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1. 미래의 경제를 책임지는 셰르파의 역할
교토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794년 간무 일왕이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한 이후, 1869년 당시 메이지 정부가 에도(現,도쿄)를 도읍지로 지정하기까지 천수를 누린 고도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역사에 대한 자긍심 때문인지 일부 교토 시민들은 여전히 교토가 일본의 수도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공식적으로 도쿄를 일본의 수도라고 선언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도가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인 도쿄 東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 것과 일왕 즉위식에 사용되는 전용 좌석인 다카미구라가 여전히 교토에 있는 것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들의 믿음일 뿐이지만 말이죠.
교토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그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습니다. 약 5,300만 명의 관광객들이 17개의 세계 문화유산과 50여 개의 일본 국보, 300여 개의 중요 문화 자산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교토를 방문하고 있습니다.[2017년 기준] 일본 최고의 관광도시를 넘어 전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도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최고의 관광도시라는 명성만으로 교토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의 대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 Kawabata Yasunari가 자신의 소설 ⟪고도⟫에서 “천 년의 고도가 서양의 새로운 것을 가장 빨리 끌어 들였다”고 설명하고 있듯이 실제로 교토는 고도로서의 명맥을 유지함과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기상이 넘치는 신도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1869년 일본 최초의 근대적 초등학교인 ‘릿세이 소학교’가 개교식을 거행하였습니다. 1880년에는 일본 최초의 공립 그림학교가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1891년에는 일본 최초의 수력 발전 사업이 진행되었고 1895년에는 일본 최초의 시가지 열차인 칭칭전철이 도입되었습니다. 1897년엔 일본 최초의 영화상영이 릿세이 소학교에서 진행 되었습니다.
그뿐일까요. 1927년에는 일본 내 타 도시의 모형이 된 중앙도매시장이 일본 최초로 개장했습니다. 1956년엔 일본 최초로 지방자치단체 직영 오케스트라도 탄생했습니다. 1966년에는 일본 최초로 국립 국제 회의장인 국립 교토 국제 회관도 개장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규제하고 방지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기본 협약인 교토 의정서 Kyoto Protocol가 체결된 장소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을 대표하는 혁신의 본보기가 된 도시가 바로 교토입니다. 일각에서는 도쿄로 천도한 이래, 도시의 명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이 다시 교토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혁신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합니다. 수도로서의 지위는 잃었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던 셈입니다. 과연 천 년 이상을 존속한 도시답게 교토 사람들의 스케일과 자부심만큼은 알아줘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독 교토에는 글로벌 대기업의 본사가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Inamori Kazuo 회장의 교세라Kyocera, 몇 해 전, 포켓몬 GO 로 다시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회사 닌텐도 Nintendo, 친절택시의 대명사이자 재일교포인 유봉식 회장이 설립한 MK택시도 모두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음향용 전자부품 세계 1위 기업인 니치콘 Nichicon, 일본 기업 최초로 미국 대기업과 계약을 맺었던 무라타 Murata, 가정용 혈압계 분야에서 세계 최대 시장 점유율 확보 기업인 오므론 Omron도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2015년 미국 환경보호국이 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을 밝히는 데 썼던 계측시스템도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는 호리바 제작소 HORIBA가 만든 것입니다.
경쟁이 없는 카페, 열 한 번째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가 교토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균형감 때문입니다. 이러한 균형감은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교토 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교토의 개성으로 발현되고 패턴으로 이어져 교토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굳게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다시 교토를 바라보면 비단 교토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오래된 가게나 새로운 가게들까지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자기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작은 가게와 그곳의 사람들도 하나의 기업과 기업인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기업은 각 특성별로 업무를 세분화하여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등 전체적인 구조의 전문성을 띕니다. 반면 작은 가게는 구조의 전문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외부 위험에도 쉽게 노출되기에 기업과 단순히 비교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가게는 구조의 전문성을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완합니다. 그들은 가게를 정직한 활동의 수단이자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인식합니다.
수익은 목표가 아닌 결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루도 허투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토의 작은 가게들은 미래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셰르파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가게도 이와 같이 나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안내자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할 무렵 트래블링커피Traveling Coffee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앞서 언급했던 일본 최초의 근대적 초등학교인 구(舊)릿세이소학교 교무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2015년 개최된 교토의 국제 현대미술 축제인 아트 그리드 교토 ART GRID KYOTO의 일환으로 한시적으로 개업했다가 이후 여러 사람들의 요청과 기대에 힘입어 재개업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왜 많은 사람들이 재개업하기를 바랐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 바로 해결되었습니다.
아마도 재개업을 원한 이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듯합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의 아련한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마음의 샘을 자극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곳이기에 기억의 영사기도 덩달아 재생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오랫동안 조금 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게다가 예전 학교에서 쓰이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마스터가 내려주는 커피의 마리아주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접착제와 같은 커피가 되어 발걸음마저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때 조우한 장면이 두고두고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이 아니었을까요.
허나 무엇보다 이곳의 재개업을 바랐던 이들은 이곳이야말로 교토의 어제이자 오늘이며 내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과거를 재해석하고 현재를 바탕으로 내일 조금 더 멋진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길 기대했을 터입니다.
교토만의 특별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교토의 인프라가 되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가 링크될 수 있는 근원이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미래 경제를 책임지는 셰르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커피숍이 묘하게 오버랩 되었습니다. 역사와 혁신은 무시된 채 그저 웅장하고 화려한 것에만 치중하고 온갖 최신의 장비들이 커피숍의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스페셜티 커피를 외치며 브랜드를 화제를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란 관심과 애정으로 생겨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국내에선 그런 경향을 자주 접한다는 인상이 짙어지다 보니 어쩌면 교토의 커피숍을 혼자서 흠모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 트래블링커피에 방문하신다면 꼭 교토와 링크될 수 있길 바랍니다. 깊은 헤아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을 틔우게 된 교토의 균형감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나아가 균형감으로 인해 우리의 생각이 조금 더 자랄 수 있길 바랍니다. 저 또한 미약하지만 조금 더.
TIPS.
트레블링커피는 지난 2018년 3월 20일부터 릿세이소학교 남쪽 운동장에 건설된 가설 점포에서 도서관 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릿세이소학교는 호텔과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오는 2020년에 개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특히 다카세강(江)을 바라보면서 편안히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날씨가 좋은 날 방문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큐앤컴퍼니 대표파트너, 김 도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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