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의미와 목적을 돌아보며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서 배운 점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일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목적을 잊곤 한다. 처음에는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갖고 임했다. 그러나 업무에 치이고 일상이 고단해지면서 어느 순간 목적이 흐릿해진다. 일을 위한 일을 하고, 금전적 보상만 바라보며 일을 하기도 한다. 일을 대하는 내 태도나 마음가짐이 부박할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목적이 희미해져서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목적이 내게 내면화됐고 무의식 중에 깔려있을 수 있다. 굳이 의식할 필요도 없는 것. 결정적 순간에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떠올려야 할 순간에 일의 소중함마저 잊고 못난 짓만 하는 것.

글 쓰는 게 업인 입장에서는 글 쓰는 목적과 사명감이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글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세, 태도 등.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게 습관이 되면 안 된다. 적당히 요령을 부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정석대로 나아가거나 정면돌파가 필요할 때가 있다.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요령을 부리기 시작하면 정석대로 해야 할 순간에도 잔꾀에 기대려고만 할 수 있다. 그게 절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무식하더라도 우직하게 정석대로 하는 걸 고집하는 게 때로는 나을 수 있다. 그 태도가 본능이 되도록 꾸준히 학습하고 내 것으로 탑재해야 한다.

연말이 되니 마음이 많이 흐트러졌다. 스스로 부끄러울 만큼. 근데 부끄러워하기만 하고 실제 행동을 바로 개선하지 못했다. 지난해 연말 마무리가 찜찜했던 이유다. 중간에 마음이 산란하고 방황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작업 과정에 아쉬움이 크다. 날 스스로 격려하기 어렵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이 뿌듯하지 못했다. 못난 생각도 많이 들고. 글 쓰는 기회가 소중했는데 그 소중함을 잊은 듯했다. 그것도 부끄러웠다. 정말 이 기회를 귀히 생각했으면 그러지 않았겠지. 일관성을 못 지키고 남에겐 엄격하며 자신에게 관대한 내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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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내가 쓰는 글 의미와 목적을 잊었구나 싶었다. 누가 제안해서 쓰기 시작한 글이긴 했지만 나름 사명감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의 글이기도 하고, 완성했을 때 가장 만족도가 높고 쾌감이 큰 글이 기술 콘텐츠였다. 난 전공자가 아니지만 기본 지식조차 없는 사람 눈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내 글은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었으니까. 의미로 다가오는 기술 콘텐츠로 브랜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취지였으니까. 개인 목적과 제안자 목적, 과정에서 깨달은 사명감 이런 게 버무려졌다.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돌아보면 내가 글 쓰는 목적 또는 글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과정이 떳떳해야 한다'는 거였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조사하고, 필요한 내용을 추리고 내용을 축적하는 것. 작성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 또는 최상의 글을 쓰는 것. 내가 받는 고료가 아깝지 않은 것. 스스로 큰 소리 칠 수 있고 당당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요건이었다. 결과물은 당연히 좋아야 하는 건데 올바른 과정을 거쳐서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로 일할 때는 이 과정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부끄러웠다. 일간지에서 일할 때가 특히 그랬다. 매일 기사를 10개 이상 처리하는데 취재기사, 보도자료, 기타 발생 이슈 등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다. 근데 취재하고 기사만 쓰는 것도 아니니까. 품이 덜 들어가는 기사를 낼 때도 많았다. 시간을 지켜야 하니 품질은 일정 수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만. 그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기사가 매일 나가는 게 부끄러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을 경험할 때도 있어서 기자임이 수치스러울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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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면 직업을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했다. "뭐하세요?" "신문사에서 일해요" "신문사에서 무슨 일하는데요?" "... 기자요..." 기자라고 말하지 않고 에둘러서 신문사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적당히 넘어가는 사람도 있건만 굳이 꼬치꼬치 묻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직장에서 일할 때는 부끄러움이 덜해지긴 했다. 기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매일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며, 과정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런 결과물만 발행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을 기자라고 밝히는 게 마음이 저어 됐다. 기자를 보는 사회인식이 좋지 않은 영향이 컸던 듯.

