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콘텐츠가 있는 사람
삶은 누구에게나 고유하니까
사진=픽사베이첫 직장 선배 중 입사 초기 우리 동기를 살뜰히 챙겨준 분이 계셨다. 그 선배는 몇 안 되는 공채 선배였다. 우리와 나이차도, 연차도 꽤 났다. 그분은 우리에게 한 번도 반말하지 않았다. 늘 이름 뒤에 '씨'를 붙여줬다. 내가 경험한 언론사 문화에서 그런 정중한 사람은 드물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언론사 구악 문화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정말?). 그래도 입에 걸레를 문 사람이 적잖다. 특히 남자 기자에게는 더 거칠게 대한다. 그러나 그 선배는 인격적으로 우리를 존중해주셨다.
선배는 종종 우리에게 맛있는 저녁도 사주셨다. 한 번은 해방촌, 다른 한 번은 회사가 있는 서대문에서. 정신없이 회사에 적응하던 시절이라 맛집에 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오늘,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은 복잡했고. 양껏, 마음껏 잘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보기에 먹음직하고 예쁘게 플레이팅 한 음식을 보면 좋았다. 사진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 그 선배는 맛집 내비게이터에 버금갈 만큼 맛집을 잘 알았다. 어떤 출입처 사람은 그 선배가 자신을 남산 맛집에 데려가 줘서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단다.
사실 기억에 남는 건 그 선배가 데려가 준 맛집보다 대화 내용이었다. 기자 초년생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일을 잘하기 위해,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셨다. 그건 라테나 훈계보다 유쾌하게 듣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인상 깊었던 건 그분의 '자기 콘텐츠 강박'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지 4년 반도 더 됐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가물가물하다. 요지는 이렇다. 어떤 취재원이 그 선배에게 '자기 콘텐츠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 직접 들은 건 아니고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는데 선배는 그 이야기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고 하셨다. 그 뒤로 자기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부각하기 위해 애쓰셨다는 일화.
선배의 그 이야기는 울림이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울림은 더 커졌다. 사실 초년생 때는 그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내 콘텐츠를 생각할 여력도 안 됐고. 조직 안에서 일하다 보면 조직에서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서 내 콘텐츠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오해도 한다. 기자는 매일 기사를 쓰니까 자기 콘텐츠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확고한 취재 영역을 만들고, 자신만 쓸 수 있는 기사를 쓰면 그럴 수 있다. 한 분야를 오래 담당해서 OO전문기자가 된다거나. 중요한 건 '매일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떤 기사를 쓰느냐'다. 데일리 매체에서 하루 취재해서 하루 기사 쓰면 자기 콘텐츠를 고민하기 쉽지 않다.
사진=픽사베이물론 남다른 사람은 시간을 쪼개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든다. 보통 사람이 아닌 거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남다른 사람. 그 시간과 노력이 쌓여 그 사람만의 콘텐츠가 생기고, 그의 역량도 일취월장한다. 의미 있는 건 과욋 시간을 내 자기 콘텐츠를 만들면 자신만의 경험 데이터가 쌓인다는 거. 그건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정보.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그게 쌓여서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계산도 서니까. 그래서 '해볼까 말까' 고민될 때 뭐든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니면 하다 접어도 되고, '난 여기까지 해보겠다'라고 계획하고 실행한 뒤, 그 목표를 지나 더 기대할 게 없으면 미련 없이 손 터는 것도 다음 길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니까. 중요한 건 그 과정조차 그 사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이미 그걸 십분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린 스타트업'이니 '애자일'이니 이런 건 조직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한 모습이다.
어쨌든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콘텐츠를 더 고민하게 됐다. 첫 직장과 업무방식과 근무환경이 완전히 다른 두 번째 직장에서 기존에 쓰던 것과 다른 글을 쓰면서 고민의 결도 달라졌다. 회사를 나와서 4개월은 글을 읽기만 하고 쓰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꼴 보기 싫었다. 본의 아니게 다시 글 쓰면서 기자일 때와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글의 목적도, 주제도, 범위도, 대상도 바뀌다 보니 그랬다. 이쪽도 훈련이 필요한 분야인데 난 그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쓰고 있구나. 그러나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독자가 바뀐다면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들었다. 이것보다 더 난이도 있는 글을 써야 한다면 쓸 수 있을까.
아무튼 이런 과정에서 답은 없지만 이런 고민이라도 일단 글로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글 쓰면서 과거에 느꼈거나 현재도 느끼는 고민. 초등학교 시절 일기 쓸 소재가 없으면 그걸 주제로 일기 썼듯. 브런치를 시작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어쨌든 사람은 일하는 동물이니까 일에 대한 고민을 글로 써보자고. 자기 계발 콘텐츠처럼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할 입장은 못 되고 그렇게 말할 거리도 없다. 내가 일한 방법을 쓴 글은 있지만 절대 그게 추천할만한 내용은 아니다. 잊히기 전에 기록이라도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 일에 대한 고민도 일기 쓰듯 쓰는 거. 수습기자 때 '수습 일지'를 매일 썼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방 정리 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그때 어떤 일이 있었고,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되새기는 데 도움은 됐다. 귀엽기도 하고?
