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대유행이 발생한 지 어언 1년이 다 돼간다. 이런 겨울을 맞이할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만. 생애 최고로(?) 폐쇄적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코로나 19 이전에 크리스마스를 특별히 보낸 건 아니었다. 주변에서 크리스마를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분위기라 일부러 그걸 거역(?)하고 싶었다. 교회에 다니지만 교회만 다녀오고 그 외에 별다른 건 하지 않았다. 연인과 함께 할 때는 그날도 데이트하긴 했지만 그게 주는 아니고. 그것도 성탄 예배 다녀와서 잠깐(?) 하는 정도.
내게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서. 그냥 그 날을 기쁘고 감사하게 맞으면 될 일이었다. 어릴 때는 물욕이 크긴 했다.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하고 그런 게 없으면 '나는 나쁜 아이인가 보다' 이 생각을 네 살 때 했던 것 같다. 실제 그런 말을 이모에게 하기도 해서 이모가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셨다. 선물 다 필요 없는데. 이날은 내가 선물 받는 날이 아닌데. 크리스마스 의미를 잘 모르던 시절이라 캐럴만 듣고 어린이다운 생각을 했다.
코로나 19 이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어릴 때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머니가 퇴근길에 과자인지, 빵인지 세트를 사 오셨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너희 주라고 하셨어" 이런 말씀 한 기억이 떠오르고. 청소년 시절에도 별다른 기억이 없다.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대학에 입학할 무렵. 그 이후로는 교회에서 예배하고 온 기억뿐이다. 주일학교를 섬길 때는 모교회에서 항상 성탄절에 회식을 했다. 새해부터 새로 섬기는 교사들이 모여서 같이 밥 먹고 회의하는 자리. 청년부 임원을 할 때도 그랬다.
지난해 겨울 경주 힐튼에서 찍은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딱정벌레
조각난 기억을 이어 보면- 모교회에서는 성탄 예배 때 항상 성도에게 떡을 나눠줬다. 시루떡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집에 와서 그 따뜻한 떡을 떼어먹으며 일부러 더 고요하게 성탄절을 보내는 게 내 최선. 성탄 특선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이밖에 스케이트장에 가거나, 버스에서 지갑을 두고 내린 남자 친구를 갈군 기억도 떠오른다. 웃으면서 어이없어하길래 내가 "웃음이 나와?"라고 했더니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군대 간 선배에게 편지를 쓴 적도 있고. 지금은 연락도 안 하는데 그때는 어지간히 각별했나 보다. 성탄절에 시간 내서 편지를 쓰다니.
내게 성탄절은 최대한 평범하게 보내면서 그날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었다. 그렇다 보니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 라디오도 열심히 들었다. 캐럴을 비롯해서 성탄 음악을 많이 틀어주니까. BBC 라디오도 성탄절에 특집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데 현지에서 하는 성탄 예배를 들을 때도 있었다. 또 유명 저널리스트가 진행자로 나서 재즈 프로그램을 특별 진행하기도 했다. 존 험프리라는 BBC 기자이고 'Today'라는 간판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였다. 그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성탄 특집으로 저런 일도 했다.
오늘 이 글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다루려고 했다만. 역시나 나답게 본론은 안 들어가고 다섯 문단에 걸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요지는 코로나 19 이전에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든지 크게 괘념치 않았다는 것. 과거에 뭘 했는지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예년보다 실내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고. 난 글을 쓰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진 이후로 집에서 내내 작업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가랜드 상자와 부품. 사진=딱정벌레
그렇다 보니 집을 잘 꾸미고 가꾸는 데 전보다 신경을 더 쓰고 있다. 이건 나뿐만 아닐 거다. 꽃을 예년보다 더 자주 사고. 더 편하게 숙면하는 방법, 필요한 도구(?)도 고민하고. 집에서 좀 더 잘해 먹는 방법도 예년보다 더 연구하고 실천한다. 장도 전보다 더 자주 본다. 리클라이너 의자는 계속 위치를 바꾸다가 이제는 창 옆에 고정했다. 집안일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있고. 요리, 설거지만 해도 에너지를 꽤 요한다. 청소, 세탁, 분리수거 등을 더하면 힘이 더 들어가고.
