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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Oct 09. 2022

선택적 함구증을 앓던 쌍둥이 의사 자매 이야기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_윤여진, 윤여주 지음

7년 간 학교에서 아예 입을 닫고 살았던 쌍둥이 자매 이야기다. 지금은 각각 한의사, 치과의사 되어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아예 말을 못 했던 건 아니고,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예 대답조차 못하고, 집에 와서는 제 세상이 열린 듯 왁자지껄하게 놀아서 치료까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엔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단어나 심리 치료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심각한 부적응 어린이 었다.


정말 드물게 꽃다발을 들고 엄마가 나의 유치원 입학식에 왔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친구들 틈에 줄을 서는 순간부터 몸이 얼어붙기 시작했고, 다 같이 전체 율동을 할 때는 발조차 뗄 수 없었다. 그냥 다 같이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게 '몸서리치게 창피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꽃을 든 엄마가 굉장히 실망하며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적응하는 자식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앞으로도 쭉 그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화를 냈던 것 같다.


엄마의 불같은 화에도 내 유치원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율동을 못하는 건 당연하고 다 같이 간식이나 점심을 먹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늘 아프다며 꾀병을 부렸는데 아마 어른들은 꾀병인 걸 다 알았을 것이다. 그때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 나타났고, 아프면 원장실에 누워있다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일단 시끌벅적한 친구들과 분리되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가 왔다. 원장 선생님과의 점심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기린반'에 있는 것보단 나았다.


어른과 오래 있다 보니 한글 중에서도 어려운 겹받침을 굉장히 빨리 뗐는데, (사실 그거 아니면 하루 종일 원장실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런 나를 원장님은 '똑순이'라며 치켜세워줬다. 하원길에 만나는 엄마한테도, '은지가 아주 똑순이'라면서 호들갑을 떨어주시는 덕에 나의 원장실 생활은 무탈히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쌍둥이의 하나뿐인 오빠가 나에겐 원장 선생님이 그랬듯 방과 후에 간식도 사주고, 같이 눈싸움도 해주면서 세상에 발 디딜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덤덤하게 그 시절을 묘사할 순 있지만, 유치원 때부터 초저학년 때까지 친구 없이 지냈던 기간을 생각하면 뭔가 헛헛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한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의 내가 남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고, 친구들도 있다는 사실이 퍽 안심이 된다. 그러나 마음속 저 깊은 서랍에는 여전히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라고 나를 보고 찡그리고 한숨짓는 얼굴들이 생생히 존재한다. (중략)

어떤 날은 그 서랍을 열어도 덤덤하다. 아, 나의 과거 서랍이 열렸네. 그런 날 나는 필요한 것만 꺼내어 보고 다시 닫는다. 그러나 다른 어떤 날엔 그 꽉 채워진 서랍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황급히 서랍을 닫는다. 서랍 안은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정리될 수 없는 복잡한 서랍을 지니고 살지만, 쌍둥이에게도 맘 놓고 수다 떨게 하는 오빠가 있는 안전한 집이 있었다. 나에게 좁디좁은 원장실과 원장 선생님이 그랬듯 말이다.

영화 <계춘 할망>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인생.'

인생의 고비마다 있었던 '고마운 나의 편'을 생각해보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편'이 되어줄 만한 에너지를 쌓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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