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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라팩 TETRAPAK


사면체 모양의 ‘테트라팩 클래식’은 테트라팩 음료 용기의 시초이자 상징적인 제품이다. 1960년대 출시된 다양한 음료들이 테트라팩 클래식에 포장되어 있다. / 테트라팩



선도적인 ‘리딩 엣지’ 브랜드들은 고유한 ‘자기다움’을 지니고 있다. 유형적인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그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가 지니고 있는 무형의 가치관·의미 등의 매력도 포함된다. 이런 유·무형의 요소가 소비자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면 지갑이 열린다. ‘그 브랜드라면 믿고 살 수 있어’라는 기준이 확립되는 것이다.


BMW를 예로 들어 보자. 눈에 보이는 요소에는 콩팥 모양의 ‘키드니 그릴’이 눈에 띈다. 자동차 C필러 하단 뒷좌석 문 끝부분에서 유리창에 감겨 꺾이는 부분인 ‘호프마이스터 킨크’도 모든 차량에 적용된다. 귀에 들리는 요소들도 있다. BMW는 사운드 디자이너팀이 별도로 있다. 이들은 엔진 특유의 소리,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는 물론 문이 잠길 때 딸깍거리는 소리까지 관리한다. 이렇게 기술력과 결합된 요소가 BMW 전체 자동차 라인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음식·음료 포장용기 제조 판매


나이키의 ‘에어 맥스’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1987년 나이키는 미 항공우주국(NASA) 엔지니어가 최초로 고안한 에어쿠션 기술을 수용해 ‘에어 맥스 1’을 출시했다. 그리고 뒤꿈치 양쪽 측면에 탑재된 에어쿠션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드러냈다. 1979년 최초로 이 기술을 적용했지만 에어쿠션을 직접 볼 수는 없었던 ‘에어 테일윈드’ 운동화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에어쿠션을 밟고 뛰는 개념을 쉽게 이해했다. 손가락으로 에어쿠션을 누르면서 스펀지 밑창보다 훨씬 좋은 완충력을 눈으로 경험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운동화와는 다른 디자인 역시 소비자들은 멋지다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한 브랜드가 하나 있다. 눈으로 봐서는 고유의 ‘자기다움’을 확인할 수 없다. 제품의 라벨조차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전 세계 매출액은 20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 170여 개국, 2600여 개의 브랜드를 고객으로 두고 연간 약 1500억 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음식 및 음료 포장용기 브랜드 ‘테트라팩(Tetra Pak)’이다.


테트라팩을 처음 개발한 스웨덴의 루벤 라우싱 박사는 1943년 당시 병우유가 광범위하게 판매되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제작비용이 많이 들고 깨지기 쉬우며 소독처리가 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유리병을 대신해 우유를 담을 수 있는 포장용기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원자재 부족이 심해지면서 저렴하고 깨지지 않는 새로운 용기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었다.


라우싱 박사는 약 7년간의 연구 끝에 상자를 코팅·밀봉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명했다. 그리고 1951년 테트라팩의 전신인 AB-테트라팩을 설립했고, 이듬해 사면체 우유팩 생산 기계를 고안해 오늘날 종이팩의 원형이 된 새로운 소재의 우유팩 ‘테트라팩 클래식’을 생산했다. 이 사면체 모양 테트라팩의 개발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라우싱 박사는 아내가 전통 방식대로 소시지를 만드는 방식에 주목했다. 우선 그는 종이를 긴 튜브 형태로 만들고, 그 안에 내용물을 흘려보내는 동시에 양 끝을 직각 모양으로 잘랐다. 그랬더니 삼각뿔 형태의 사면체가 만들어졌다. 테트라는 숫자 4를 의미하는데, 결국 회사의 이름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혁신 기술로 비용 절감과 환경보호


테트라팩 클래식은 1959년까지 약 10억 개가 생산됐다. 라우싱 박사는 유럽과 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961년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기존의 테트라팩에 알루미늄 호일층을 넣은 무균처리 아셉틱 기술(Aseptic Technology)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빛과 산소, 세균을 차단하는 멸균 효과뿐만 아니라 유통기한도 늘릴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냉장보관과 유통이 크게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공급단계는 줄고 가격에 대한 경쟁력은 높아졌다. 1964년 유럽 외 국가로는 최초로 레바논에 진출한 이래 전 세계로 사업 확장에 나선 테트라팩은 한국에도 1986년 법인을 설립해 1989년에는 경기 용인에 최초로 공장을 가동했다.


1993년 테트라팩은 ‘용기는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라우싱 박사의 창업 원칙에 기초해 또 한 번 기술을 업그레이드했다. 기존 알루미늄 호일층에 종이·폴리에틸렌 등을 넣어 촘촘하게 만든 6겹 포장은 부패를 촉진하는 산소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 상온에서도 몇 달씩 음료를 보관할 수 있게 했다.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는 더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비용 절감과 함께 환경을 보호하는 가치 또한 제공한다는 원칙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반드시 성공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들어 당시 생산되던 무균팩이 재활용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경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은 때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메인주에서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무균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통과됐다. 유럽과 달리 식음료의 냉장 보관이 익숙한 미국의 문화적 환경이 주된 원인이었다. 테트라팩의 대응은 ‘재활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경쟁 음료포장 회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공동으로 무균포장업협회를 설립했고, 과학자들과 함께 재활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속적인 R&D와 캠페인을 통해 품질과 재활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차차 소비자들로부터 공감과 신뢰를 얻었다.


테트라팩은 2004년부터 ‘소중한 것을 지킵니다(Protect What’s Good)’를 기업의 새로운 모토로 지정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비자의 필요를 중시하고 이해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2020년 기준 테트라팩은 원천기술인 아셉틱 기술을 활용해 음료뿐 아니라 과일과 채소, 동물의 사료 등을 포장하는 다양한 패키징 제품을 만들어 일상생활 곳곳에서 소비자를 만난다. 식음료의 안전한 유통을 목표로 설립된 기업이 오늘날 모든 식음료를 위한 맞춤형 솔루션을 제안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그래서 테트라팩의 용기를 사용하는 음료 제조업체 역시 제품의 품질이 개선되고 유통기한이 길어지면서 비용이 절감되는 상대적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일명 ‘단지 우유’라고 불리는 빙그레의 대표 제품 ‘바나나맛 우유’도 최초로 중국에 진출할 때는 테트라팩 용기에 제품을 담아 판매했다. 현지 공장 설립 과정에서 오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테트라팩은 고객사에게 단순히 용기 그 이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필요와 요건에 맞게 기술적 계획을 세운 다음 가공·포장·유통을 위한 완전한 시스템을 공급한다. 필요한 설비와 포장 소재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시장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해외마케팅까지 돕고 있다. 고객사 브랜드의 이면에 자리 잡아 잘 눈에 띄지 않지만 확고한 이들만의 ‘자기다움’ 덕에 테트라팩은 ‘브랜드들의 브랜드’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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