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포용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을 선물하거나 권하고 싶은 서너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편안한 위로가 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생을 해본 사람이 고생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겪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일부 동의한다.
고생하고 아파하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은 하지만, "예전엔~~ 왕년엔~~"으로 시작하는 라떼 좋아하는 꼰대가 있기 마련이라서. 이런 사람들은 치유받지 못한 상처가 있어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늘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고 자신의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
이 책이 편하게 다가온 이유는,
첫째,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전달되었다. 적당한 길이의 문장과 어렵지 않은 단어가 한몫했다. 게다가 낯설지 않지만 뻔하지 않은 표현이 신선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둘째, 쉴 줄 아는 사람이 쓴 글이었다. 때때로, 자의든 타의든 뭔가에 열중하고 달리다 보면 왜 이러는지 모를 때가 있다. 꽉 찬 버스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밀리며 가는 것 같은 삶에서 잠시 쉼표를 찍 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볼 줄 아는 사람이어서.
셋째, 나의 사고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나랑 한 번쯤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 할 정도였다.
어제는,
마흔 넘어 몇 년을 함께 공부했던 지인을 만났다.
정기적으로 약속을 하는 만남은 아니지만, 수개월에 한 번씩 만나도 어제까지 함께였던 사람 같다.
나는 ENFJ, 그 사람은 ISTP.
언뜻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조합이다.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내 배우자를 이해하기도 하고, 그 사람은 나를 통해 배우자를 이해하기도 할 터이다.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잘 보완하며 공부를 척척 해냈던 것 같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공부의 참맛을 느끼고, 그 과정을 지났음에도 비로소 자기 주도의,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자유를 느끼고 있다. 공부의 영역은 다르지만, 그것을 나누며 공감하게 되는 시간.
지난 만남에는 굴곡을 넘는 힘듦을 나누었는데, 이번에는 각자의 성취나 감사한 일들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자잘한 시샘이 끼어들지 않는. 오롯이 서로의 노력을 칭찬하고 응원하고 축복하는 시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포용할 줄 안다. 그런 사람이 감동까지 느끼게 한 글이라면, 자연스레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