퇴사하고 난 뒤, 본의 아니게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누가 업을 물으면 작가라고 말하게 됐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없었다. 글을 납품하는 곳에서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으면서 뒤늦게(?) 새로운(?) 정체성에 자각이 들었다. 이름 말고 날 어떤 호칭으로 부르는데 그 호칭이 내 마음에 든 건 이게 처음이었다. 처음에 그 말 들을 때 기분이 좋았다. 내가 작가라니. 글 쓰는 사람이니까 작가인 게 맞는데 보통 소설가=작가로 많이 생각하니까. 직장인 시절과 비교하면 수입도 현격하게 적지만 작가인 현재가 좋았다. 기자일 때처럼 부끄럽지 않았다.

좋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글 쓰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 계획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 이로써 글 쓰는 과정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는 것. 콘텐츠 서비스에 글을 내보내는 건 아니기에 조회수나 구독 유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브랜드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고 관심을 유도해야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주제를 선정하면 좋았다. 그게 아니라도 괜찮지만. 내가 주제를 선정할 때 이를 자르거나 보류시키는 경우도 없었다. 이건 회사 다닐 때와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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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이다 보니 어디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내 이름만 갖고 일한다는 것도 좋았다. 기댈 곳 없고 동료도 없지만. 날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이 더 들고. 내가 만든 콘텐츠가 결국 다른 곳에 납품하는 거지만 회사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로 좀 더 와 닿았다. 지난해부터 글을 납품하던 곳에 고마운 건 내가 경력이 풍부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닌데도 내 글만 보고 기회를 줬다는 거였다. 내 글을 인정해주고 뭔가 더 해주기도 했고 글을 보내면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는데 소통 과정에서 마음을 담아 이를 표현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감사했다.

글 쓰는 과정에서 내 마음도 많이 회복했다. 1년 전 내 모습을 돌아보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글을 다시 쓰고 나서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 이모도 "자신감이 더 있어야 보인다"라고 말씀해주시고. "경력을 믿고 해 달라"는 관계자 말이나 더 강력한(?) 조건을 걸어 해보라고 밀어주던 예전 동료 말이 용기를 줬다. 의사 선생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글 쓰는 과정은 어려워도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뿌듯하니. 과정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큰 힘이 됐다.

이게 일상이 되고 내 콘텐츠를 다시 쌓으면서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유데미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업계 선배가 쓴 콘텐츠를 찾아보고, 글로벌 기술 기업의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부족한 소양을 채우려 했다. 난 기술 작가로서 체계적 훈련이 부족한 상태에서 근본 없이 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프리랜서로 경력을 좀 더 쌓고 이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막상 그렇게 보고 이런저런 조사를 하니 내게 부족한 게 참 많았다. 개발을 해본 것도 아니고 이 업을 최소 3년 이상 한 것도 아니니까. 영어도 잘해야 한다.

사진=유유

오늘 이런 이야기까지 하려던 건 아닌데- 이건 지난해 회고할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아무튼 그랬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이고 올해도 이 일을 하게 됐으며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더 좋은 글을 쓰는 게 내 지향점이었는데. 어느 순간 글 쓰는 목적과 의미를 잊었고, 마음이 힘든 일을 거친 뒤, 연말에 축제 같은 분위기로 마음은 붕 떴으며, 한결같은 자세로 일에 임하지 못했고, 글은 마무리해서 보냈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지 못해 스스로 못마땅했다는 게 골자.

