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3.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등산을 결심한 A씨와 B씨가 있습니다. A씨는 유명 등산의류 전문점에 가서 옷과 장비를 준비합니다. 자동차도 SUV로 바꾸면 좋겠다며 상상하기도 합니다. 지금 자신의 승용차로는 등산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디자인의 재킷을 고릅니다. 기능적인 면도 놓칠 순 없습니다. 점원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고어텍스 Gore-tex 소재에 눈길이 갑니다. 이왕 사는 김에 동일한 소재의 등산화도 구입합니다. 나침반과 고도계 기능이 들어간 산악 전문 시계도 빼놓지 않습니다.
조금 더 저렴한 등산복을 구입할까 망설였지만 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 자신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올려야 하니 브랜드의 로고가 큼직하게 박혀 있는 재킷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A씨는 자동차의 시동을 겁니다. 꽤 높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국립공원으로 갑니다. 해발 800미터 고지에 위치한 고산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기슭에서부터 등정을 하면 좋겠지만 애써 힘을 들일 필요 없다며 자위합니다. 오직 정상에 올라 사진을 찍는 모습만 상상합니다. 그는 등산화의 끈을 다시금 조입니다. 나무 바닥이 깔린 편안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반면 B씨는 가까운 서점으로 향합니다. 등산과 관련된 매거진을 살펴봅니다. 여러 산악인들의 조언이 담겨 있어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특수부대 SAS의 전직 특공대원이 저술한 산악 생존법과 같은 전문 서적도 훑습니다. 혹시나 모를 조난에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은 물론 등산과 관련된 지식을 함양하기 위함입니다. 야생의 꽃과 새, 곤충과 관련된 각종 도감도 빼놓지 않습니다. 고심 끝에 몇 권의 책을 구입합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켭니다. 전에 봐둔 등산복을 구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고어텍스 Gore-tex와 심파텍스 SympaTex 원단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히 클릭을 합니다. 두 소재가 기능 면에선 유사한데 가격 차이가 있어 조금 더 확인해 볼 요량입니다.
며칠 뒤, B씨는 동네 뒷산으로 향합니다. 그의 손에는 서점에서 구입한 야생화 도감과 조류 도감이 쥐어져 있습니다.
등산복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동네 뒷산을 탐험하고 나서 조금 더 높은 산을 오를 때 구입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그는 천천히 꽃과 나무를 보며 올라갑니다.
우리의 창업 과정을 위의 ‘등산에 임하는 A씨와 B씨의 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A씨가 커피전문점 창업을 결심했다면 우선 서울의 강남이나 홍대 등에 있는 유명 커피전문점을 먼저 찾았을 것입니다. 그곳의 메뉴와 인테리어 위주로 사진을 찍습니다. 판매하는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합니다. 벤치마킹을 위해선 필수입니다. 해당 매장의 에스프레소 머신도 탐구 대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좋아요’를 누른 곳도 빼놓지 않습니다. 개중에 마음에 든 매장에선 커피 원두를 공급받을 수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이후 A씨는 커피전문점을 열 장소를 찾습니다. 위치는 가급적 A급 상권이면 좋겠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혹은 도심의 중심 상권도 좋습니다. 비용은 다소 들지 모르나 유동인구가 많아야 광고 효과도 덩달아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론 에스프레소 머신은 어떤 브랜드를 구입할지 정합니다. 그동안 찍어둔 여러 커피전문점의 사진을 참조하면서 인테리어도 구상합니다.
대표 메뉴로는 아몬드 누텔라 두유 라떼를 고릅니다. 아몬드 라떼와 누텔라 라떼를 판매하던 커피전문점에 유독 손님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유를 기반으로 하면 다를 바 없으니 우유 대신 두유로 낙점 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가게를 오픈할 일만 남았습니다.
반면 B씨에겐 대표 메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커피 원두를 어디에서 공급받을지 당장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인테리어도, 에스프레소 머신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찾아오게끔 하는 방법도 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B씨는 커피를 제대로 배우는 방법에 몰두합니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떠올려 봅니다. 커피를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생각도 계속합니다. 무엇보다 B씨는 자신이 왜 커피를 만들어야 하는지, 커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B씨도 국내 커피전문점 몇 군데를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커피전문점은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어딘가 천편일률적인 모습에 아쉬운 감도 들었습니다. 메뉴나 인테리어 등에 집착하고 있는 경향을 느끼니 모든 것이 평범해 보였습니다.
