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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코 ELEIKO




1957년 스웨덴, 와플 기계를 만드는 공장의 관리자에겐 불만이 하나 있었다. 역도를 즐기던 그는 무거운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뒤 땅에 내려놓을 때 바벨이 부러지거나 구부러지는 일을 자주 겪었다. 역도라는 운동 종목의 특성상 무거울 때는 200㎏도 훨씬 넘는 바벨을 2m가 넘는 높이에서 떨어뜨릴 때도 많다. 부실한 바벨은 무엇보다 선수들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역도 훈련과 경기를 위해선 튼튼한 바벨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바벨을 포함해 강철로 된 운동기구를 만드는 기술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니던 공장의 경영주를 설득했다. 아무리 떨어뜨려도 멀쩡한, 튼튼한 바벨을 공장에서 만들어보자고.




국제역도연맹 최초 공인 브랜드


‘엘리코(Eleiko)’는 역도나 파워리프팅, 각종 근력·피트니스 용품으로 이름난 브랜드다. 이름만 들으면 생소하게 느껴질 사람들도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선수들이 들어올리는 바벨 원판에 그려진 마크를 보면 한 번쯤은 봤던 기억이 날 것이다. 이들이 처음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때는 1963년 자신들의 안방 격인 스톡홀름에서 열린 역도 세계선수권대회부터였다.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바벨이나 원판이 파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당시에 엘리코 바벨은 대회 기간 내내 파손 없이 매끄러운 경기운영을 보조한 사실이 알려지며 전 세계 역도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1969년 국제역도연맹(IWF)이 경기용품 인증제를 도입하면서 엘리코가 처음으로 공인된 브랜드가 되어 그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지금은 바벨과 운동용품으로 인정받는 이들이지만 창업 당시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혀 다른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1928년 스웨덴의 할름스타드에서 설립된 엘리코는 와플을 굽는 기계나 토스터와 같은 가정용 소형 전기제품을 주로 만들었다. 엘리코라는 이름부터 ‘전기장비회사’를 의미하는 스웨덴어를 축약한 데서 왔다. 30년 가까이 본업에 충실하던 이들이 예기치 않았던 ‘외도’에 나섰고, 오히려 그 뒤로는 새로운 사업이 더 주목을 받으면서 해당 분야의 선두주자가 된 셈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일본의 ‘닌텐도’를 들 수 있다. 닌텐도는 1889년 창업 당시 화투를 만들어 파는 개인 상점으로 출발했다. 닌텐도의 화투는 패를 들고 바닥에 내려칠 때 이른바 ‘손맛’이 좋게 하려고 앞면과 뒷면 사이에 석회가루를 넣은 점 덕에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게임 기기 및 타이틀 제조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닌텐도는 아직 당시 모델을 재현한 화투를 팔고 있다. 어쨌든 닌텐도는 화투와 카드를 만드는 데서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그리고 게임용품을 만드는 데까지 주된 사업영역을 변화시켜 왔다.


위에서 두 번째가 닌텐도에서 제작해 시판 중인 일본의 하나후다(화투)


닌텐도만큼의 연관성은 없지만 엘리코의 사업영역 다변화도 전혀 무관한 영역으로 손을 뻗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엘리코의 대표상품이었던 와플 기계를 만들면서 생산 노동자들은 쇠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역도에 쓰이는 바벨은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충격을 잘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질기면서 탄성도 높아야 한다. 너무 단단하기만 하면 기존 바벨처럼 부러지고, 반대로 너무 유연하기만 하면 바벨 양 끝에 거는 원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버리기 때문이다. 엘리코는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두 특성을 잘 조화시킨 바벨을 만드는 데 성공해 시장에도 안착할 수 있었다.



역도용 고무 원판도 처음 만들어


사실상 신생회사나 다름없는 이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높은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고 더욱 개선하는 정공법 덕분이었다. 미국의 요크(York)나 일본의 우에사카(Uesaka) 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엘리코와 경쟁하는 업계의 라이벌 브랜드들이다. 엘리코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지금과 달리 대부분의 원판이 말 그대로 쇳덩어리로만 만들어지고 있던 당시 고무 제조업체와 협력해 역도용 고무 원판을 만들었다. 한 역도선수가 원판 손상도 막고 바닥에 떨어지며 내는 소음도 줄이려고 원판에 고무 타이어를 끼워 쓰는 모습을 본 뒤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이다.


또 엘리코의 바벨은 원판을 끼우는 부분인 슬리브가 최적의 속도로 돌아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도선수가 한순간에 온 힘을 다해 바벨을 들어올릴 때 원판이 부드럽게 회전하지 않으면 무게와 관성을 제어하기 위해 손목과 어깨에 엄청난 부하가 가해진다. 반대로 적절한 속도로 돌아가 부담을 줄여주면 대회 평균기록이 2~3㎏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엘리코는 출시하는 모든 바벨을 대상으로 기계는 물론 직접 손으로도 진행하는 다양한 검사를 거친다. 대회용 바벨은 5000번 이상 떨어뜨리는 검사를 거친 뒤 판매되고 나면 무기한 제품을 보증한다. 훈련용 바벨 역시 3000번 이상의 낙하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판매 가능하다는 의미로 일련번호를 새겨 출시된다.



와플 기계에서 출발한 회사는 뜻하지 않은 계기로 전혀 다른 궤적을 걷게 됐다. 그동안 성장한 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관련 10대 원칙을 기업의 경영원칙에 포함하도록 하는 유엔 글로벌콤팩트 협약에 가입하는 등의 노력도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엘리코는 와플 기계를 만들지 않지만 그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던 회사였는지는 지금 판매 중인 바벨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바벨을 손으로 꽉 잡아 쉽게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 ‘널링’이란 이름의 꺼칠꺼칠한 부분에 와플 기계 특유의 격자형 무늬를 넣은 것이다. 엘리코 바벨의 마름모꼴 격자형 무늬는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상징이자, 뜻하지 않게 들어선 길 위에서도 도전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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