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결 쓰기

인생 중반을 넘어 다시 묻는 삶

하루하루를 그대로 오감을 느끼며 살아 가자

by 혜윰사
본문.png

어느 순간, 나이 탓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어 나온다. 예전에는 그 말을 하는 어른들을 보며 아직 멀었다고, 그렇게 쉽게 세월을 핑계 삼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모르게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조사 소식이 잦다. 달력에 표시된 경조사보다 마음에 먼저 표시되는 건 ‘떠남’, '보냄'이라는 단어다.

엊그제 고향 친구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위로의 말을 건넨 후 소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인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지금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까지도.

서로 이야기를 하다 문득 계산을 해보게 됐다. 만약 80살을 인생의 기준점으로 잡는다면, 나는 이미 70%를 살아온 셈이었다. 남은 시간은 고작 30%. 숫자로 적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아직 하고픈 일과 알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미 반환점을 훌쩍 돌아버린 것이다.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는데, 내가 서 있는 위치만 달라진 느낌이 들며 마음 한 편으로 서늘해졌다.

최근 들어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밤을 새워도 끄떡없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작은 무리에도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계단 몇 층만 올라가도 숨이 가빠지고, 이유 없이 피곤한 날이 잦아졌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내 몸’이라는 감각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건강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성과와 속도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얼마나 오래, 무탈하게 갈 수 있는지가 더 큰 화두가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왜 이렇게 바둥바둥 거리며 살고 있을까?', '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늘 다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은 끝없이 쌓여 있고, 머릿속은 늘 계획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잘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멈추는 법을 잊은 채 관성처럼 움직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쪽에 있었다. 남의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고, 의미 없는 비교와 경쟁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늘 ‘조금만 더’를 요구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모아두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그렇게 미뤄둔 삶이 계속 이어지고 쌓이고 있다.

장례식장을 나서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떠나간 수많은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는 모르지만, 이 들 역시 수많은 ‘언젠가’를 마음에 품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언젠가는 과연 얼마나 왔을까.

언젠가부터 작은 순간들이 유난히 깊게 느껴진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는 시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여유, 아무 말 없이 걷는 산책길. 예전에는 생산성이 없다고 지나쳤던 순간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이 오히려 나를 숨 쉬게 한다.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전히 걱정은 많다.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고, 현실적인 문제들은 매일같이 나를 부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무작정 달리지는 않으려 한다.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점검하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남은 30%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만, 그 시간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기보다, 덜 후회하는 쪽으로. 더 빨리 가기보다, 조금 더 나답게 걷는 쪽으로.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걱정에만 매여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이 탓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젊음을 내세우기엔 솔직하지 않은 나이. 그 어중간한 지점에 서서 오늘도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완벽한 답은 없겠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오늘은 조금 덜 바둥거리고, 조금 더 숨을 고르며 살아가고 싶다. 남은 시간을 세는 대신, 하루하루를 제대로 살아보는 쪽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시 멈춤으로 나를 바라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