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주산성 나무가 건넨 위로

통곡할만한 자리가 주는 느낌

by 딱정벌레
사진=딱정벌레

안개 낀 토요일. 죽주산성에 올랐다. '스코틀랜드 같다'는 말이 있어서 확인차 겸사겸사 가봤다. 에든버러에서 칼튼 힐이나 아서스 시트 같은 언덕에 오른 기억이 좋았기도 하고. 안개가 자욱해서 산성 아래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에든버러나 스코틀랜드가 아니라도 죽주산성 그 자체로 좋았다.
죽주산성에서 마음에 들었던 건 전망보다 첫 번째 사진에 찍힌 나무 한그루였다.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왠지 끌어안고 싶었다. 두 팔로 나무를 안았다. 순간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치솟았다. 슬퍼서가 아니고 편해서 그랬다. 전전긍긍하다 마음을 놓았을 때 오는 평안함. 몸만 기댔을 뿐인데 마음도 기댄 느낌이었다.

사진=딱정벌레

고등학교 시절 연암 박지원의 수필 '통곡할만한 자리'를 좋아했다.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왔다. "사람들은 인간 칠정 중에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아는데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 모른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중략)". 죽주산성 나무를 끌어안으면서 이 수필이 떠올랐다.
우주에 가본 적 없지만 우주인이 지구로 돌아와서 중력을 느낄 때 기분도 이러려나 싶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어딘가에 기대본 느낌도 좋았던 것도 같다. 돌아가기 전 한번 더 이 나무를 끌어안았다. 머리도 나무에 함께 기댄 채. 나무에 귀를 기울였다. "또 올게."

사진=딱정벌레

2021년에는 산에 자주 오르기로 결심했다. 산이 아니라도 공원이나 산성 등 높은 곳을 자주 오르내리자고. 주말마다 실천한다. 남산, 낙산공원, 인왕산 등. 갈 곳 천지다. 산에 자주 가기로 한 이유는 누구나 그러하듯 높은 곳을 내려다볼 때 기분과 느낌이 좋아서다. 마음도, 시야도 넓어지는 느낌. 고층 건물 전망대와 달리 돈도 들지 않는다.
왔던 길을 돌아가고 싶을 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을 격려한다. 산을 오르내릴 때 그 의미를 실감한다. 움직이는 만큼, 쓰는 만큼, 만드는 만큼 내게 힘이 더 생길 거라 믿는다. 'Doing is the best way of thinking'이라는 말을, 에디슨이 최적의 필라멘트 재료를 찾기 위해 핵심 원료인 다양한 대나무 종류를 하나하나 실험했던 일화를 가끔 떠올린다.

사진=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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