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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Oct 31. 2022

팬도 아니라면서 허지웅 책을 보는 이유③(최종)

『최소한의 이웃』_허지웅 산문집

<최소한의 이웃> 책 표지

최근 《최소한의 이웃》이라는 신간을 읽음으로써, 허지웅의 책은 《망령의 기억》외에는 전부 읽게 되었다. 또 이전에 허지웅 팬도 아니라면서 허지웅 책을 찾아 읽는 이유 ①②에 대해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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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을 너무도 진솔한 글로 표현하는 점에 이끌려 그가 쓴 글을 하나 둘 읽게 되었다. 밝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기에 특유의 거친 표현에도 수긍이 되었다.


허지웅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읽은 독자 입장에서, 최근 신간인 《최소한의 이웃》은 사뭇 다르다. 냉소 대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확고한 표현 대신 '그럴 수도 있다'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힌다.


실제로 글의 길이들이 상당히 짧아졌고(과장을 보태면 좋은 생각에 실리는 글들 정도의 길이와 호흡이다), 글 말미에 '이러이러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붙는 글들이 많다.


'그냥 내 말이 다 맞으니 알아서 들어라'라는 느낌보단,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이러이러함을 조심스럽게 밝힙니다 정도이다. 따라서 허지웅 특유의 단호하고 까칠한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좀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웃지 않는 사람에게 왜 웃지 않냐고 묻지 마세요. 웃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웃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잊었을 뿐입니다.  p.21


나 역시 너무도 짧아진 글 호흡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지금의 상황과 나이의 작가 허지웅이 쓸 수 있는 혹은 쓰고 싶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투병 중에 날아든 수많은 메시지에 감동받기도 당혹스럽기도 했다는 인터뷰를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나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생사를 논하는 큰 병을 앓은 전후가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그전에 파랗던 하늘도 노랗게 보일 수 있고, 인간은 절대 안 변한다고 냉소하던 사람도 변할 수 있을만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호흡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300여 페이지가 단순한 글들의 나열로 보이지 않았다.


고통은 구체적이지만 희망은 관념적이지요.
고통은 실체가 또렷하지만 희망은 흐릿합니다.
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정말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희망에 고통에 대한 반사작용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이 있으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있습니다.

p.303


시련을 겪고 난 그가 본인에게 또 '이웃'이라 일컬어지는 우리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위의 문장이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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