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인 우리들이 '남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환승은 필수였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먼 길은 돌아야만 남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조금은 편하게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코레일 파업'이라는 난관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래서 네이밍이 중요한 거야"
전주에서 진주로, 진주에서 다시 남해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생각보다 매우 길었던 시간이었다. 남해라는 지역은 나에게 가볍게 드라이브하기 좋은 바닷가라는 이미지였는데, 뚜벅이가 되자 정말 멀고 험난한 지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지금은 문명의 발달로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많은 관광지들이 예전에는 많이들 유배지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현대의 사람들에게는 수려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까마득하고 황량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유배는 오형이라는 다섯 가지 형벌 중 두 번째로 무거운 형벌이다. 오형은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을 일컫는다. 유배는 유형에 속하는 형벌이며 조선 시대에는 그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원근(遠近)의 등급을 결정하였는데, 2천 리, 2천 5백 리, 3천 리 형의 세 종류가 있었다. 또한 모든 경우에 반드시 곤장 백장을 더하여 부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유배를 떠나기도 전에 죽기도 했다.
'유배'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잔인한 형벌이었다. 과거의 유배하는 그 무거움에서 궤를 달리하고는 있지만, 취업난과 지방대,문과생이라는 수식어를 짊어지고, 가볍지 않은 고민들을 죄처럼 끌어안으며 우리는 유배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