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조력자를 생각하며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
사진=픽사베이강원국 작가의 대표 저서라고 하면 흔히 '대통령의 글쓰기'를 떠오른다. 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이분 책은 '강원국의 글쓰기'였다.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나 고충을 집중해서 다뤘다. 많은 영감도 줬다. 글쓰기에 자신감을 북돋워야 하는 이유,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글 잘 쓰는 비결(학습, 연습, 습관), 글이 안 써질 때 대처하는 방법, 자기 생각을 만드는 도구(독서, 토론, 학습, 메모) 등 유용한 내용이 많았다. 어찌나 많았던지 리디 독서노트에 발췌한 구절이 다른 책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200개 넘는 수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책 내용은 글쓰기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데 도움됐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분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글쓰기 조력자' 이야기였다. 책에서 명시적으로 '조력자'라는 표현을 쓴 건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에 그 존재는 조력자라고 할만했다. 이분의 글쓰기 조력자는 내가 봤을 때 아내, 친구 분이었다. 이 분은 글 쓰다 막히면 아내와 대화하거나 친구를 만난다고 한다. 친구가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대화하면서 자신이 답을 찾는다고. 또 글을 쓸 때는 아내와 함께 쓰는데 아내와 대화하면서 소재를 찾고 쓸 글이 있으면 아내에게 말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한다. 그는 '내 곁에는 글쓰기 광야를 함께 가는 동무가 있다'라고 표현했다.
난 그 존재가 부러웠다. 글쓰기는 고독한 과정이고, 글은 혼자 쓰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최근 2년간 내 글쓰기는 특히 그랬다.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 동료를 제외하면 글쓰기 동료가 거의 없었다. 회사 동료가 있었지만 글쓰기 동료라고 하기엔 결이 달랐다. 내 글에 대해 직접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드물었으니까. 전 직장 대표와 그나마 이야기하긴 했지만 동료 느낌은 아니었다. 사후 평가가 많았고, 글 쓰는 과정에서는 시간이 빠듯하고 바쁘다 보니 대화할 틈이 안 났다. 사실 내 마음이 여유 없었다. 그분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이는 좋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 유형에 적용하기에 맞지 않다고 느낀 점이 많았다.
사진=픽사베이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미리 얘기해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회사에 다닐 때 난 '소통도 비용'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그걸 내실 있게 하기보다 줄이는 데 더 뜻을 뒀다.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첫 직장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소통이 의미 있기보다 소모적이라고 느낀 일이 많았다. 소통 과정이 내부 취재나 사내 정치 일환인 경우도 많고. 모든 사람과의 대화가 그랬던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있어서 회사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긴장되고 신경이 곤두섰다. 시간 내서 대화하고 기분이 상하는 경우도 있어서 마음이 저어 됐다. 대화가 즐겁지 않았다. 마음 터놓을만한 소수의 선배와 동기를 제외하면. 이야기를 해도 조직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다. 이런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첫 직장에서는 글이 나가기 전에 소통(?)할 틈이 있긴 했다. 데스크가 기사를 고치고, 지도 편달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은 매우 짧았다. '이렇게 고쳐라'라고 말씀을 전해 듣거나 그분들이 알아서 먼저 고쳤다. 동료보다 스승이라고 해야 할 듯. 사실 글이 이상하게 나가는 게 아니면 그 틈도 없길 바랐다. 일단 바쁘기도 하고, 일단 소통할 상황이 생기면 '내 기사가 이상해서 그런가', '내 기사가 한 번에 이해 안 되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연락 오면 무서웠다. 학보사 동기나 선배는 그나마 글쓰기 동료에 가깝긴 했다. 선배들은 같이 이야기하면서 3교까지 보고, 마감 다음 날엔 교열 조교 선생님과 주간교수가 4차례 교정을 봐주셨으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글쓰기 협업 과정은 이때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어쨌든 글 쓰는 과정은 외롭고 고독하다. 소통이 필요하면서 소통이 귀찮을 때도 있고. 근데 분명한 건 과정에서 소통해야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는 데 도움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같이 협업해서 글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방식으로 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이상하게 바꿔서 내보내는 경우. 사람 변수가 있지만 어쨌든 품질을 우선에 두고 협업하는 게 좋다. 조력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글쓴이도 조금 덜 불안하다. 내가 못 본 문제점을 누군가 발견하고 조언해주니까. 물론 그 조력자가 믿을만한 조력자라는 전제 하에.
사진=픽사베이한편으로는 글쓰기 조력자란 자신이 활용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주위를 둘러보면 조력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있지만 내가 활용하지 못하는 거지.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소통의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거나. 오히려 회사를 나오고 몇 개월 간 쉬고 나서 다시 글을 쓸 때 조력자의 필요성에 눈을 뜬 것 같다. 오랜만에 글 쓰는 게 너무 두려워서 전 직장 동료에게 글을 먼저 봐달라고 부탁했을 때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알려주고, 내가 모르는 점에 대해 답변해줄 때도 그렇고. 글을 써서 보내고 난 뒤에 해당 업체에서 글 내용을 현업 담당자를 통해 검수해줄 때도 그렇다. 말뭉치 글은 특별한 피드백이 없었는데 이미지 인식 글은 기술이 POC 단계에 있지만 담당자분이 성심껏 답변해주고, 담으면 좋을 정보도 알려주셔서 기억에 남았다.
언제부턴가 가족과 친척들이 자발적으로 글에 코멘트를 달아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도 그렇다. 이모는 내가 회사 다닐 때 그런 걸 미리 하지 않은 걸 미안해하셨다. 괜찮은데. 그래서 지금이라도 반응해주려고 무척 애쓰신다. 요즘 이모가 가끔 달아주는 댓글을 보면 아이디어가 너무 기발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거의 한 달 전에 공간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글에 달아준 댓글을 오늘에서야 봤다. '냉장고 손잡이에 손이 많이 닿인 흔적이 남은 걸 보니 공간 빅데이터 시각화가 떠오른다'는 내용이었는데 아이디어가 너무 귀여웠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부모님 코멘트를 받아야 할 때 이모가 대신 글을 써주시곤 했다. 이모가 일기를 읽고, 느낀 점을 써주시고 어떤 내용은 공감도 해주셨다. 글쓰기 방법을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내 글에 반응해주고 느낀 점을 적극 공유해줬으니 이모가 내 오랜 조력자였구나 싶다. 거기에 더해 날 알아주고 이해해주셨으니.
글쓰기 조력자의 필요성을 새삼 떠올리며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글쓰기 조력자가 되고 싶다. 글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면서 도움되고 실용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 그러나 글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이를 이야기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 강원국의 글쓰기를 보면 자신의 글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기대치 않게 누군가에게서 나 역시 글쓰기에 대한 격려를 받고 좋은 이야기를 들어 힘을 얻을 때가 있다. 그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걸 나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살다 보니 지지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실감한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수록 더 그렇다. 꽃을 키우는 마음으로 인간관계도 그렇게 가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