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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계간 《창작과비평》 프롤로그 6주차 과제

by 문장강화

-김유진: <호재>


'나비효과'라는 말을 믿는다. 그 무엇도 아무런 계기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 낸 것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사소한 선택으로 빚어진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은 '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다시금 느낀다. 늘 느끼면서도 타인과 자신의 사이에서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 할 거리감은 결국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난 운명이라든가 선택이라든가 어쩔 수 없었다든가 알리바이라든가 행운따위의 말을 좋아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거기에.
창작과 비평 19년 겨울호의 문학초점을 보면 황현진의 '호재'가 나와있다. 우리네의 가족사 소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비참해지고있다. 그 중에서도 행복을 찾겠자고 발버둥치기도하고, 반대로 그저 수긍하기도 한다.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을 기다리던 고모부를 덮친 불운이 얼마나 완뱍하게 조장되어 있었는지를 생각"한다는 대목에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분명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모든 것은 조장되어있다. 그렇기에 분명하다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은밀함이 주는 깊은 울림이 있다면, 분명한 것이 주는 확고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 싶다.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소한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 가족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아니라 각자의 선택에 의한 결과가는 것이 과연 어떠한 방법을 표현되었는지, 나는 읽고 싶다.




-윤은희: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근래 작품들은 노태훈씨의 말과 같이 시대감수성이나 젠더의식에 맞는지 긴장하고 작품을 읽게 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한 종류의 노래만 하는 시들에게 지쳐있다. 시가 주는 음률과 상상력이 매몰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요즘 시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김영랑, 이상, 김소월, 이육사 등 남들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알법한 시인들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이들의 시에는 하고자하는 이야기와 언어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이 느낌이 좋아 혼자서 비는 시간에 시를 쓰기 시작했었다. 문학초점을 읽으며 다른 평가들보단 '개성이 없다, 단순하게 느껴져 아쉽다, 이야기 전달에 그친다.' 등과 같이 혹평을 받았음에도 이 시집을 읽고 싶다 느낀 것은 그런 이유이서 였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의 말'과 '어머니의 말'의 시들이 활어처럼 파닥인다는 말이 너무 좋았다. 이 시집을 꼭 직접 읽어보고 싶다고 확신하게 된 부분이다.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박연준씨는 전통적인 서정을 사유할 때, 보다 더 잘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는 편이다. 다르게 보아야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러한 서정시의 장르가 현대에 이르러 더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썼던 문학적 표현을 재사용하기는 시의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시각을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만큼의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서 이러한 종류의 시집을 내는 도전을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순간 속에서 오늘 한 번쯤은 쉬어가는 시집을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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