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갖는 힘

평생 과제지만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길

by 딱정벌레
사진=픽사베이

영화 '소수의견'이 개봉된 2015년이었다. 배우 김옥빈은 이 영화에서 기자로 출연했다. 당시 제작보고회 기사를 읽었는데 그때 김옥빈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그의 답변에서 기자 또는 언론 역할을 굉장히 잘 이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어렸을 때 진로를 그쪽(기자)으로 정했더라면 정말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략)...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질문을 많이 했다. 이런 질문을 사회에 던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다. 기자 의미를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또는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기도. 예전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지원동기 란에 항상 쓰는 말이 있었다. 왜 기자를 하고 싶냐는 건데. 난 기자가 의심하는 직업, 회의하는 일이라서 하고 싶다고 썼다. 세상에 속지 않으려면 모든 걸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게 내 삶의 지향점이라고. 기자는 내 지향점에 맞는 일이라고.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다고. 그 일을 하면서, 세상 일을 의심하는 걸 내면화하면서 내 삶의 지향점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질문=의심=회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하는 질문도 있고. 의심스러워서 확인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도 있다. 질문을 위한 질문도 있고. 내가 기대하는 기자 역할이란, 또는 질문이란 의심 쪽에 방점이 가 있었다.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일했느냐인데.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생각보다 난 팔랑 귀다. 뻔한 거짓말(?) 또는 둘러대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때가 많았다. 모르는 게 많아서 그랬기도 하고. 어리석게 순진한(?) 점도 있다. 더 많이 의심하고 세상에 도움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의심하는 일, 질문하는 일은 꼭 기자의 영역은 아니다. 편집증이나 의처증 또는 의부증까지 가선 안 되겠지만. 합리적 의심은 하고 살아야 한다. 업으로 보면 기자가 아니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질문하고 의심해야 하는 것 같다. 우문현답도 있지만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얻기도 한다. 좋은 질문을 한다는 건 평생 숙제이기도 한 듯. 그게 사람에게 하는 질문이든,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든. 늘 궁금하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 시각을 구축하고 통찰도 얻을 수 있으니까. 특히 그게 내 생각이 되려면.

2015년 12월 15일 서울 대치동 구글캠퍼스에 온 순다 피차이. 사진=딱정벌레

질문을 만드는 것도, 원하는 답을 얻는 것도 정말 어렵다고 실감한 적이 있다. 수습 시절, 구글의 순다 피차이가 방한했을 때였다. 그때 선배가 뻗치기를 시킨다고 순다 피차이에게 할 질문을 뽑아오라고 하셨다. 10개 넘게 질문을 만들어갔는데 한소리 들었다. 너 이거 다 영어로 말해야 하는데 할 수 있냐고. 질문할 때는 시간도 별로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내 질문 가운데에는 질문을 위한 질문, 쓸데없는 질문도 많았다. 질문을 몇 개로 다시 추렸고 영어로 번역했다. 그러고 선배 검토를 다시 받았다.

삼성역에 있는 구글캠퍼스로 갔다. 순다 피차이는 그날 간담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근데 기자와의 만남은 아니었다. 기자 인터뷰도 없었고. 기자들은 왔지만. 선배가 무조건 따라붙어서 질문하라고 하셨다. 간담회가 끝날 때쯤 틈을 보고 붙어서 질문했는데 그에게서 "Sorry"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기자 인터뷰도 예정돼 있지 않으니 관계자는 날 떼어내려고 하고. 난 지시받은 일을 해야 하니 방에 따라 들어갔지만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선배에게 "쏘리밖에 못 들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가 꾸지람만 들었다. 보고 내용이 너무 빈약한 탓도 있고. 선배는 그날 순다 피차이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이 일정 뒤에는 어디로 가는지 알아오라고 하셨다.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에게 물었는데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홍보 담당자도 있었지만 화장실에 가야 하니 자꾸 오지 말라고 하고. 나도 '이게 그렇게 중요한 정보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 부끄러움은 기자답지 못한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곳 관계자들에게 한 줌도 안 되는 정보를 겨우 듣긴 했다. 그가 여기 오기 전 수원에 다녀왔다고 하고, 이 일정 다음에는 공항에 간다고 한다더라고. 선배에겐 그렇게 보고 드렸다. 돌아보면 그때 그 선배는 과정을 내게 가르치려고 하신 것 같다. 질문을 잘 짜야한다는 것, 그 답은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목표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면 다른 쓸만한 정보라도 찾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 쏘리밖에 못 들었다고 그것만 보고한 나는 취재 과정에서 성의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사진=픽사베이

그 경험이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선배가 나중에 피드백을 해주시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깨달음을 많이 줬기 때문이다. 그때 그 선배는 "기자는 언제든 바로 질문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지금 네 앞에 대통령이 있다면 즉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도록 늘 질문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고. 선배 의미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해석했다. 그건 기자는 항상 의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기회가 생길 때 바로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지성, 고민, 행동력, 추진력 모두 필요했다.

그 뒤에도 다른 선배 밑에서 뻗치기를 여럿 했는데- 슬프게도 내 뻗치기는 실패할 때가 많았다. 수습 때는 게임회사에서 뻗치기를 많이 했다. 판교의 모 게임회사에서 대표를 인터뷰하려고 뻗치기 하다가 직원들 민원 들어온다고 쫓겨났다. 구로의 모 게임회사 사내 카페에 들어갔다가 경호원이 내보내기도 하고. 직원들의 흡연구역을 뺑뺑 돌면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 뭐라도 보고해야 되니까. 5개로 시작한 정보보고가 10개, 20개로 늘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건질만한 게 참 없었다.

