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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다시 한 번 교토

#Issue 20. 연재를 마무리하며


   처음 교토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을 때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를 읽은 직후였습니다실제 있었던 금각사 방화 사건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은 작가의 극우주의 성향 때문인지 국내에선 호불호가 갈리지만일본 근대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금각사의 방화범 하야시 쇼켄은 1929년 3월 19일 교토부 마이즈루시 근교에 위치한 서덕사의 절간에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하야시 쇼켄은 4세 무렵부터 말을 더듬게 되어 주위로부터 놀림당하는 것을 괴로워하였고친구도 없이 혼자서만 지냈습니다이후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나큰아버지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1942년 그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출가하여 금각사의 도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그는 절에서도 혼자 지냈고 괴팍한 성격 탓에 다른 도제들과 자주 다퉜습니다1947년에는 오타니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학업에 열중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3학년 무렵 그는 79명 중 79등을 하면서 갑자기 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1950그는 본과에서도 학업을 게을리한 탓으로 지도 교수에게 주의를 듣자 금각사의 장로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이후 옷과 서적을 판 돈으로 유곽을 3일 동안 드나들었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구입했습니다.

     

   방화 당일인 1950년 7월 2일 새벽 그는 화재경보기의 고장을 확인하고 자신의 방에서 소지품들을 꺼낸 뒤짚단을 들고 북쪽 문으로 금각사 내부에 들어가 불을 붙였습니다그는 예정대로 금각 누상에서 죽으려 했으나 2층 입구가 잠겨 있어 올라가지 못하자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이후 금각사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며 수면제를 먹고 단도로 몸을 찔러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하야시 쇼켄은 저녁 무렵 산기슭에서 체포되었습니다그는 처음에는 혼자 죽을 생각이었고 금각사를 불태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하지만 이후 진술에서 금각사의 장로가 자신을 은근히 따돌린다고 생각해서 방화를 결심했다고 번복했습니다.


   공판에서 검사는 악성 행위로 규정하면서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금각사를 불태웠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습니다. 2차 판결에선 변호인이 주장한 심신미약에 관한 정신감정에 입각하여 징역 7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최종적으론 특사로 형량이 감형되어 1955년 10월 교토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했습니다그러나 출소 이후 환각망상 등의 증세에 시달려 바로 입원한 뒤 만 27세에 12일 모자라는 나이로 폐결핵 때문에 사망했습니다.



   한편 소설에선 주인공 미조구치는 금각사를 불태우고 허겁지겁 뒷산으로 올라가 손에 잡힌 수면제와 단검은 던져 버린 채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바라보면서 살아야지라고 읊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사실 하야시 쇼켄이 금각사를 불태우려고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위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다만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심이라는 극적 요소를 소설 속 주인공 미조구치에게 주입함으로써 풀리지 않는 금각사 방화의 이유를 완벽하게 완성시키고자 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를 절대가치로 형상화하였고 변변찮은 실제 방화범과 소설 속 주인공을 비웃을 수 있는 유일한 상징으로 그렸습니다이러한 환상이 질투를 넘어 집착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안정된 삶을 갈구하는 둘은 결국 금각사를 불태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경우는 다르지만저는 교토라는 도시에 질투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다행스럽게도 질투심은 집착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여전히 교토를 음미하면서 매년 한두 차례 발걸음을 향하게 만듭니다교토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또한 받아들입니다늘 흐트러지지 않습니다도시 그 자체는 동적이면서도 도시를 이루고 있는 집과 절과 강과 가게들과 같은 모든 요소는 정적입니다당연히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오감으로 마디마디 스며들어와 무료하지 않은 시간을 제공합니다.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어느새 교토에 있는 저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어느 소설가가 얘기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루해질 때 저는 늘 교토로 여행을 떠났던 것 같습니다그곳은 언제 가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제 발걸음이 교토의 구석구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교토를 처음 방문한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그 동안 약 서른 번쯤 교토를 다녀왔습니다이제 더 이상 금각사 때문에 가진 않지만다시 한 번 교토를 가게 된다면 그땐 금각사를 다녀올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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