그러던 차에 연말에 읽은 책이 내 일, 내 글의 목적과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바로 '공부가 되는 글쓰기'다. 이런 좋은 내용을 읽으면서도 바로 마음을 다잡고 행동을 즉시 개선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배움 도구로서 쓰기 의미와 가치를 돌아본다. 저자 윌리엄 진서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 출신. 책을 읽으면서 계속 글을 써야 한다면 어떤 생각과 마음, 자세로 글을 써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게, 이런 수준으로 글을 쓰는 게 나름 의미 있고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이 책에서는 교양교육, 수학, 물리-화학, 음악 등 각 교과영역에서 글쓰기 의미와 역할도 조망한다. 특히 수학이나 물리-화학 등 이과 영역 글쓰기 내용에서 배운 게 많았다. 같지만 않지만 현재 내가 쓰는 글과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인 듯하다. 책에서는 이 분야에서 배운 내용을 글로 풀어쓰는 게 내용을 익히는 데 어떻게 도움되는지도 다룬다. 내가 기술 콘텐츠 쓰길 좋아하는 이유는 글 쓰는 과정에서 나도 많이 공부하고 배우기 때문이다. 기술 콘텐츠가 아니라도 어떤 주제로 글을 쓸 때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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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해지고 관성에 젖어갈 무렵 이 책을 읽고 글쓰기 사명과 책임감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만난 듯하다. 이 책을 읽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보석 같은 책이다. 이 글에서는 책 내용을 주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고백이 글 전반을 아울러서 부끄럽네. 한편으로는 내 이야기가 긴 게 더 낫다(?) 싶기도 하지만. 요즘 브런치 글이 너무 긴데 그래도 인상 깊었던 책 내용을 발췌하며 내 글 의미와 목적을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범교과적 글쓰기'는 글의 주제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모든 글쓰기가 사유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명확히 전제한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나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글쓰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중략) 명료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다. 명료하게 사고하는 과학자의 글은 최고의 작가가 쓴 글만큼 뛰어날 수 있다."

"오히려 이 책을 쓰면서, 한 가지 핵심적인 사실, 즉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깨닫기 위해 글을 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작가로서, 단순히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 가는 과정을 통해, 즉 그 주제의 의미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추론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얼마나 자주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분야의 주제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던가를 떠올렸다. 하다못해 편지 쓰기 같은 가장 단순한 방식의 글쓰기조차 얼마나 자주 불분명한 생각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던가. 마침내 나는 글쓰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배움이 동일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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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책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말부터 버릴 게 없다는 것. 위 내용은 이 책 머리말에 들어간 내용이다. 이 책 주제를 압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고. '내가 아는 것과 말하고 싶은 것을 깨닫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이 공감 갔다. 논픽션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특히 그런 듯하다. 내가 쓰는 글도 그렇고. 정보를 쉽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가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발견한다. 또 개요를 짜고 내용을 축조하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히 파악하고. 글쓰기=배움인 이유.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글쓰기는 결코 '작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미국 성인은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중년의 기술자에게 보고서를 써달라고 해보라. 당장 공황상태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국어 교사나 '언어의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감성적인 영혼만을 위한 언어가 아니다. 글쓰기는 종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사고 행위다. 명료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명료하게 쓸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일기 쓰는 것만 봐도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리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고, 상대방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가다듬고 논리 정연하고 자연스럽게 내용을 구성하는 일. 그러면서 내 생각도 정리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글쓰기가 종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사고 행위라는 말이 와 닿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내가 분명하게 생각하고 내용을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정리해야 글도 명료하게 쓰고. 그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적 동물에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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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글쓰기의 정수는 바로 다시 쓰기에 있다는 점이다. ...(중략) 평생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왔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쓴 모든 문장을 여러번 다시 읽으며 애매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한다. 나는 누군가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내가 쓴 문장을 두 번 읽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한달음에 글을 완성한 뒤 제대로 되었다고 여긴다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은 분명 곤욕을 치를 것이다. 멩켄은 '인류의 0.8%만이 단 한번의 시도로 이해가능한 글을 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수치를 약간 높게 잡은 것 같다. 서두름을 경계하라. 한달음에 '쉽게 쓴' 것처럼 보이는 글은 사실 엄청난 노고의 산물이다. 글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지금까지 미국의 아이들은 작문을 완성된 건축물처럼 생각하도록, 그리하여 적재적소에 주제 문장이 들어가 있고, 철자에 오류가 없는 깔끔하게 정돈된 글을 쓰도록 교육받아 왔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글쓰기에 대한 중대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의 변화다. 글쓰기를 '과정' 중심으로 보는 관점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 즉 최상의 결과물을 빚어내기 위한 반복적인 다시 쓰기와 다시 사고하기를 강조한다. 과정이 훌륭하다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역시 공감 가는 내용이라서 발췌했다. 퇴고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초고를 공들여 써도 퇴고하려고 보면 고칠 것 투성이다. 요즘 내 고민은 퇴고에서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데 많아서(특히 서론) 내가 글을 효율적으로 못 쓰는 것 같다는 거다. 그게 당연한 건지, 정말 문제인 건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새로 쓴 게 더 낫긴 하다. 때로는 그 과정이 싫어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초고부터 진도가 안 나가는 거다. 어차피 뜯어고칠 건데. 그러나 다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감수하며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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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과정 중심으로 보는 관점도 앞서 이야기한 과정에서 떳떳하고 싶은 내 마음과 비슷한 듯했다. 같지는 않지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과물이 어떻듯 일이 끝나도 후련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반성은 하되, 과거에 너무 얽매여서도 안된다는 것. 장단점을 분석해서 다음 글에 만회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과정이 좋으면 결과물도 대체로 좋은 듯하다. 결과물이 빚어내는 부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별개로 치고.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 여기 네가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 있다. 이걸 읽고, 공부하고, 음미해라. 너 역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많은 학생이 자신이 전공하는 학문에도 저술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예를 들어 수학에는 풀이 답안 이상의 글이 있으며, 물리학에는 실험 보고서 이상의 글이 있다."

