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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21. 2022

당신이 유독 자식 앞에서 악마가 되는 이유

그냥 분노하는 건 없다. 당신의 내면의 서랍에 분노 요인이 분명 들어있는데 모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책을 쓴 조태호 교수님의 북 토크에서 들었던 얘기다. 팬심으로 수줍게 참여했던 북 토크 후기는 여기에

암튼, '그냥 화가 난다'라고 하지만, '그냥'은 절대 없고 그 순간 나의 분노를 자극하는 과거의 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말을 듣는 동시에 과거에 크게 혼났던 트라우마가 생각나 분노로 표출되는 건데 본인만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나도 거의 90%의 확률로 아이한테 화가 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직접 한글이나 수학을 가르칠 때이다. 내가 봐도 미친 여자 같을 때가 많다. 심지어 너무 화가 나서 빈 방에 들어가서 주먹으로 벽을 치고 나온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데 어찌나 세게 쳤는지 며칠간 손이 아플 정도였다. 


저 북 토크 이후 나의 분노의 도화선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일렬로 줄을 서서 물고기 그림이 몇 마리인지 맞추고 제 자리로 들어가는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독 소심했던 나는 답을 똑바로 말하지 못했고, 그 순간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 정수리를 주먹으로 정말 세게 내리쳤다. 아프기도 했지만,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본 적 자체가 처음이기에 너무 충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선 굉장히 창피했던 것 같다. 지금도 유독 그 선생님의 이름만큼은 너무 생생히 기억난다. 조순애 선생님. 


워낙 소심했던 아이라 맞고도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도 못 하고 2년쯤 지나서 얘기했더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뜻밖의 얘기를 했다.

촌지를 안 줘서 그런가?

이때 나는 '촌지'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 




숫자를 틀리는 7세 아이의 모습에서 그때 맞고도 한 마디 못했던 과거의 내가 떠오르는 걸까. 그래서 내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분노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것의 치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혈연으로 연결된 자녀는 사실상 객관적으로 정서상 분리가 어렵다. 때문에 '이 아이가 아직 학습이 부족하구나'라는 팩트에서 그치기가 어렵다.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여기에 과도한 상상력을 더해 '나중까지 이러면 어쩌지.' 더 나아가 '나중에 얘는 대체 뭐 먹고살지'라는 장래 걱정까지 자동 연결되니, 거리 둘 여유조차 없이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거기에다 굉장히 불편한 사실이긴 하지만 내가 분노해도 나를 떠날 수 없는 존재 중 하나가 자녀다. 관계상 필연적으로 약자인 존재에게 마음 놓고 제어 없이 분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 폭력도 대부분의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런 것들의 분리에서 어려움을 충분히 느낀 나는 정서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바로 20여 년만에 다시 찾게 된 구몬선생님이다. 뻔하디 뻔한 학습지 시장이 이렇게까지 롱런하는 이유를 전혀 몰랐는데, 인간 본성이 개조되지 않는 한 영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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