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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기행 #2

-김소영: 남해 유배문학관

by 문장강화

유배문학관은 남해를 비롯한 국내외의 유배문학을 모아 문학관화 시킨 곳이다. 문학관은 유배지의 문인들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나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곳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곡소리일테다.

아름다운 남해가 보는 것 그대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데에는 남해대교의 역할이 컸다. 1973년 남해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연락선을 이용하여 남해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는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한 섬이다.
그런 섬에는 사연 깊은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개 유배형에 처해 세상과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유배란 것이 으레 그렇듯 쓸쓸하고 빈한했다. 특히 권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이들이었으니, 그 애한이 얼마나 들끓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이성복이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라고 말한 것에는 까닭이 있다. 유배는 모두와 단절되어 있다는 점에서 슬픈 벌이다.
그래서 유배지의 과정을 거쳐 나온 문학은 일반 문학과는 간절함의 결이 다르다. 대개 타자와 단절될 때, 사람들은 자기파괴를 감행한다. 그런 이들은 서서히 말라 죽는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있다. 자신을 넘어야만 문학은 완성된다. 이들은 자기파괴 속에서도 타자에게 말을 걸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허하다.

변방의 성 밤에 치는 딱따기 소리에
놀란 새 불안하게 깃들이는데
역마 길은 청강 북쪽으로
오랑캐 산은 지는 달의 서쪽에
집에 부칠 몇 장의 편지지 다하고
귀가의 꿈은 새벽녘에 길을 헤매네
게을리 시를 본뜨며 소일했더니
시도 이제 짓기가 싫어지네

김만중의 이 시는 고립된 자의 두려움을 노래한다. 지금의 모든 것이 의미없어지고, 시도 퍽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그러나 계속 쓴다.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비단 김만중만이 아니라 유배된 모든 이들의 심정이었다. 문학관 곳곳에 있던 시들은 대체로 슬픔과 간절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때의 작가는 유배되었지만 지금의 문학은 디지털화 되어 범세계적으로 떠돌고 있다. 이것이 그때의 그들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혼자 죽고 싶지는 않았을 테다.
김훈은 "길은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그 종착점 너머의 세계와 연결된다. 길은 길이 아닌 곳과 닿아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모든 길의 지향성은 세계적이며, 모든 길에 대한 숙명은 역사적이다."이라고 말했다. 문학관을 나오며 여기서 나오는 길을 문학으로 바꿔서 인용하면 이 문학관과 어울리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 글은 차라리 유배문학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고자 하는 이들이나 말할 것 같다. 유배작가들은 외로웠다. 그래서 글을 썼다. 나는 친구와 함께 여기로 왔다. 글 쓸 일 없이 하루는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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