특정 학문에 대한 글을 쓰면 그 학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뒤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교양교육, 수학, 물리-화학, 음악 글쓰기를 다룬 것도 그런 맥락이다. 돌아보면 대학시절 교양교육에서 글쓰기 과목도 이런 정신과 맞닿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과 기술 글쓰기 등. 수학도 그랬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글쓰기는 졸업하려면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교양과목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희미한 걸 보니 정말 나이 많이 먹었구나. 대학시절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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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작가는 훌륭하고 깔끔한 문장을 써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문장들을 논리 정연하게 조직함으로써 과거 회상이 여러 번 반복되기 십상인 복잡한 글의 여정 속에서 독자들이 자칫 글을 읽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략) 하지만 글 속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면 독자에게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빼앗고, 글은 순례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의 이야기처럼 낡고 진부해질 것이었다.

...(중략) 좋은 소재가 지나치게 많은 글을 쓸 때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든다.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정보를 전부 담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비관적인 감정에 빠져 있을 땐 두가지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하나는 글쓰기가 선형적이고 순차적이라는 사실이다. 문장 A 다음에 문장 B를, 문장 B 다음에 문장 C를 논리적으로 이어간다면 결국엔 문장 Z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꼭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상은 일종의 자기만족이다. 글을 쓸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선행 지식이 아니라 정보를 서술적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능력이다. 어떤 독자는 내가 베네치아 악파에 대한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나는 러프 교수에게 베네치아에 갈 거라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 베네치아 악파나 가브리엘리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베네치아로 날아가 대운하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기 전까지 어떠한 세부 정보도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의 공부는 여행지에서 즉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얻은 지식만으로도 나와 비슷한 비전문가 독자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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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글을 시작하며 미리 생각해둔 것은 마지막 문장 뿐이었다. '성구관리인은 성당 문을 열며 우리에게 따스한 이탈리아식 작별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성당을 나와 베네치아의 혼잡한 거리 속으로 섞여 들었다.' 나머지 문장을 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부적인 정보를 조금씩 덧붙였다가 그것이 글을 읽는 데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거나 독자가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내용임을 깨닫고는 다시 조금씩 지워가기를 반복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내가 얻은 교훈은 이렇다. 독자가 정서적으로 글에 개입할 여지를 제공할 것. 작가는 말을 아끼면서 왜 이 소재가 그토록 감동적인지 설명하고 싶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글을 완성한 뒤에야 만족감이 찾아왔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침내 글을 끝냈을 때, 마치 수학 문제의 풀이 답안처럼 그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만큼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작업도 없을 것이다. ...(중략) 오직 쓰기, 다시 쓰기, 다듬기, 구체화하기의 힘겨운 반복 작업을 통해서만 한편의 명확하고 간결한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이 내용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이 나뿐만 아닐 듯하다. 글 쓰다가 막힐 때 되새기면 좋을 내용. 특히 정보 과다는 나도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 문제이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정보가 많다. 여담이지만 글뿐만 아니라 말할 때도 그런 듯하다. 일전에 아버지께서 "네 말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좋은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말버릇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TMI라는 말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말을 자기만족으로 막 말하고 다녔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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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취하고 활용하는 데도 머리를 좀 써야 한다. 조사할 때도 어느 수준이면 적당하겠다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문득 내 자료조사 과정을 돌아보면 어디에도 볼 수 없거나, 보기 어려운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서 무한대로 자료를 조사할 때가 있었다. 남들이 많이 보는 자료는 식상하고 이미 나온 내용이니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그래야 내 글도 차별화될 수 있을 듯해서. 그러나 이 또한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 같은 존재다.

