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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탁 FREITAG



프라이탁이 각기 고유한 패턴을 가진 방수포를 활용해 생산한 가방 제품들이 창고에 분류되어 있다. / 프라이탁 홈페이지


고객 불만이 가장 적은 항공사, 시간을 잘 지키는 항공사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회사가 있다. 1967년 불과 3대의 보잉 비행기로 항공 운송업에 진출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성공전략은 남달랐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지방 공항을 이용해 부대비용을 절감했고, 비행기 기종을 하나로 통일시켜 조종사 교육과 부품 재고 등에 들어가는 유지관리비를 대폭 낮췄다. 여객 좌석은 등급도 선택권도 없이 선착순으로 앉는다. 기내식도 최소화했다.


그 결과 이들은 거리당 운송비용이 가장 낮은 항공사가 되었다. 그리고 저가 항공사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많은 항공사가 도산하는 와중에도 우뚝 섰고, 무려 4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진기록도 수립했다. 회사 규모가 작은 만큼 효율성에 집중한 창업자 허브 캘러허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따로 있다. 고객에게 비행 중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는 ‘펀(fun) 경영전략’이다. 탑승객을 기내 주방으로 데려가 승무원 대신 땅콩을 제공하도록 하는가 하면, 승무원은 고객을 위해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 금기시되던 조종실 개방도 꺼리지 않고 비행 전 탑승객이 원하면 조종실을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무엇보다 비행이 유쾌한 시간이 되도록 보답했다. 이런 기내 방송이 대표적이다. “이 비행기는 금연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으시다면 비행기 날개 위에 있는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흡연 중 감상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버려진 트럭 방수포로 만든 가방


제품 디자인이나 기능보다 ‘즐거움’과 ‘정직함’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 브랜드가 또 하나 있다. 1993년 스위스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커스와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설립한 업사이클링 가방 전문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이다. 당시 예술학교에 다니던 형제는 평소 접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비가 자주 오는 취리히의 날씨 탓에 가방에 넣은 미술용품 등은 비에 젖어 눅눅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 그때, 방수포가 씌워진 덤프트럭이 그들의 눈앞으로 지나쳐 갔다. 그들은 상상하기 시작했다. 트럭의 방수포로 가방을 만들어서 자동차 안전벨트로 어깨끈을 만든 뒤, 자전거 바퀴 튜브로 가방의 모서리를 마감한다면 비가 오는 날에도 가방은 젖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즐기는 취리히의 시민이 좋아할 것이란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들은 즉시 버려진 트럭의 방수포를 찾아 집으로 가져온 뒤 세탁했다. 그리고 가방끈 하나를 어깨에 메는 형태의 메신저 백을 만들었다. 주변 지인들의 첫 반응은 ‘더러운 가방’이라는 답이 대다수였지만, 버려진 트럭의 방수포와 안전벨트 따위를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말해주자 반응이 달라졌다. 이내 자신의 가방도 만들어달라는 부탁이 쇄도한 것이다.


1994년 프라이탁 형제는 취리히 중앙역 부근의 가방 가게를 찾아가 ‘프라이탁 레투어’라고 이름 붙인 자신들의 가방을 소개했다. 가게 주인은 처음엔 가격이 꽤 높아서 놀랐지만, 가방의 품질이 좋아 판매를 허락하고 쇼윈도에 놔두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객이 싫증을 느껴 인기가 수그러들 것에 대비해 프라이탁 형제는 계속해서 브랜드에 얽힌 이야기 구조를 멋지게 구축해 나갔다. 디자인 개념과 관련된 용어도 창조했고, 흑백의 로고도 새로 만들었으며 포장방식에도 점차 변화를 거듭했다.


프라이탁 마이애미 바이스 모델, 스위스 유통업체 미그로스의 일회용 쇼핑백 모양을 베껴 출시


때론 이벤트를 통해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프라이탁 가방 모델 중 ‘마이애미 바이스’라는 가방은 평범한 종이 쇼핑백과 똑같이 생겼다. 이 가방이 탄생한 유래가 재미있는데, 스위스의 대형 유통업체 미그로스가 프라이탁 가방을 모방해 ‘도네르스탁’이란 가방을 만들자 프라이탁은 곧바로 미그로스의 일회용 쇼핑백 모양을 베껴 이 마이애미 바이스를 만들었다. 프라이탁은 예술 퍼포먼스를 통해 이 제품을 홍보했다. 2011년 미국 뉴욕의 한 예술센터에서 프라이탁 형제는 채소 수프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트럭 방수포로 만든 퇴비 용기에 모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센터 내 식당에 들른 사람들은 채소 수프를 먹고 이 가방을 공짜로 받았다. 나중에 자기 집에서 유기농 부엌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기로 약속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겠다고 서명한 대가였다.



일관된 철학을 제품에 담는다


혹자는 프라이탁에 ‘최초의 업사이클링 제품’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프라이탁이 목표로 하는 가치가 아니다. 프라이탁은 재활용된 ‘유일한 가방’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비즈니스의 정직함, 즉 프라이탁 형제가 쓰고 싶은 가방을 만든다는 처음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사실 마케팅 기법에서 ‘최초’가 지니고 있는 함축적 의미는 크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대의 조류에 남보다 한발 빨리 다가선다는 의미 자체로도 충분히 어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탁은 단순히 ‘최초’로 버려진 재료를 원자재로 썼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빗물을 받아 세탁한 방수포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자른다. 원재료의 패턴과 로고 등의 위치를 감안해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똑같은 무늬는 하나도 없는 ‘유일한’ 제품이 디자인된다. 여기에 재단사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야무지게 마감하고, 이후 색깔에 따라 정리해 포장·발송하는 과정을 거친다. 고객과의 모든 접점에서 정직한 비즈니스의 순환 과정을 자연스레 이해시킬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프라이탁 가방이 인기를 끌면서 현재 이들의 제품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전 세계 400여 개의 매장에서 매년 55만 개 이상을 판매해 연매출액은 700억원을 넘겼다. 친환경을 추구하긴 하지만 완벽하게 친환경적일 순 없게 된 셈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브랜드가 지닌 이미지와 정체성 등을 일관되게 구축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우회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정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다양한 모델의 가방은 모든 각도에서 부분 사진을 찍어 세심하게 전시된다. 자신만의 가방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즐거운 경험을 찾으라는 배려다. 또 딱히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동일한 원칙에 따라 디자인한 매장을 통해 자신들만의 일관된 철학을 담은 제품을 선보이는 데 노력한다.


최근 다양한 업사이클링 가방이 여러 업체에서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탁 가방에는 다른 가방과 다른 고유한 가치가 있다. 이 가치는 프라이탁이 가방을 판매하는 행위보다 그들의 철학을 고수하는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 만들어진 것이다. 프라이탁에 ‘최초’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유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겠다. ‘진짜 업사이클링 제품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준을 만든 최초의 브랜드라는 그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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