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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25. 2022

책 읽기 아까운 계절, 본격 가을 타기 좋은 책

최애가 추천해준 양귀자의 《모순》

책 읽기 아까운 계절이다.


바람이 적당히 쌀쌀해서 설렘과 서글픔이 수시로 교차해서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이번 주엔 세 권 정도 책을 읽었다. 독서의 계절이라서가 아니라 사실 책 읽는 것 외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모른다. 책 말고 다른 재미를 찾는 것이 앞으로 내 인생의 꽤 큰 과제기도 하다.

<모순>_양귀자 지음



어쨌든 잊고 살았었고, 최애의 추천이 아니었더라면 안 꺼내 들었을 책 양귀자의 《모순》

너무 재밌어서 그날 다 읽어버렸다. 98년도에 쓰인 책인데, 신경숙의 《외딴방》과 헷갈려서 이미 읽었다고 착각했다.


 책이 좋았던 이유는 일단 굉장히 쉽다. 쉬운 책은 남는  사실 없을 때가 많은데,  책은 읽고 나면 사랑과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것도 A or B 선택지가 있어서 쉽게 몰입할  있는 방식으로. 따라서 호감이 있는 누군가와 같이 읽고 얘기해볼 만한 책이다. 뭔가 KBS 주말 연속극 같은 느낌이랄까. 엄청 쉬우면서도, "걔가 나쁜 놈이야", "아니야, 걔가  나빠."라고 쉽게 몰입하고 참견할 만하다. 그러면서 아주 심플하지만 불변의 통찰도 있고 있을   있다. (아래 필사 참고)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받는 건 금방 익숙해진다. 왜냐면,  누구나 나 자신은 소중하니까, 당연히 내가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부지불식간에 강하게 믿는다. 그런 나에게 생채기를 낸 사람은 부들부들 떨며 용서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 반면 내가 남에게 준 상처를 헤아리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길의 끝에 서 있는 진모를 향해 마주 걸어가면서 나는 콧날이 찡해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낯선 곳에서 낯설게 만나는 혈육은 언제라도 늘 안쓰럽게 보이는 법이었다. -p.123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감정.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초라한 혈육의 모습 대한 짠한 마음. 그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데, 특히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가끔은 이러한 감정 소모를 물리적으로 피할 수 있는 외동이 바람직한 건가 고민이 든다.


그나저나, 이 책을 추천해준 아이가 제목이 왜 '모순'인가 끝까지 모르다가 마지막 부분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었는데. 그 이유가 가장 유복한 캐릭터인 이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엄마와 일란성쌍둥이지만 팔자는 180도 달랐던 곱고 고상한 이모.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자신의 엄마가 폭력 남편도 모자라 아들 옥바라지까지 할 동안, 집안 전체를 꽃으로 꾸미며 살았던 이모. 그런 이모는 오히려 맞으며 살더라도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았던 언니가 부러웠다는 말을 남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치열하게 살진 않지만 여유로운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긴 삶을 살았을 이모. 생각할 시간이 길어지면 누구나 깊이 침잠하게 되고,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나의 한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홀로 침잠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중간중간 이모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때 위태롭다고 느꼈다. 어쩌면 이 결말은 애초에 모순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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