글 쓰는 과정에 따른 고충도 공감 가는 이야기다. 글쓰기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작업이란 것도. 글 쓰는 과정 자체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지난한 완성 과정이 때로는 버거워서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초고가 초라하면 나도 초라한 기분이고. 글을 완성해야 비로소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내 문제점은 그게 아닐까. 글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모습. 한껏 쏟아부었기 때문에 자식 같고 내 분신 같지만. 글은 글이고, 나는 나인데 거기에서 내 자존감을 너무 찾으려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스스로 병들게 할 수 있고.

"우리 학생들이 왜 글을 못 쓰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심리학과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학생들은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추론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요. 그 얘기가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필독 도서로 처음 내준 책이 빈센트 라이언 루기에로의 '생각의 완성'과 마이클 스크리븐의 '추론'이었어요....(중략) 내 목표는 학생들에게 추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시험 답안을 논리적으로 쓰지 못하면 낮은 평점을 받게 될 것이다. 대신 필요하다면 추가 시간을 주겠다'라고 얘기했지요. 학기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강의가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니 글쓰기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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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실험 보고서를 평가할 때 두 가지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실험 내용의 우수성이 하나고, 실험의 진행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글로 얼마나 훌륭하게 표현해냈는가가 다른 하나입니다. 실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 학생은 최고 점수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글쓰기가 그렇지만, 실험 보고서 역시 일종의 사고 훈련입니다.

...(중략) 저는 학생들이 무엇보다 먼저 실험 보고서 쓰는 법을 익히기를 바랐습니다. 실험 보고서를 쓰면 이전 실험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이번 실험에서는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실험은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실험 계획을 세우면 실험의 진행 과정을 기록할 때나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배운 내용을 하나로 엮어 글로 풀어낼 때 도움이 되지요.

이렇게 실험 보고서를 쓰면 실험 중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죠. 보고서를 읽어보면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고서에 기술된 실험의 진행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조언해줄 수도 있지요. 학생들은 이런 내 조언을 참고해 다시 실험에 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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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포츠 교수라는 사람 이야기인데 실험 보고서 사례를 보면서 내 글 회고 콘텐츠를 돌아봤다. 실험 보고서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회고글과 비슷하달까. 지난해 콘텐츠를 완성할 때마다 회고글을 따로 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회고글을 쓰는 목적과 실험 보고서 취지가 거의 일치하는 듯해서 반가웠다. 내겐 실험을 지도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차이점이지만. 글 작성 과정을 돌아보고 잘한 일과 못한 일을 짚고,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는 것. 다음에는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

