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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은 허망함일까 허함일까

후배 모친상을 다녀오면서

by 혜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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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의 후배 모친상에 다녀왔습니다. 문상을 가는 길은 언제나 무겁고, 돌아오는 길은 왠지 모를 공허함에 잠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무게와 공허함 사이에 묘한 단어 하나가 끼어들어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바로 '허망함'과 '허함'입니다.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평소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놀랐습니다. 교통사고가 원인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 놀라움은 곧 깊은 허탈감으로 변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상주인 후배를 마주했을 때, 후배의 격한 눈물을 보며 저 역시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감정이 치솟았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참, 허망하다." '허망하다'. 제가 이 단어를 떠올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머니의 삶.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고,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살아셨을 겁니다. 수십 년의 노력, 사랑, 기쁨, 고통... 이 모든 것이 '교통사고'라는 단어 하나로, 너무나 덧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내일이 있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마치 삶이 영원할 것처럼, 혹은 적어도 계획한 대로 흘러갈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가장 견고해 보이던 일상이 한순간에 흩어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헛되고 망령되다는 한자 뜻 그대로, '허망함'은 "내가 헛된 꿈을 꾸었구나" 하고 깨어났을 때의 차가운 절망감과 같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의 모든 노력과 존재 자체가 '무상(無常)'하다는 냉혹한 진실 앞에서 오는 큰 좌절감인 거죠.

조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공기는 유난히 차가웠습니다. 격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마음속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었습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저는 문득 '허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분명히 아까 상실의 충격에서 느꼈던 '허망함'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허망함'이 인생에 대한 거대한 회의였다면, 지금의 '허함'은 제 내면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허함'은 말 그대로 '비어있다(虛)'는 뜻입니다. 슬픔이 가득 찼다가 빠져나간 자리,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채워졌던 따뜻한 자리가 영구적으로 비어버린 느낌입니다.

'허망함'이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구나"라는 철학적인 좌절이라면, '허함'은 "마음속이 텅 비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아 쓸쓸하다"는 심리적인 공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례식장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다음과 같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소식, 상주의 눈물 앞에서 느낀 인생의 덧없음과 허탈감은 '허망함'으로, 감정의 파고가 지난 후, 남겨진 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텅 빈 공간과 쓸쓸함은 '허함'이라 나타납니다.

장례식 후의 마음은 '허망함'이라는 커다란 깨달음과 '허함'이라는 잔잔한 상실감이 교차하고 응축된 감정 덩어리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까운 사람의 떠남 앞에서 이 두 감정을 만납니다.

이 두 단어는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모두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가장 솔직한 상실의 언어입니다. 억지로 채우려 하지 말고, 그 허망함과 허함을 잠시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떠난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일지도 모릅니다. 덧없음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마음. 그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깊고 성숙한 결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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