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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R 부동산 TOKYO R
Real-Estate



노출이 가진 가능성



어느 부동산 중개소의 온라인 사이트에 이런 제목으로 매물이 하나 나왔다. 이 건물을 담당하는 직원은 골조만 있는 150㎡ 공간에 30㎡의 발코니가 붙어 있고 화장실과 욕실도 텅 비어 있는 이 매물을 가리키며 “집이란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택이란 게 내용물만 보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품도 아니니 차라리 뼈대만 있는 집을 사서 마음대로 수리해 거주하라는 의미의 광고였다.




심상치 않은 부동산 광고들


부동산을 찾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맞지 않는 광고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집을 자산의 형태로 보기 때문이다. 집을 구입해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것이 주요 과제이기에 뛰어난 입지와 편리한 주변 환경, 우수한 구조 설계 등이 집을 구입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 부동산 중개소는 심상치 않다. 위에서 언급했던 광고는 약과다. ‘최고의 옥탑방’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매물은 8층 건물 옥상 한가운데 있는 10㎡ 남짓한 원룸을 소개하면서 한껏 기지개를 켜고 싶게 만드는 개방감 가득한 옥상을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기회라고 알린다. ‘푸름에 둘러싸여’라는 제목으로 나온 매물은 계절별로 누리는 녹음과 그 사이로 스며든 햇빛과 그림자가 늘 방안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 일품이라고 소개한다.


이밖에도 부동산 매물이 있는 동네는 어떤 동네인지, 어떤 가게들이 있고 공원이나 산책길은 어떤지, 베란다 조망과 창밖 야경은 어떤지 등 매물이 가진 이야기를 찾아 매력적인 사진과 감각적인 글로 소개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취향과 개성을 생각해 각자 기호에 맞는 매물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동시에 설비가 낡아 개조가 필요하다는 등의 단점도 빠짐없이 설명한다. 일본의 부동산업체 ‘도쿄R부동산’의 이야기다.


도쿄R부동산은 2003년 설립된 온라인 기반의 부동산 중개·거래소이다. 공동 설립자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바바 마사타카는 설계사무소 창업을 준비하면서 살짝 고쳐서 쓸 정도의 빈 건물을 찾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소와 자신이 생각하는 ‘괜찮은 빈 건물’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빈 건물을 찾아 사진을 찍고 주관적인 해석을 달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통해 빈 건물을 빌릴 수 있냐는 사람들의 의뢰가 많아지자 부동산 개발자인 요시자토 히로야, 경영 컨설턴트인 히로시 아쓰미 등과 함께 도쿄R부동산을 설립했다.


이들은 처음 설립 당시 도쿄 니혼바시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오래된 매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니혼바시 지역은 과거 에도시대부터 도쿄의 중심지로 각종 화장 도구나 장신구, 의류품 등을 판매하는 도매상이 1500여 곳 이상 밀집된 상업 지구였다. 하지만 일본의 버블경제 몰락 이후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장기침체로 인해 도매상으로 운영되던 창고형의 빈 건물이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도쿄의 중심인 긴자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철 노선이 지나가는 곳에 있어 교통편이 매우 좋았지만 오래된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니었다.


도쿄R부동산은 다른 관점으로 빈 건물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동산 중개소의 본질이란 좋은 매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매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관계 기반의 비즈니스여야 한다고 인식했다. 또한 공간을 새롭게 꾸미고 만들며 지속적으로 가꿔 나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즐거움이므로 당장 임대하거나 구입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주거방식,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을 비전으로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왜냐하면 이들은 매물 하나하나를 독립된 브랜드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단순히 건물 내외부의 ‘굿 디자인’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건물을 브랜드의 개념에 대입시켜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본 것이다. 자신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전하는 통로로 매물을 활용했고, 도쿄R부동산이란 중개소는 이를 널리 알리는 미디어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고 본 셈이다.


사실 브랜드는 멋진 심벌이나 로고 마크, 최신의 트렌드가 가미된 상품만으로 좋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이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도쿄R부동산은 일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초월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조직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런 비전에 있기에 도시 안에서 불거진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빈 건물을 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였고, 나아가 기획과 설계, 리노베이션, 건물 관리 등 종합 부동산 디벨로퍼의 역할로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2015년부터는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R부동산’도 운영하면서 일본의 사회적 문제 속에서 올바른 건축의 모습과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들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브랜드의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부동산 물건을 ‘매물(賣物)’로 보지 않고 ‘매물(買物)’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다. 즉 자신이 파는 물건으로 인식하지 않고 고객이 사는 물건으로 인식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건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소비자와 대화하다 보면 무심코 장점이나 혜택만을 소개하게 된다. 장점만을 구체적으로 반복해 전달하다 보면 듣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정작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물건이 다른 물건과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도쿄R부동산은 부동산 중개소의 입장에 서는 대신 고객과 깊이 있는 상호작용을 통해 살 사람이 해당 물건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조금 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향을 제시해준다.


최근 국내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은 얼마나 고가의 집을 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집을 효율적으로 구입 또는 공유할 수 있는지로 점차 변모해가고 있다. 이는 집이라는 개념이 돈이나 규모와 같은 정량적 문제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도시의 과밀화와 인터넷 플랫폼의 등장 같은 사회적 이슈도 부동산의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머지않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부동산 편집매장이 생기길 희망한다.




주간경향 1416호 브랜드 인사이드 39

김 도 환



P.S. 개인적으로 브랜드란 '우리의 말과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구현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들 안에 제안하고 싶은 비전과 미션이 고객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단 뜻이기도 합니다.


정혜씨 출판사에서 지난 20년 5월 발행한 <도쿄 R 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에는 아주 뜻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응당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래 내용을 조금 빌려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조적인 일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임팩트 있는 광고를 제작한다고 해서 창조적인 일은 아니다. 창조적인 표현이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본질이다. '팔아먹는 기술'이나 '욕구를 자극하는 기술'은 가치 창조와 거리가 멀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관점이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금전적 이익을 줄 뿐 아니라 세상 전체의 행복이 커지고 진화해야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 페이지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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