"세상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글쓰기가 있다. 설명적 글쓰기, 즉 기존의 정보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가 그중 하나다. 이것을 'A형 글쓰기'라 부르기로 하자. 다른 하나는 탐구적 글쓰기다. 이것은 글을 쓰는 가운데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글쓰기다. 이것을 'B형 글쓰기'라고 부르자. 두 글쓰기 유형 모두 나름의 존재 가치와 유용성이 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주로 'A형 글쓰기'에 집중한다.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글쓰기가 바로 'A형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직원들에게 회사 정책을 설명하는 글 하나 쓸 줄 모르는 기업 경영자, 상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안서 형태로 제시할 수 없는 지원, 제대로 된 제품 설명서 하나 없는 제조 회사, 안내서에 기재된 발병 시 보험금 지급 방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보험설계사, 가정 통신문을 쓰느라 애먹는 교사, 신설된 세금 양식 기재 방법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문 하나 없는 내국 세입청 등등. 'A'형 글쓰기'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든, 읽는 입장에서든,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가장 필요로 하는 글쓰기다. 이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A형 글'을 쓰는 작가에게 가장 먼저 해줄 조언은 단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하라!'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라고 질문하라. 그 다음 떠오른 것을 글로 표현하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한 것을 제대로 표현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라. 당신의 문장이 그 주제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만큼 명료하게 쓰였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당신의 문장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라. 그런 다음 다시 써라.

이어서 생각하라. '다음 문장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 문장은 이전 내용과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가? 도달하고자 하는 결론과도 무리없이 이어지는가?'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그 문장을 써라. 그 다음 또 물어라. '이 문장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호하지 않게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판단되면 또 생각하라. '자 이제 독자들이 그 다음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하라. 명료하게 사고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할 때만 명료한 글을 쓸 수 있다. 이는 매우 단순한 이치다. 진정한 어려움은 글쓰기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있다."

이 책 읽으면서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 데에는 이런 내용 때문이었다. 난 설명하는 글을 쓴다. 어떨 때는 이런 글이 주어진 사실과 정보를 전달해서 창의적이지 않거나 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쓰기 나름이지만. 그러나 이는 가장 실용적이고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글이다. 이런 글을 쓰는 데 자긍심을 가질만하고. 단순 설명 글 같아도 이런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 연속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하니까.

사진=픽사베이

위 내용은 초고를 쓰고 퇴고할 때 유념해야 할 내용을 담아서 좋았다. 아울러 평소 글 쓰면서 고민하고 신경 쓰는 문제를 정확히 이야기해서 마음을 이해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주어진 사실을 글로 풀어내도 문장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 잘 설명하는 글쓰기가 복사, 붙여 넣기와 다른 이유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쓰는 내용이 독자에게 필요한 내용인지도 늘 신경 써야 한다. 또 필요한 내용인데 들어가지 않은 건 뭔지도 확인해야 하고. '글쓰기=생각하기' 이 정의가 너무 좋다.

"메더위는 글을 쓰는 방식이 곧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이라는 것, 즉 문체가 곧 그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문체는 강건하면서도 유연한 그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파인만 역시 그에 못지않게 강건하고 유연한 인격을 가졌음에도 그의 문체는 너무 가볍고 촐싹거린다. 그는 마치 자신을 파티장의 스타처럼 보이고자 하는 것 같다. 동료 과학자를 지칭할 때 그는 매번 'guy'나 'fella' 같은 단어를 쓴다. 심지어 그 친구 'fella'가 오펜하이머나 페르미, 보어 같은 인물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페렐먼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기술로서의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일종의 수공예 기술이며, 작가는 목수와 TV 수리 기사처럼 매일 자신의 연장을 들고 일터로 가는 기술자와 같다. 그러므로 가령 오후 6시까지 즐거운 분위기의 글을 한 편 써내야 한다면 기분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시각까지 그것을 완성해 내는 것이 작가인 것이다. 그를 대신해 그 일을 해줄 사람은 없다."

작가를 기술자로 비유한 게 좋다. 실존적 느낌도 들고. 예술이 아닌 실용적인 일임을 보여주는 표현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까지 글을 완성하는 게 작가라는 말은 뼈아픈 말이기도 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일을 집중해서 하지 않던 게 생각나서. 원래 이 책에서 수학을 비롯해 교과분야 관련 글쓰기를 살펴보려 했고 그 부분이 정말 좋았는데 다른 아야기하느라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 이건 다른 책과도 연결된 것도 있어서 따로 글을 써야겠다. 요즘따라 분량이 너무 기네. 특별히 주제를 잡고 글을 쓴다기보다 요즘 학습 노트로 브런치를 활용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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