B씨는 커피 보급률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커피 선진국을 가봐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한정된 범위 안에서 예산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이 또한 창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생각합니다. B씨는 가까운 일본으로 향할 계획을 짭니다. 며칠간의 일본 커피전문점 방문은 이유 있는 선택입니다.
그는 구글 지도로 방문하고자 하는 커피 전문점의 위치를 정합니다. 방문한 곳에서 읽을 생각으로 몇 권의 책도 가방에 꾸립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기 위해 노트와 볼펜도 챙깁니다.
B씨는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걷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합니다. 새삼스레 느끼지만 인테리어와 에스프레소 머신은 중요치 않습니다. 스페셜티 커피인지 아닌지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그만의 방식대로 여러 커피 전문점을 방문합니다. 훗날 열게 될 자신의 공간, 그 속의 분위기를 현지에서 스케치합니다. 자신의 색채를 물씬 풍겨 자기다움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찾습니다.
경쟁이 없는 카페, 열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제가 확대해석의 오류를 범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등산이라는 단편적인 상황을 전체로 적용해 가늠하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몰고 가고 있단 얘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협한 관점에서 글의 서두를 장식한 까닭은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여 자기다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A씨의 커피전문점 창업 과정을 보면 수단뿐만 아니라 상품에 집착하는 경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어떻게 판매해야 하는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좋은 상권이면 고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멋진 인테리어면 더 많은 고객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대표 메뉴라면 고객의 마음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고객 입장에선 큰 차이가 없단 사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최근 레트로 열풍에 맞춰 꾸민 커피전문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최신의 유행이 지겨워진 고객은 잠시 레트로풍에 열광하지만 같은 콘셉트의 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니 고객 입장에선 이내 별 감흥이 없게 됩니다.
B씨의 경우에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대신 스스로 차이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수행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기반으로 커피의 가치를 고민합니다. 커피는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피를 공간과 연결하여 가능성을 다양화하려고 합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합니다.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다잡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그는 커피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인테리어를 차별화의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차이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기반으로 자기다움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기, 자기다움으로 오롯이 무장한 커피전문점을 소개합니다. 교토 시내 가와라마치와 이어지는 테라마치 상가를 북쪽으로 끝까지 올라가면 있는 스마트커피 SMART COFFEE입니다. 이곳은 1932년에 개업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당시에만 해도 상호는 스마트 런치 SMART LUNCH 였습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스마트 커피로 개명하고 런치 메뉴는 판매를 중단했다가, 1990년대부터 다시 런치 메뉴를 시작했습니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가게의 2층에서 9가지의 음식을 제공합니다. 최근에는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에게 유명세를 타고 있어 런치 메뉴를 먹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토 현지 사람들도 즐겨 가는 곳이라 런치 메뉴는 고사하고 커피도 기다려야 마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만약 이곳을 방문했을 때 줄이 늘어서 있으면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지 않길 권합니다. 이곳이 어떻게 80년이 넘도록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상호에 쓰고 있는 스마트 smart 가 단순히 현명하단 뜻이 아닌 ‘멋진 서비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간혹 교토의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청년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객이 있든 없든 누구 하나 스마트폰을 꺼내 보지 않습니다. 눈동자는 고객의 테이블에 맞춰져 있습니다. 물컵의 물이 떨어지면 이내 가득 채워집니다. 고객이 공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스마트 커피의 자기다움을 자신의 감정에 담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함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다음에 다시 가고 싶은 나만의 장소가 됩니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면서 적어도 이곳에선 치장과 가식은 잠시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멋진 서비스는 과연 누구를 위한 건지 스스로를 일깨우면 좋겠습니다. 마침내 이곳에서 어제의 결심을 반추하고 오늘의 생각을 키워 내일의 희망으로 그릴 수 있는 감정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 곳의 프렌치 토스트는 일품입니다.
큐앤컴퍼니 대표 파트너, 김 도 환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