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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옹 Sep 09. 2022

남편과 함께라면 뭐든 먹는다

내가 고기를 먹을 때 1


 나랑 남편은 식성이 조금 다르다. 나는 채식을 좋아하고 남편은 육식을 좋아한다. 남편은 나를 위해 비건 식당에도 가고 비건 행사에도 참여한다. 나는 남편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할 때조차, 마트에서 고기를 사고 싶다고 할 때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나를 위해 많이 맞춰주고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던 걸까? 반성하는 마음에 남편이 같이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할 때 기꺼이 따라나섰다. 평소에는 몰라도 남편이 같이 먹고 싶다고 할 때는 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게 바로 내가 아직 플렉시테리언인 이유다. 


 "나는 가끔씩 고기를 먹으니까 채식주의자도 아니네? 

나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은데 육고기만이라도 끊어볼까?"


 물론 플렉시테리언도 채식주의자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한다. 플렉시테리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와서 한 종류의 동물성 음식이라도 끊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내뱉은 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이미 나랑 같이 살면서 나에게 많은 부분을 맞춰주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어떤 부분을 맞춰주고 있었을까? 부부라면 마땅히 딱 맞게 끼워진 퍼즐 모양이 돼야 할 것인데, 나는 남편에게 내 모양대로 맞추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편에게 많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남편과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 남편과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튼, 비건>을 읽고 조금씩 비건 지향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남편과 사귀기 전부터 친구로 지내던 기간, 썸을 타던 기간에는 멀쩡히 고기를 잘 먹던 내가 책 한 권 읽고 채식을 해 보고 싶다고 했으니 남편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도 했을 것 같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잠시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남편과 사이좋게 잘 지내기 위해,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할 때는 고기를 조금 먹는 방법을 택했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동물권 못지않게 가정의 평화도 중요하다.


 엄격한 비건들은 나의 이 생각들을 보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비건을 지향한다더니 남편이랑은 같이 고기를 먹는다니 말이다. 비채식인과 채식인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고기를 먹니 안 먹니 실랑이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내가 한 발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인 것 같다.


 대신 나 혼자 있을 때나 평소(남편이 고기 얘기를 안 할 때)에는 채식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집에 늘 맛있는 채식 음식들이 있어야 한다. 가끔 맛있는 채식 반찬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동물성 음식의 유혹에 빠지고 만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참아보겠다만 지금은 임신한 몸이라 참기가 조금 어렵다. 가공식품이든 자연식물식이든 집에 항상 맛있는 채식 음식들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가공식품이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채식 가공식품이 육식보다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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