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무시무시한 흑색종의 공포
사실 생긴 줄도 몰랐는데, 샤워하다 우연히 보니 붉은색의 선명한 점이 발바닥 한가운데에 생겼다. 무심코 넘길 수 있었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흑색종'의 의심 조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1) 갑자기 생겼다. ->내 얘기.
2) 부위가 손바닥 혹은 발바닥이다. ->발바닥.
3) 색깔이 순수 검은색이 아니다 ->헉, 내 얘기 22 = 붉은색이었다.
4) 모양이 깔끔한 원형이 아니다. ->헐, 내 얘기 333 = 긴 타원형이었다.
5) 표면이 울퉁불퉁하거나 튀어나와 있다. ->이건 아님.
거의 80% 이상이 흑색종 의심 조건에 부합했다. 불안했다. 거기에 아빠는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암 가족력까지 뭔가 의심하기에 조합이 완벽해 보였다. 암 가족력이 있는 집안의 사람이라면 시시 때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이 마음에 공감하려나.
대학교 때 동아리 선배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자신의 어머니가 유방암 환자이기 때문에 선배도 당연히 걸릴 거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당황했던 기억. 그때는 아빠가 암에 걸리기 훨씬 전이었다. 그래서 선배가 좀 유별나고 꽤나 앞서서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닥쳐보니 그렇지 않다.
엄마도 걱정이 되는지 얼른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라고 나를 재촉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여의도 성모병원에 전화해봤는데 제일 빠른 진료가 10월 초라고 한다. 잔잔한 불안감이 고조된다. 어쩔 수 없지란 마음으로 회사 근처 피부과라도 가보기로 했다. 간호사님이 진료 사유를 묻길래, "발바닥에 점이 생겼는데, 혹시 흑색종일까 싶어 조직검사를 하기 전에 사전 진료를 받고 싶다"라고 안궁일 테지만 구구절절 진정성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병원,
"발 올려 보세요. 한 번 볼게요."
(두근두근)
.
.
.
"아, 피난 거네. 점 아니에요."
"네?"
"뭐 밟으셨나 봐요. 1주일 지나면 면도칼로 긁으면 떨어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
진료 끝.
다행이고 허무했다. 아니 피는 줄줄 흐르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동그랗게 점처럼 맺힐 줄이야. 잠시라도 불안에 떨며 사는 삶은 어찌나 불행했는지. 잠재적인 불안에 떨며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또 어찌나 불안할지 마음이 아파온다. 지구 정복보다 암 정복이 훨씬 더 빨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