거의 다 잊었고, 사실 중요한 내용도 별로 없었다. 다만 지금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판교의 모 게임회사 로비에 있을 때였다. 성탄 이브였던 것 같은데. "사업부가 갑이 돼서 만든 게임은 B급이다, 트렌드에 맞춰서 기계처럼 뽑아낸다", "미래를 내다보고 개발자가 만들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사업부는 이를 따라가는 게 좋다", "게임은 개개인이 만드는 것이며, 스스로 자기가 맡은 걸 하면 결과가 잘 나온다, 위에서 갈구기보다 내가 애정을 갖고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 고민이 너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무리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게임 회사 중에 블리자드 게임 안 따라한 데가 어딨어!"라고. 그랬군요.

난데없이(?) 질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역시나 요즘 읽는 책 때문이다.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라는 책. 이미지 인식 기술 콘텐츠를 쓸 때 질문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저번 글에도 언급했지만 모른다고 다 질문하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답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했고 결국 못 찾아서 질문했는데- 내가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일타쌍피처럼 질문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거 아닌가 싶어서다. 뇌피셜 하기보다 당연히 묻고 정확한 답을 얻는 게 맞지만. 내 수준을 고민하다 보니 질문으로 고민이 이어졌다.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사진=위즈덤하우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누가 이 책을 소개한 걸 봤다. 내게 필요한 책으로 보였다. 그때 바로 안 사고 시간이 좀 지나서 책을 샀다. 아직 읽는 중인데 장 뒤로 갈수록 내용이 흥미진진했다. 특히 어제 읽은 부분. '후속 질문을 통해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이란 장인데 질문의 본질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건데 우리가 모든 걸 궁금해하는 건 아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질문도 안 하거나,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한다. 이 책에서 실감한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람은 자신을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반가워한다는 것.

특히 "질문을 더 잘하려면 상대방에게 더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이 책은 조언한다.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다 보면 과거에 얻지 못하던 혹은 생각지도 않던 정보나 통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유레카 순간을 느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6하 원칙을 사용해보라"는 제언도 좋았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걱정 말고 질문하라는 말도.

예전에 경향신문 이고은 전 기자님의 블로그를 즐겨 봤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 어떤 선배의 취재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일화를 다뤘는데. 취재원의 이야기를 듣고 "아, 그래요? 몰랐어요, 좀 더 설명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꺼려질 때가 있다. "이것도 몰라?"라는 생각에 창피하기도 하고. 근데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하기보다는, 또는 독심술에 빠지기보다는 의구심이 가는데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물어보고 확인하며 넘어가는 게 역시 좋은 듯하다.

구체적 예를 들어달라고 요청하거나 사건의 영향을 묻는 것도 좋은 후속 질문이고. 답변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묻는 것도. 왜 그는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도. 당사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 말은 "대화의 가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것에 있다"는 말이었다. "후속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도, 협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말도 공감이 갔다.

얘네도 대화하는 중인 듯. 사진=픽사베이

생각해보면 난 대화하면서 다른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게 꺼릴 때가 있다.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정말 동의하기 힘들거나 제안을 받아들이기 너무 부담스러울 때는 말을 꺼낸다. 상태가 안 좋거나 너무 싫을 때 돌출 발언도 한다. 그런 말을 안 할 때는- 반대하거나 부정적 의견을 내면 어색해져서 불편해서 일 때?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다. 안 좋을 때는 상대방이 공감하지 않을 때. 그때는 더 이야기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고, 그 말을 꺼낸 것을 후회되기도 한다. 다른 의견을 말해도 날 떠보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거나, 내 의견을 듣고 참작한다는 게 '쇼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어쨌든 질문 이야기로 돌아가면- 후속 질문 이야기를 읽는데 인공지능 학습과정도 생각났다. AI도 사람처럼 쌍방향 소통을 한다. 자신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 질문을 던진다. 이런 의미가 맞는지. 구글 어시스턴트나 다른 챗봇을 보면 사용자가 하단에 자신의 질문과 가까운 질문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이로써 AI는 사용자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춰 답변할 수 있다.

위 이야기는 첫 직장에서 살림 루코스라는 IBM 왓슨 연구소 박사님을 인터뷰할 때 들은 말이었다. AI 정확도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초보 시절 내 유치하고 수준 낮은 질문에 현답을 많이 해주셨다. 박사님은 "이게 사람끼리 대화 방식과 비슷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도 상대방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추가 질문을 던지며 의도를 파악하듯. AI도 이런 방식을 적용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AI는 계륵 같다. 사람과 너무 비슷해도 반기지 않으며, 사람과 너무 달라도 사용하기 불편하고.

그랬다.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고 의욕도 떨어진다. 책을 읽어도 생각이 트이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내가 잘못된 책을 읽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이 장을 읽는데 머리가 깨이는 기분이 들어 기뻤다. 내가 세상에 호기심이 많이 줄었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질문하고 의심하며 답을 찾고 싶다고. 그게 욕망보다 야망을 더 갖는 삶 같기도 하고. 머릿속 쓰레기를 다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환경도 중요하다. 어떤 건 보고, 도움 안 되거나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건 피하는 것도. 결론이 이상한데, 사실 결론도 없는 글이지만. 오랜만에 질문 의미를 두고 생각의 똬리를 틀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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