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을 써야 할 이유

글은 적당히 읽고 생각을 부지런히 풀어내기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읽기, 쓰기 노하우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조언을 공통으로 발견한다. 너무 많이 읽지 말라는 것. 책 많이 읽는 걸 반드시 자랑할 필요는 없다는 것.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면 난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 고로 내 생각을 쓰라는 것. 쓰는 게 귀찮아서 읽기로 도피하는 내게 울림이 큰 이야기였다. 읽는 데 집착하지 말고 일정 시간을 내서 내 생각 쓰기를 습관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조언 영향이 컸다.

20대 때는 블로그에 글도 열심히 썼다. 싸이월드에도. 주로 일기였지만 소수의 지인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기 좋았다. 그러나 이후에는 갈수록 시험을 위한 글을 주로 썼다. 논술, 작문 등. 직장인이 되고 나선 내 생각을 글로 잘 풀어내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업이 글을 쓰는 거라서 또 뭔가 쓰고 싶지 않았다. 기사와는 결이 다르지만. 트위터에 가끔 짧은 감상과 인상 비평만 올리는 데 익숙했다. 독서 시간이 부족하니 뭘 더 습득하고 싶고.

SNS에 뭔가를 자주 올리게 된 건 두 번째 직장에 다닌 이후였다(인스타그램은 제외). 그 전에는 페이스북도 눈팅만 했다. 학창 시절에는 SNS 활동을 하는 게 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달랐다. 이미 채용 단계에서 SNS를 살펴보기도 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감시수단(?)이 될 수도 있어서. 페이스북 계정이 두 개인데 11년 전 만든 첫 계정은 실명도 안 썼다. 첫번째 직장에서는 일부 동기를 제외하고 SNS를 공유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이 그걸로 난 판단하고, 뒷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온오프라인, 회사 생활과 개인 생활을 엄격히 구분하고 싶었다.

사진=픽사베이

두 번째 직장에서는 경계가 조금 흐려졌다. 기자의 SNS 활동을 권장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거기는 기자가 스스로 자기 기사를 홍보하고 구전효과도 일으켜야 했다. 업무용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하나 더 팠다. 대표는 미팅할 때 SNS 활동에 대해 몇 가지 조언을 했다. 그중 하나는 업계 중요한 소식이 있으면 몇 줄이라도 좋으니 요약해서 올리라고. 난 그 계정에 가끔 개인적 내용이나 괜찮은 콘텐츠를 공유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재밌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걸 나누려고 한다. 내게도 공유 본능(?)은 있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올렸다.

SNS에 뭔가 쓰는 건 익숙해졌다. 그러나 난 다른 이의 콘텐츠를 요약했을 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쓴 건 아니었다. 가끔 그런 것도 썼다. 허나 인상비평 수준이라서 글이라고 하기 뭣했다. 근데 난 SNS에 그렇게 올리는 것도 내 콘텐츠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공유한 내용을 누군가 의미 있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타인 반응을 신경 쓸 때도 있고. 다른 이의 기사 링크라도 내가 유통에 가담했다면 내 책임이 없지 않겠지만. 내가 내용을 요약 또는 번역해서 올린 걸 온전하게 내 콘텐츠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게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내 일상에 비효율(?)이 발생했다. 공유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SNS에 저렇게 내용을 요약하고 공유하는 건 품이 든다. '순수하고 온전하게 나만의 글도 아닌데 저걸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하고 난 뒤에도 습관이 돼서 계속 올릴 때도 있었다. 이제 내가 업무상 이유로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온전히 내 콘텐츠가 아닌데 그걸 내 것처럼 생각하면 요약, 정리하다 보니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부끄러워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애써야겠지만 그걸 내가 통제하지 못하면 중단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반 고흐 자화상을 첨부했지만 난 편집증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 사진=픽사베이

사실 다른 이의 콘텐츠라도 요약, 번역, 정리해서 올리는 데에는 '읽기의 강박'도 작용했다. 저렇게 내 식대로 정리하면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기억에 좀 더 남기도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찾아보기도 한다. 난 좋은 읽을거리를 '포켓'에 처박아두다시피(?) 저장한다. 자료조사든 무엇이든. 그걸 나중에 몰아서 본다. 글에 쓸 게 아니며 저장만 하고 다시 안 보기도 한다. 늘 습득하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걸 발견하면 저렇게 도장 찍는 방식. 그때 깨달음을 준 문장을 여럿 발견했다.