예전 동료가 꾸준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자극이 됐다. 그분의 본업은 다른 일이지만(근데 개발도 당연히 콘텐츠를 만드는 거라고 난 생각) 글 쓰는 데 애정이 많아 보였다. 남들은 주말을 잉여처럼 보내도 별 죄책감 느끼지 않는데 그분은 글이든, ppt든 꾸준히 만들었다. 그분의 글을 처음 보고 몇 개월 지나 다른 글을 봤을 때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데다 글이 더 좋아진 건 물론이고 재미도 있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뒤로도 계속 그랬다. 습관의 힘이 엿보였다. 거의 매주 거르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것도. 후기를 들으면 글 쓰는 과정에서 고민이 깊고 진지해서 또 놀랬다. 멋있고 보기 좋았다.
그분의 글쓰기를 응원하면서 나도 평소 쓰는 것과 다른 글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글 쓰는 게 요즘 새로운 일상이 됐다. 특별하지 않아도 기록 차원에서 내가 했던 일과 느꼈던 고민을 풀어내는 것도 의미 있으니까. 각자 저마다 고유한 경험이 있듯, 나도 나만의 경험과 고민이 있으니까. 기대치 않게 누가 공감해주면 그건 반갑고. 누가 도움될만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반면교사도 교사라고 내 글을 보고 '난 저러지 말아야지' 이런 결심을 준다면 그것도 괜찮다. 실은 어제 친구가 "요즘 네 브런치 읽는 재미로 지내요"라고 말해줘서 저녁에 입이 귀에 걸렸다. 친한 언니도 글 좋다고 트위터로 쪽지를 보내줘서 기뻤다.
사진=픽사베이무엇보다 기분 좋았던 '자신도 뭔가 써보고 싶어 지는 뭔가 설레는 글이라 좋다'는 친구의 말이었다. 내겐 너무도 최고의 칭찬. 나도 그 친구와 언니의 글을 보고 싶다. 내 멋대로 그분들이 썼으면 하는 글의 주제를 이것저것 떠올린다. 그만큼 자신만의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이니까. 나도 아버지, 언니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권했다. 각자 자신만의 경험이 있고, 오랜 기간 특정 업무에 종사했으니 시행착오를 쓰기만 해도 좋은 기록이 될 것 같다고. 아버지는 취미 생활에 대해 써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다. 언니는 일기는 종종 쓰지만 누구에게 공개하는 글은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안 해 본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기자일 때보다 지금 오히려 글쓰기를 다룬 책을 많이 읽는다. 여러 책을 읽었는데 최근 본 책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오래 하는 힘'이라는 책인데 기록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다룬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읽기와 쓰기 가운데 전두엽 발달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쓰기다. 읽기 역시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활동이지만 전두엽을 직접 활성화하는 데는 쓰기가 더 효과적이다. 일기를 쓰든 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므로 사고의 중추인 전두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무엇을 쓰든지 상관없다. 생각해서 쓴다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저자가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건 성격 고치기 일환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쓴다는 건 뭔가를 창조한다는 것, 전두엽도 많이 쓴다니. 왠지 읽는 걸 넘어서 뭔가를 쓰면 똑똑해지는 기분이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쓰면서 평소 안 쓰던 뇌도 활용하고 생각이 트이면 좋겠다. 그래서 매일 뭐든 하나씩 쓰려고 한다. 100번 읽어도 그걸 내 방식으로 소화하거나, 거기에 영감받아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그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글을 어디서 본 기억도 난다.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음악을 듣든 거기서 느낀 점이 있으면 뭐든 풀어보고. 통찰력있는 내용이 아니라도 좋으니 생각을 글로 풀어내면 무질서한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도 드니까.
그러나 늘 스스로 이건 명심한다. 자연스럽게 쓰자는 것. 억지로 쓰지 말자는 것. 쓸 게 없거나 할 말이 없으면 억지로 쓰지 말자는 것. 남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날 위해 쓰자는 것. 글이 어쩌다 추천글에 올라가면 기분이 좋고, 조회수가 오르면 신기하다. 그러나 그걸 의식하는 순간 나답지 못한 글을 쓸 수 있다. 돈 받고 쓰는 글은 그런 걸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자유롭게 나다운 글을 쓰는 게 좋다고 본다. 남의 플랫폼에 좋은 일 할 이유는 없으니. 자꾸 일기같은 글이나 여기에 끼적이는 건 그런 까닭도 있다. 난 글을 쓰면서 날 위로하고 싶다. 돈받고 쓰는 글은 위로와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나 돈에 구애받지 않는 글은 위로만 준다. 난 내게 가장 솔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