돌이켜보니 그래도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에는 항상 본가에 갔더랬다. 그 시간은 꼭 가족과 보내고 싶어서. 올해는 그러지 않고 있다.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하기도 하고. 본가에 가면 수도권 지역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서 카페에도 갈 수 있지만. 작업할 게 있는데 본가에 내 공간이 없고. 요즘처럼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는 본가 상황은 낫다 해도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내게 그리 편하지는 않아서. 혼자 있더라도 서울에 남아있는 쪽을 택했다.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게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예년과 다르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책하는 게 아니면 집에 최대한 머물러 있어야 하고. 외식도 안 한지 몇 주 됐다. 최근에 열흘만에 배달음식은 시켜먹었다만. 외식을 안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 있는 듯도 하고? 자취하면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외식과 배달음식에 의존하기 쉽다. 올해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특히 요즘은 상황이 더 안 좋아서 식당에 가는 것도 꺼려 됐다. 지겹기도 하고. 늘 해 먹는 것도 피곤하지만 매 끼니를 챙겨 먹는 건 아니니.
집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가랜드. 사진=딱정벌레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가운데 올해 크리스마스를 혼자서도 쓸쓸하지 않게 보내려면- 집에 있는 시간을 잘 즐기고, 집을 더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소박한 가랜드로나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교회에 다녀도 트리를 설치하거나 따로 뭘 꾸민 적은 없었다. 트리는 작은 것도 가격이 좀 나가기도 하고. 나 같은 1인 가구에게는 가랜드가 적합한 듯해서 2주 전에 가랜드를 사서 설치했다. 이블린이란 곳에서 나온 건데 오너먼트와 물방울 모양 전구가 예뻤다. 밤마다 실내 불을 다 끄고 이 조명과 무드등만 켰다.
가랜드에는 업체에서 만든 오너먼트 외에 사진을 달 수 있도록 집게도 두 개 들어 있었다. 난 지난해 런던에서 찍은 사진 두장을 꽂았다.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찍은 탬즈강과 런던 아이 풍경. 다른 하나는 하이드파크 전경. 가랜드 전구가 콘센트를 꽂아서 전원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건전지를 써서 건전지 케이스가 보기 흉했다(?). 처치하기 곤란했는데 케이스 위에도 사진을 붙이면 좋을 듯해서 하나 붙였다. 어린 왕자와 여우 사진인데. 이건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찍었다. 리본도 달려 있고. 가성비 좋고 예쁜 가랜드가 완성됐다.
12월 한 달은 가랜드로 집에 소박하게나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니 괜찮았다. 소소하게 기분도 전환되고. 예쁘니까 바라보는 재미도 있고. 밤에 불 다 끄고 조명만 밝힌 채 사진 찍는 것도 즐거웠다. 영상도 남기고.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외식하기보다 집에서 해먹을 계획이라서 그것도 크리스마스 향한 기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가랜드 조명은 밤새 켰지만 건전지가 빨리 닳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새해 전까지는 계속 두려고 한다.
BBC 라디오 'Christmas Around Europe' 페이지. 사진=딱정벌레
대개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이 명절을 만끽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젯밤 꾸역꾸역 글을 고치고. 와인에 스트링 치즈와 귤을 곁들여 먹으며 나도 이브를 즐겼다. BBC 라디오 3에서 'Christmas Around Europe'이라는 프로그램을 특집으로 진행했다. 아이슬란드, 덴마크, 핀란드 등 유럽 각지에서 연 크리스마스 공연을 틀어준다. 팟캐스트로 들을 수 있다. 그걸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병렬 독서를 즐긴다. 최근에 산 '논픽션 쓰기'를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된 책을 산 건가 긴가민가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택배를 정리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꽃을 새로 샀다. 오늘 만찬(?)으로 해먹을 함박스테이크도 사고. 그 택배를 정리하고 11시 30분에 영상으로 성탄 예배에 참여했다. 성극은 사전 녹화해서 방송으로 송출하고, 찬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큰 교회이고 방송국을 운영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영상 예배에도 영상미를 살리는 데 공을 많이 들인 듯했다. 또 줌으로 다른 성도 얼굴도 보면서 예배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도 하고. 줌이 이렇게 일상 곳곳에 정착하다니.
1시간 30분 예배를 드린 뒤, 꽃을 가지치기했다. 마켓컬리에서 꽃을 샀는데 농장에서 수확한 그대로 와서 줄기가 너무 길고 잎이 무성했다. 줄기를 잘라야 물을 잘 먹기 때문에 이걸 좀 자르고 잎을 뜯었다. 화병에 새로 물을 담아서 꽃을 꽂았다. 어떻게 배치해야 더 예쁠까. 이리저리 꽃 방향을 바꿔봤다. 기존에 있던 노란 소국은 작은 화병에 옮겨 담았다. 금어초는 말랐지만 자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둘까 말까 했는데 그냥 버렸다. 겨울이 가기 전에 목화도 사서 집에 꾸미고 싶은데- 새해 돼서 가랜드 치우면 둘만한 곳이 없다.