"독서의 목적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함이다. 독서는 이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명작'보다 '킬링 타임'용 책이 낫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펄프 픽션'은 요약본이 없다. 책의 본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읽은 것을 전제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다. 독서는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다. 자기만의 사고와 태도, 시각은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교양인, 2020


"읽기는 배움의 보편적인 수단이며, 모든 종류의 산출을 위한 가깝거나 먼 준비 과정이다. 우리는 결코 전적으로 홀로 사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럿이 함께 두루 협력하며 사유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탐구자들과 함께 공부한다. 읽기 덕분에 지적 세계 전체는 커다란 편집실에 견줄 수 있다. 그곳에서 각 개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인내, 도움, 근거, 정보, 격려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는 읽는 법과 읽은 것을 활용하는 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중략) 읽기의 첫째 원칙은 적게 읽는 것이다....(중략) 해야 할 공부가 방대하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에서는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한정된 전문 영역에서조차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도서관과 우리의 정신을 가득 채우는 저술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읽는 것은 매우 적다. 허겁지겁 읽는 것, 자제하지 못하는 습관, 정신을 해치는 과도한 마음의 양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고 익숙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안주하는 게으름은 금해야 할 것들이다.

...(중략) 우리는 지적으로 읽어야지 결코 격정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중략)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받기는 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 ...(중략) 이렇게 무절제한 기쁨에 몰두하는 것은 자신에게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 기쁨은 지성의 기능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사유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 혹은 단어, 문장, 장,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실려가는 것만을 허락한다.

...(중략) 반면 지혜롭게 공부하는 이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명석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 유용하게 쓰일 것만을 정신에 간직하고, 뇌를 신중하게 관리하며 뇌에 아무것이나 쑤셔 넣지 않는다. ...(중략) 성찰할 수 있을 때는 절대 읽지 마라. 휴식 시간 이외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관련이 있는 것만 읽어라. 그리고 내면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적게 읽어라."

-'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 유유, 2013


'공부하는 삶'. 사진=유유

이중 가장 뼈를 맞은 내용은 '공부하는 삶'이라는 책이었다. 1920년대에 나온 책이고,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 권위자인 프랑스 수도사가 저자라고 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읽고 좋아서 요즘 한번 더 읽으려고 한다. 책의 부제처럼 '배우고 익히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최대한 담았는데 공부하는 방법, 그중에서도 읽기와 쓰기에 대한 제언이 생각지 못한 점을 건드렸다. 채널예스 과월호에서 어떤 칼럼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이 책도 역시나 유유 출판사에서 나와서 놀랬다. 요즘은 괜찮아서 뭐 읽으면 다 유유 출판사네. 특정 출판사 책에 너무 빠지는 것도 좋지만 않은데. 흠.

위 문장에서 깨달은 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너무 기대지 않고 내 생각을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가 미처 못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고, 다른 이의 통찰에서 내가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독서는 필요하다. 내 생각에만 빠지면 그것도 지적 오만이고, 게으름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읽고 나면 읽은 데서 만족하지 않고 이걸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꼭 그게 내게 어떤 방향을 이끌지 않더라도 이게 좋은지, 싫은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지 정리하는 거라도 내 생각을 확립하는 데 도움될 수 있다. 내용을 따지다 보면 없던 생각도 생길 수 있고, '우연한 발견'을 할 수도 있으니까.

나를 돌아보면 난 너무 남의 생각에 기대려 한 것 같다. 그건 학생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회 현안을 접하는데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사설이나 칼럼을 본다. 나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 어떤 매체의 논지에 내 생각을 맞추려 할 때도 있었다. 학보사 동기와도 예전에 했던 이야기인데.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있지만 내 생각이 스스로 힘으로 설 여력이 안 됐다는 의미기도 해서. 돌아보면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 모습은 기자가 되고 나서도 그랬다. 내 생각보다 취재원 입장에 따라갈 때도 있고. 물론 그 생각에 영향받아서 내 생각을 확립할 수도 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고민하지 않으려 할 때도 많았다. 사유의 게으름.

