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시인은 생생한 꽃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내본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짜를 사랑하기 싫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낸본다 피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어디든 손톱을 대본다
햋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개 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속 혀로 거친 발톱결 적셔주면서
신에게 사과했다.
- 김경미, 생화 -
생채기를 내면 확인히 드러나는 꽃과 달리 대부분의 사물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또한 진짜라고 해도 그 진본성의 본질에 관한 논의도 여간 쉽지 않습니다. 가령 일본의 이세 신궁은 20년 마다 헐리고 새로 지어집니다. 신궁을 지을 때 쓰이는 재료는 모두 새 것으로 교체되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조상신들이 살아 숨쉰다고 믿습니다. 이런 경우, 이세 신궁은 과연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한편 저는 커피에 관해서 유독 예민해집니다. 오랜 시간 커피숍을 운영해왔다고 해서 진짜라고 말할 수 없고 유행만 좇는다고 해서 가짜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조금 더 '진짜 커피 맛'을 맛보기 위해 가능하면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숍을 찾습니다.
핸드드립 커피는 언젠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추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마음으로 커피를 대한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 제대로 된 커피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곳이라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핸드드립 커피를 통해 '진짜 커피 맛'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요.
국내 커피 1세대로 불리는 박이추씨의 커피를 실로 오랜 만에 맛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강배전의 커피입니다. 평일 내내 격무에 시달린 탓인지 주말 아침, 유난히 진짜 커피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융드립으로 추출하면서 내내 '맛있는 커피를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제 마음이 닿았을까요. 비록 박이추씨가 직접 추출해 준 커피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맛있게 마셨습니다. 어쩐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군요.
2021. 09.04
좋은 커피는 필요해 1 - 진짜와 가짜
교토 이노다 커피 산조점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