오늘 도착한 꽃. 라벤더 장미(왼쪽 두번째). 사진=딱정벌레
이리저리 손질하고 보니 꽃이 제법 볼만했다. 영양제를 화병에 부었다. 오늘 날씨가 좋고 화병과 화분으로 기분 좋게 햇살이 들어왔다. 꽃을 살 때마다 항상 사진을 찍는다. 오늘도 찍었다. 참고로 이번에 산 꽃은 장미인데 라벤더 색이었다. 분홍빛이긴 한데 좀 진한 분홍색. 노란 소국과 함께 두니 벌써 집에 봄이 온 느낌이었다. 이제 동지도 지났고. 해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꽃을 보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입춘도 이제 4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면 프리지어나 봄꽃이 많이 나오겠지.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오랜만에 원피스를 입었다. 여러 원피스 가운데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게 있는데- 폴라티처럼 생긴 원피스다. 2만원도 안 했던 것 같다. 모카썸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건데 취지가 좋고 가격이 착해서 선호한다. 취지가 좋다는 건- 이 브랜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때문. 지난해 거기서 짙은 회색 원피스를 샀다. 겨울이 와서 좋은 건 이 계절에만 이 옷을 입을 수 있으니까. 옷이 적당히 몸에 붙어서 체형이 드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내 몸을 좋아하기 때문.
오늘 식사는 좀 늦었다만- 준비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요리도 집에서 해서 먹으려고 했다. 근데 말이 그렇지 특별히 내가 하는 건 없었다. 카스텔라를 3분의 1 크기로 자른 다음, 생크림을 휘핑하고 카스텔라에 발랐다. 딸기를 마구 붙여서 케이크를 완성했다. 이건 만든 게 아니라 꾸민 거다. 오덴세 인스타그램 보고 배운 건데 지난 주말에 해보니 간편해서 이번에 더 잘 꾸미고 싶었다.
가정식 성탄 만찬과 그 재료. 사진=딱정벌레
주식은 피자와 함박 스테이크. 그럴 싸하게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게 아니고 냉동식품과 냉장식품. 요즘 가정간편식이 너무 잘 나와서 외식 메뉴 못지않은 제품이 많다. 최근 CJ제일제당 고메 브랜드에서 냉동피자 신제품이 나왔는데 '칠리 감바스 피자'였다. 감바스 피자라니! 홈플러스에서 장 보다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구매는 롯데마트에서. 이걸 크리스마스에 먹기로 점찍고! 그 외에는 그냥 스테이크를 해 먹으려고 했는데 현대백화점에서 고기를 1만원에 파는 걸 사려 했으나 일정 때문에 사러 갈 시간이 안 됐다.
대신 마켓컬리 함박 스테이크를 해 먹기로 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돼서 빨리 조리할 수 있을 듯했다. 케이크 꾸미는 데에도 신경 많이 쓰이기 때문에 요리에 시간을 많이 투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초도 따로 샀고. 케이크 꾸미는 동시에 냉동 피자와 함박 스테이크를 조리했다. 케이크는 딸기나 블루베리도 같이 올리려 했는데 까먹고 딸기로만 꾸몄다. 오덴세 인스타그램 장식 그대로 따라 하려고 했는데 조금 달랐다. 오늘 투썸플레이스 케이크 사진 보니 딸기 안 썰고 그냥 올려도 될 뻔했어.
별로 한 건 없는데 부엌은 금세 난장판이 됐다. 어지러운 부엌을 뒤로하고 나만의 가정식 성탄 만찬 사진을 찍었다. 집에 큰 접시가 없어서 최근에 지름 28cm 접시를 샀다. 거기에 피자 올리고 오덴세 회색 접시에 함박 스테이크를 담았다. 왼쪽 옆에는 도스 코파스 와인을 두고, 그 옆에 케이크를 비치했다. 항공 뷰로 사진을 찍고, 내가 좀 더 애정을 갖고 만든 케이크는 따로 촬영했다. 먹다 보니 배가 불러서 케이크는 저녁에 먹기로 하고 냉장고에 넣었다.
