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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시간: 쿠바기행 #1

- 살아가는 사람들: 헤수스 킴&호갑지 할머니

by 문장강화
브런치 사진.png 호갑지 할머니의 생신 케이크


1월 28일은 호갑지 할머니의 생신이다. 나이는 87세다. 올해로 호갑지 할머니는 아버지 호근덕의 나이와 같아졌다. 그 나이쯤의 호근덕은 나이에 비해 정정해보였지만, 눈은 깊게 파였고 이빨은 다 빠져있었다.

호근덕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아버지가 해주신 잠자리 이야기를 물었을 때, 호갑지 할머니는 아버지와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손자인 헤수스 킴은 <꼬레아노의 꿈>이라는 다큐에서 말했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한국을 지지하는 모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절대로 외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대요. 저희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헤수스는 호근덕에 대해, 나아가 가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다는 것, 친할아버지는 북한 변호사, 친할머니가 멕시코인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길 한국에서 온 쿠바인의 수가 적어서 사실상 전통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이 많이 없고, 그나마도 노예와 비슷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호갑지 할머니는 결혼 후 아바나로 넘어오면서 마탄사스 내의 한인들과 연락이 뜸해져 한인간의 연결이 끊겼다고 했다. 모르는 이유에는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 단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됨만이 있었을 뿐이다.

호갑지 할머니는 살아가기 위해 쿠바에 적응했다. 그것은 헤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40년째 살고 있는 그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기와 지금을 살아가야했다. 그들은 이제서야 삶이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쿠바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국은 추상적이기에 생활인의 것이 아니다.

'호갑지'는 한국을 배웠다. 아버지 호근덕은 한국을 살았지만, 호갑지는 한국을 살지 않았다. 그래서 호갑지는 한인학교를 다녔다. 거기서 호갑지는 애국가를 부르고 줄넘기를 했다.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노래는 잊어버렸다. 거기에서의 많은 것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호갑지 할머니'는 한국이 배여있다. 이것은 명시적이지 않다. 삶 속에 은밀하게 스며들여있기에 그렇다. 호근덕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호갑지 할머니와 생활했다. 그 삶의 한 결은 호갑지 할머니와 헤수스에게도 크게 작동하고 있다. 그 결은 음식과 생활방식 등 일상적인 곳에서 나타난다.

호갑지 할머니는 쿠바에서 환갑과 칠순에 잔치를 열었다. 이번 생일의 첫 케이크는 증손녀대신 호갑지 할머니께 갔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가기에 함부로 떨면 안 된다.

호갑지 할머니는 젊었을 적 고추장을 담궜다. 고추장은 많은 재료들과 숙성시키기 위한 각종 부산물들, 긴 시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해야한다. 더운 쿠바는 그 온도를 유지하지 힘들다. 지금은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하셨다.

헤수스는 아직 다 익지 않은 김치를 내주었다. 그는 김치를 담근다. 그가 담근 김치는 한국의 빨간 김치가 아니다. 백김치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쿠바 향신료 향이 난다. 아삭하기보다는 물컹하다.

이 미묘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것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음식들, 생활들, 삶에 스며든 미묘함들은 우리의 좌표를 무너트린다. 한국과 쿠바라는 각개의 국가가 아닌 무언가 총체적인 것, 뭐라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것으로 이끌어 간다. 거기에서 각각의 것들은 제 형태를 무너트려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헤수스는 인터뷰 중간마다 마탄사스에 있는 친척들에게 연결해준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리를 걱정했다. 자신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많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이다.

호갑지 할머니는 증손녀가 생겼다. 헤수스 킴은 군인이었지만 지금은 요리사다. 헤수스의 동생은 산테리아를 믿는다. 그들의 삶은 계속되어지고 문화들은 섞이면서 자신을 새로이 바꿔간다. 거기에서 오는 미묘함은 타인을 품어줄 줄 안다. 헤수스는 우리에게 만두를 빚자고 했다.

그들의 집은 작년에 큰 토네이도를 맞아 한 번 부서졌다. 그러나 지금은 원래 모습을 찾아 모든 가족들을 맞아준다. 타인인 우리들도 똑같이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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