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

아빠 얼굴에서 못 생긴 곳을 한 군데라도 찾아봐!

by 오리궁뎅E

남편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분 좋을 만큼 취해서 귀가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딱히 잘 해 준 것도 없고, 애들한테도 신경을 많이 못 쓰고 겨우 생활비 대는 것도 많이 버겁더라. 근데, 마누라도 애들도 나한테 뭘 크게 해달라고 조른 적이 없어."


갱년기인가.


외벌이일 때건 맞벌이일 때건 주 생활비는 남편 몫이었다. 내가 맞벌이를 한다고 해서 생활비의 일부를 내가 부담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나의 수입은 생활비 밖의 쓰임이나 저축을 하는 데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줄이자면 줄일 수 있는 정도의 생활비를 주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겨워할 때가 종종 있었다. 월급쟁이가 아닌 관계로 수입이 늘 똑같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새삼 가장한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30년 가까이 살아준 식구들에게 고맙단다.

예전같으면 "그걸 이제야 느꼈다고?"라고 했을 법도 한데, 나도 함께 나이가 들어서일까. 우리 부부의 갱년기는 겁냈던 것과는 달리 잠잠해지고 조금 깊어지고 대화마 밀도 있어졌다.


때마침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엄마가 어려운 문제를 하나 낼게, 맞혀봐." 했다.

아들은 생뚱맞게 우슨 문제인가 하는 눈빛이다.

"아빠 얼굴에서 못 생긴 곳을 한 군데라도 찾아봐!"

"뭐야~~~ 에이!!!!" 부자가 한꺼번에 외치는 소리다.


ISFJ인 남편과 ENFJ인 나.

잘 맞느니 안 맞느니 해도 난 늘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산다.

더러는 이런 내게 콩깍지가 언제 벗겨질거냐고들 하지만, 콩깍지는 신혼 때 이미 벗겨졌다.

다만 삐딱하게 바라보고 꼬아서 생각하던 것을 자세히 정면으로 마주하니 있는 그대로의 그가 몸도 마음도 참 섬세하고 고운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수시로 그 느낌을 표혔했더니 이 사람도 조금씩 표현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느낀다.



"아무 때나 포기하지 마라. 성공에도 때가 있듯이 포기에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포기하기 가장 좋은 때는 2월 30일이다." 넬슨 만델라가 한 말이다.

아이들도 남편도 내 마음의 잣대로 재지 않고 조금 기다리며 그들의 스타일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겠지. 조금 늦은 듯 해도 그렇게 한 뒤에 오는 작지만 소중한 기쁨을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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