크리스마스 산책길(안양천). 사진=딱정벌레
초저녁에 영화 '조제'를 예매했는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부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 산책하고 싶어서 밖을 나섰다. BBC 라디오를 들으며 도림천을 따라 걷다가 안양천으로 갔다. 도림천 물이 꽁꽁 얼었다. 그 위에 벌써 썰매 타는 사람도 있고. 하얀 달 사진을 찍고 해 질 녘 노을이 지고 있는 안양천 사진도 남겼다. 오늘을 기념해 내 셀카도 오랜만에 찍어보고. 안양천에 있던 갈대는 그새 정리했더라. 토이 카메라도 들고 나섰는데 이걸로도 내 사진을 찍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기념비적인 날이라 내 모습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조제는 롯데시네마에서 봤다. 동네에서 영화관이 10~15분 거리에 있으니 가는 건 편리하다. 조제는 아르떼 관에서 상영하는데 거리두기 좌석을 운영해서 그런지 자리는 거의 찼던 것 같다. 그래 봐야 관객이 10명도 안 되지만. 조제는 개봉 소식 들을 때부터 너무 보고 싶었다. 원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좋아했기도 하고. 그 영화 O.S.T.도 좋아해서 CD를 샀다. 본가에도 있는데 다음에 가면 가져오거나 리핑해야지. 한국 버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한지민이 나온다고 하니. 겨울 감성에 어울리는 작품이라 꼭 보고 싶었다.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난 한국 버전도 좋았다. 일본 버전보다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정서에 좀 더 맞는지도. 남주혁도 캐릭터가 잘 어울리고. 원작보다 분위기가 더 은은해서 좋았다. 한국적 맥락도 있고. 내용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편집하고 재해석해서 들어간 부분이 한국인인 내 입장에 더 공감됐다. 졸업반인 영석이 겪는 장애물이나 조제가 영석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나. 그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리플리 증후군도 의심됐지만. 영석을 향한 마음을 진심으로 내비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지 말고 옆에 있어달라는 말.
조제 포스터와 스틸컷. 사진=네이버
남주혁도 캐릭터에 잘 녹아났다. 드라마 '스타트업'을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거기서는 천재 공대생에 성공한 개발자 이런 이미지였나본데- 조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외모와 몸매는 반반해선지 여자는 잘 엮이는 것 같다만. 이 시대 청춘을 잘 대표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너무 잘나지도 않으면서 누구나 하는 고민을 하고. 넘어지고. 마냥 도덕적이지만도 않고. 우리 주변에 있는 남자애들. 어깨는 참 훌륭하더라. 보다 보면 치이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어깨 소유자가 있는데 그도 그중 하나인 듯. 작품 보는 눈도 좋은 듯하다.
조제에서 좋았던 포인트가 여러 가지인데- 조제가 직접 운전하는 모습은 원작에서는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게 조제 능동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영석과 헤어져도 꿋꿋이 자기 길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읽혀서 보기 좋고 용기도 느껴졌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좋았던 포인트와 비슷한 듯. 원작에 거론된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 버전에는 스코틀랜드가 나왔다. 조제가 가고 싶었던 곳인데. 작년에 다녀온 스코틀랜드에도 여행 간 게 떠올라서 반가웠다. 난 스코틀랜드가 당시에는 좋지 않고 불편했지만. 뭐든 시간 지나면 미화되니.
초에 불붙인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진=딱정벌레
조제도 그렇고, 지난해 11월에 봤던 영화 '모리스'도 그렇고. 이달 초 봤던 '프롬'도 그렇고. 어떤 사랑은 당연하지 않고, 손가락질받고, 누군가에게 들켜선 안 되고, 떳떳하지 않다. 불륜은 당연히 반대한다. 근친이나 기타 부적절한 관계도 마찬가지. 그 외에 속하는 사랑인데 부도덕하게 취급받고 마음을 억눌러야 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조제 사랑도 그런 듯했다. 둘이 좋으면 그걸로 족한 사랑은 아니라서. 그게 조제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그래도 조제는 스스로 세상에 나와 두발로 서서 꿋꿋이 살고 있으니. 사랑이 세상 전부도 아니니까.
영화를 보고 백화점을 한 바퀴 돈 다음, 귀가했다. 낮에 만든 케이크 초에 붙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와인과 함께 단숨에 먹어치웠다. 책을 읽고, 크리스마스가 한창인 영국 BBC 라디오를 들으며 오늘 일상을 남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먹고 싶은 걸 주로 생각했고 그걸 실천하는 데 주력했다. 오늘도 먹을 거 생각하고 준비하고 먹느라 바빴다. 보고 싶던 영화를 봐서 좋았고, 그 영화가 좋은 작품이라서 또 좋았다. 예수님 생신인데 혼자 너무 즐겼네. 혼자서 명절 보낸다고 걱정하는 이도 있는데 생각보다 쓸쓸하지 않았다. 처음도 아니고. 내일은 초마 짬뽕에 돈가스를 해먹어야지.
John Lennon & Yoko Ono - Happy Christmas. 출처=유튜브
Band Aid - Do They Know It's Christmas 뮤직비디오. 출처=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