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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Mar 31. 2023

우울에 대해 다루려 합니다. (2)

이제는 우울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

우울에 대한 글쓰기로 고민하던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상처 입지 않을 표현은 없다.


이후 저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우울에 대해 쓰려고 생각하니 참 막연했습니다. 우울증 환자로서 많은 글과 책을 읽었습니다. 괜찮을 때는 힘도 나고 감동에 젖어 울기도 했으나, 축 쳐질 때는 거의 모든 글귀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떤 표현을 보던 '네가 뭘 알아'라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할까요. 제가 그랬었기에, 독자들 역시 제 표현을 받아들 수도, 아니면 거부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 이후 저는 제 글이 거부당하는 걸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는 경험이 '헛소리하네'에서 끝나는 건 괜찮은데, 더 나아가 통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 너무나도 힘든 사람이 내 글을 보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진 않을까. 선의로 써 내려간 글귀가 우울이란 필터를 거쳐 낫지 않은 상처를 아프게 건드리지는 않을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싶다'는 제 신념에 위배되는 생길까 두려워 한동안 우울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의 다양한 '우울증 후기'도 그렇고, 제가 읽었던 수많은 글귀들도 우울에 대해 다룹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작가분들은 자신이 쓰는 표현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될 것을 걱정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고민을 해봤지만 그것 역시 아닌 듯합니다. 그럼 결국 제 생각 어딘가에 오류가 있는 듯한데, 쉽사리 찾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저는 브런치에서 우울을 다루는 글을 보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브런치에서 글과 그림을 투고하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시자 작가님이신 '니너하리'님께 어떤 마음가짐으로 우울에 대해 다루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답변 주셨습니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혹시나 제 환자들이 이 글과 그림을 보게 되면 절대 상처 입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현직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도 '내 환자'에 대해서만 생각하시는데, 저는 우울한 모든 이,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 모두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독자층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나와 코드가 비슷한 사람들이 주로 구독이나 라이킷을 많이 하겠죠. 애초에, 모든 사람이 내 글을, 내 책을 읽을 것이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설령 많은 독자들이 제 글을 읽는다고 한들, 모든 독자가 제 글을 좋아할 리도 없고요.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저는 그걸 못한 것입니다. 초보 작가의 실수였죠.


오류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합니다. 근데 '어떠한 상처도 주고 싶지 않다'라고 하면 할 수 있는 말이 굉장히 제한됩니다.  그럴까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을 쓰는 걸 망각하고 내담자-상담자 간의 관계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실재하는 객관적인 '세상'을 인식을 통해 각자의 주관적인 '세계'로 받아들이기에, 내가 아닌 타인이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는 알기 힘듭니다. 평소 대화나 생활을 통해 그 사람의 관심사가 어떤 것인지, 보이는 인상은 어떻고 평소의 언행은 어떤지 등을 알 순 있습니다. 하나 어떤 상처를 가졌는지는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아닌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상담하시는 분들이나 정신과 선생님들께서 '라포르(Rapport, 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시. 최소한의 신뢰가 있어야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속내를 털어놓으니까요.


또한, 상담에서 내담자의 비언어적인 표현은 환자에 대한 인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시선을 어디로 향하는지, 손은 가만히 있는지, 떨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표출하는지, 손목에 자해 상처가 있는지, 말투나 표정은 어떤지, 외모를 꾸미고 다니는지 등등....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직접 보고 느끼는 인상은 내담자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생각하다 보니 처음에 들었던 생각 - 제가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눈으로 보지도 않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상처도 주고 싶지 않다 - 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정신과 지망 의사이자 작가로 인식하는 저의 착각과 실수가 합쳐진 거죠. (1) 초보 작가의 실수, 그리고 (2) 정신과 의사 지망생의 페르소나와 작가 페르소나의 충돌.  걱정의 원인은 이 두 가지였네요.


"모두가 상처 입지 않을 표현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우울을 다루는 글쓰기의 첫 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다음 글은 제가 우울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왜 쓰려고 하는지에 대해 작성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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