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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Mar 28. 2023

소설을 쓰다 울었습니다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

근래에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 <위인>. 최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큰 영감을 받았고, 그 스토리와 표현이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아 사색을 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며칠간은 거의 소설 생각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가다 여유가 생기면 훈련 중에라도, 훈련이 없는 주말에도, 심지어 훈련소에서 다리를 다쳐 국군대전병원까지 왕복하는 버스 안에서도, 오로지 제 소설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쓰기에 골몰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낯설어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나 양극성 장애의 조증 삽화(manic episode)인 거 아니야?


다행히도 동생이 소설 구상을 듣더니 "진짜 좋다, 소름 돋았다, 오빠가 이상한 게 아니다, 기대된다!"라고 말해줘서 안심했습니다.


여하튼 며칠 내내 계속,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정말이지 완벽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그건 제가 떠올린 게 아닙니다. 깨달음, 사랑, 긍정, 구원, 용서, 화해, 혹은 그 모든 것들이 섞인 무언가가 저를 불현듯 찾아왔고, 그것을 저의 언어로 풀어낸 것뿐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활자로 완성한 저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하루키가 말했듯 완벽한 문장이라는 것은 허상입니다. 지금이야 제 표현이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반드시 퇴고를 거쳐야겠지요. 하지만 이 문장에 담긴 감정이, 그 메시지가 더없이 완벽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십 여 년간 우울과 자기 부적절감에 고통받던 과거의 저에게, 지금의 내가 드디어 화해와 용서를 청했다고 표현할까요. 정신분석적으로 표현하자면 초자아(superego)에 억압받아 질식하기 직전의 원초아(id)를 자아(ego)가 마침내 구해내고 초자아와의 적절한 중재를 해낸 느낌입니다.


아래는 제가 써 내려간 초고의 일부입니다. 퇴고를 거치지 않았다 보니 나중에 다시 읽으면 '참 못 썼다, 이걸 발행하다니 창피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제가 감격에 벅차 써 내린 최초의 원고는 이후의 퇴고로 인해 하나 둘 깎여나가, 결국 그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여기에라도 저에게 찾아온 첫 소설, <위인> 초고의 감동을 기록해두고 싶습니다. 나중에 부끄러울지라도, 뭐. 제가 쓴 다른 글도 나중에 보면 부끄럽기는 매한가지 아니겠어요? 선배 작가님들께서는 후배 작가의 호들갑을 너무 꼴사나워하진 마시고 어여삐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지나가다가 선생님의 일기를 접한 아무개입니다. 글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어, 노파심에 댓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세상 누구도 선생님의 고통을 헤아리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의 글에 드러난 절망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좌절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지독한 오만이라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함부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아무도 보지 않는 블로그에 일기를 쓰신 것은 선생님의 부끄러움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개가 아닌 공개글로 올리신 까닭은, 역설적으로 누군가라도 선생님의 고뇌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신 게 아닐지, 감히 예상해 봅니다.

선생님께 삶은 축복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생명은 소중하다, 이런 진부한 설교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정말 애쓰셨습니다.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선생님께선 위대하십니다. 당신은, 이미 '위인'입니다.

3월의 봄날이 따뜻하다고는 하나 새벽은 아직 춥습니다. 이 글은 제 진심이 선생님의 새벽에 닿아 봄날의 해가 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  아무개 배상


어쩌면, 혹시 어쩌면. 어제의 일기는 말 못 할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의 고요한 절규가 전파를 통해 기적적으로 나에게 닿은 게 아닐까. 들어주길 바라지만 알려져서는 안 될 그 역설적인 비밀이 텔레파시와 같은 초자연 현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닐까.
때문에 나는 기도한다.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나 내 마음이 번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닿기를. 그대의 조용한 비명이 단말마의 신음으로 이어지기 않기를. 당신의 자기 부적절감은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에게 존재함을 알아차리기를. 삶이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우리 모두는, 작아도 분명한 '위인'임을 깨닫기를.



- 소설 <위인>의 초고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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