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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Nov 06. 2022

어린 시절 날 살린 말, "양호실 가고 싶어"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_김하준 지음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하던 걸 꼽으라면, 단연 '수업시간에 양호실 가서 누워있기'였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조퇴였지만.


내심 학교 가면서 '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해보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따낸 양호실 행 쿠폰(?)으로 소독약 냄새나는 고요한 양호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평화가 오는 듯했다. 거기선 같은 시간도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사실 가장 나를 편안하게 했던 건, 나에게 큰 관심 없는 양호 선생님의 무심한 태도였다. 긴장감 없는 공존이랄까.

그 이유를 『여기서 마음껏 아프가 가』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보건실에 오면 떠들어 혼나던 아이도 단지 아픈 아이다. 선생님께 대든 아이도 그냥 내겐 아픈 아이다.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하고 혹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교실 안에서의 긴장한 어린 내가 무장해제되는 거의 유일한 곳이 양호실이었던 것이다. 그냥 대충 아픈 곳을 적고 잠자코 누워있다 가면 되는 곳. 역으로 생각하면 교실에서의 시간이 당시 미성숙한 나에게는 힘들었었나 보다.



아영이가 전학 오던 날 보건실에 처음 와서 아픈 곳을 쓰는 칸에 아영이는 '영혼'이라고 썼다.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영혼'이 아프다고 적는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저자는 이런 아이들을 시간을 두고 세심히 한 명 한 명 보살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다그치는 대신 '안심'이란 약을 처방해준다고 한다. 더불어 '초등학생에게 꾀병은 실제로 병이다'라고 하는데, 그만큼 실제로 배를 어루만져주거나 관심을 보여주면 약 처방 없이도 낫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마음의 고통이 몸으로 발현되는 이유를 적은 문장이 짠했다.




아이들은 싸웠든 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든 그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오기도 한다. 그런데 직접 묻지는 않는다. 그냥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대체로 혼내기보다는 아이에게 '안심'이라는 약을 처방해준다. "잇몸은 원래 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피가 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다음에 팔을 휘두를 땐 주위에 누가 있는지 먼저 살피면 돼.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 아이가 얼굴이 환해져서 뛰어나간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보면 하찮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른인 우리들도 인간관계에 울고 웃고 하는 사람들 아닌가. 어찌 보면 크게 자란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아이들은 경험한 세상 자체가 좁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변화 하나하나가 더 큰 대미지로 다가올 뿐이다.




가을은 아이들의 입술에서 온다. 이맘때 입술이 트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목감기와 콧물감기도 는다.


날씨가 추워진 요즘. 가을은 아이들의 입술에서 온다는 문장이 크게 다가왔다. 내 아이의 입술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부르튼 입술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나아가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작은 입에 담긴 고민을 같이 들어주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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