사진=픽사베이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많이 모르니까. 논리도 부족하니까. 생각을 드러내면 허점이 보일까 봐. 그래서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았다. 내 생각이 중요하지 않은 상황도 많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내 의견이 없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사유의 게으름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 남의 생각에 의지하고 내 생각을 숨기려 했다. 정확히는 내 생각이 없다는 걸 숨기려 했던 것 같다. '난 많이 모르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았어', '솔직히 관심 없어', '내 지적 밑천이 바닥나는 거 보이기 싫어' 이게 내 진심이었던 거다. 그래서 폭식하듯 읽기에 집착한 것 같다. 내 생각으로 서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고.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 브런치를 운영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부족한 생각이지만 일단 그거라도 기록하는 게 좋겠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면서 질서를 갖추기도 하니까.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서 논리적 흠결도 찾고, 보완할 수도 있고. 미흡한 생각이 좋은 아이디어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무질서한 생각 속에 원석이라도 있을 수 있으니. 나중에 길을 잃었을 때 그걸 찾고 방향을 잘 설정했으면 해서, 내 생각으로, 내 두발로 서고 싶어서 글을 쓴다. 답은 스스로 못 내려도 질문이라도 던지고 의문이라도 품으면 그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어제 읽은 책 내용도 다시 영감을 줬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고 했다. '다시, 책은 도끼다'를 쓴 광고인 박웅현은 이를 "매일 주체적인 사색 없이 모든 걸 책에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해석했다. 매일매일 자기가 읽은 책 목록을 SNS에 올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기겁한다. 독서의 백미는 되새김질인데, 다독은 좋지만 여기에 속독까지 더해진다면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이 없을 텐데.

...(중략)... 풍부한 경험치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고, 오래 곱씹어 생각하고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가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은 현장을 자주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사고형 창작자는 하나의 주제를 거듭 탐구하며 글을 써내려 간다. 무엇이 좋고 나쁨은 없다. 나에게 맞는 방법만 있을 뿐, 선택은 온전히 글쓴이의 몫이다."

-'태도의 말들', 엄지혜, 유유,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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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 보니 또 유유 출판사네. 거기 책이 너무 내 스타일인가 보다. 난 매일 SNS에 자신이 읽은 책 목록을 올리는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작가분이 매일 자기가 읽은 책을 별점 매겨서 간단한 리뷰를 올리는데 그게 다독인지, 속독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습관을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나도 어떤 책을 읽을지 정할 때 SNS 후기도 많이 참고한다. 정보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본 책 중 좋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그걸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다만 다독이 자칫 사람의 지성을 남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이들이 예로부터 많았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도 배웠다. 이어지는 글쓰기 내용은 참고하고 싶어서 올린 것.

여전히 난 읽기 강박을 버리지 못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읽으면 지루하고, 여러 책을 한 번에 보고 싶어서 병렬 독서한다. 바람직한 독서법인지 모르겠다. 잡지 읽듯 책도 장별로 그렇게 보는 것. 다양한 지식을 한 번에 얻고 싶은 욕심 탓도 있고. 왠지 그게 진도가 더 잘 나가서 그런 것도 같고. 전자책 단말기는 병렬 독서하는 사람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고. 내가 읽기 강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은 매일 일정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거다. 무슨 글이든. 일기든, 여행 후기든, 글쓰기 후기든, 독서 후기든. 그렇게 하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휘발되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

서푼도 안 되는 고민이고, 유치한 감상이라도 내 솔직한 마음을 한 자 한 자 담아서 쓴 글이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들더라. 그 글이 좋은 글이거나 잘 써서가 아니다. 내 깊숙한 고민, 내 아픈 마음을 잘 드러내서 그렇게 글로 풀어내고 내 마음이 조금 나아졌기 때문이다. 글에 담긴 내 정서가 내 마음에 드는 것. 날 위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게 더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민은 든다. 매일 글을 쓰는 건 좋지만 브런치에 글 쓰는 게 내 마음에 도움이 되는지. 이제 두 달 됐는데 '난 이렇게 글 쓰면서 한 인간으로 나아진 게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좋으니까? 가끔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정리하면 1.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쓴다. 2.그게 내 생각을 글로 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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