라고... 나를 위로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도 ‘청춘'이라는 단어에 부여된 온갖 환영들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원하는 이상적인 청춘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부합되면 유능한 인재고 그렇지 못하면 무한 구직자로 쓸쓸히 떠돌 수밖에 없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면접장을 나오며 스스로 가증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청춘들이 여전히 많겠지. 아니 더 많겠지.


소심하고 어둡고 냉소적이어도, 밝고 건강하지 않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깝고 귀한 청춘인데 말이다. 물론  역시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어울리지도 않는 정장을 차려입고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 ㅇㅇㅇ번 누구누구입니다^^“라고 웃으며 면접장에 입장할 테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이 행복한 걸 누가 좋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