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본 사람만 아는, 경매가 준 두 번째 인생

출근길에 PD와 나누는 담소

by 큐제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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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동행, 그리고 ‘정리’라는 농담

직원 중 한 명인 애슐리 PD가 “출근길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왜 왔나 싶었지만, 막상 문 앞에서 그 얼굴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는 대체로 누군가를 집에 들이거나 내 일상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묘하게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어, 왜 왔냐?”라고 묻고는, 나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곧바로 “출근하자 그럼”이라고 덧붙였다. 말끝이 무심한 척했지만, 사실은 나도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잠깐 나누는 일이 싫지만은 않았던 거다.


애슐리 PD에게서 집들이 얘기가 나왔을 때는 웃음이 더 났다. 정리가 안 됐다는 말을 했더니 “이사 오신 지 좀 됐잖아요”라고 되받아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뻔했다. “한 세 달 정도 됐지.” 그랬더니 “세 달 동안 정리가 안 됐다고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원래 정리는 1년 동안 하는 거야.” 사실 그 말은 반쯤 농담이었고, 반쯤 진심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도 했지만, 어떤 정리는 시간이 지나야 마음이 따라오기도 한다. 삶이 한 번 크게 흔들리고 나면,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보다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훨씬 오래 걸리니까.


잘 나가던 시절과 ‘현금흐름이 끊긴 날’

나는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회사에서 월급 받으며 살던 시절엔, 늘 ‘내 사업’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위험한 생각인데도 그땐 확신에 가까웠다. ‘직장생활 하는 것보다 내 사업하는 게 낫다’는 생각, 다들 한 번쯤은 품는 그 생각을 나는 실행으로 옮겼다. IT 업종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영업하고, 판매하고, AS까지 했다. 운이 좋았고 타이밍도 맞았고 무엇보다 처음엔 정말 잘 됐다. 한때는 동기들 사이에서 돈 제일 잘 버는 친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 ‘한때’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나는 그 뒤에야 알게 됐다.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거래처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직원들이 마음대로 안 되고, 사소한 문제가 연쇄처럼 이어지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아, 현금 흐름이 끊겼구나.’ 영원할 줄 알았던 돈의 흐름이 딱 멈추는 순간, 사람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일이 불안해서 무너진다. 다행히 나는 빚에 쫓기진 않았다. 그러나 돈이 들어오던 것이 멈춘다는 건, 그 자체로 생활의 공포였다. 그때의 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무서웠고, 무서움은 사람을 가장 현실적인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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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의 기준, ‘형평성’이 있는 일

망한 뒤에는 선택지가 몇 개 생긴다. 다시 회사로 들어갈까, 다른 사업을 시작해볼까, 혹은 전혀 다른 일을 해볼까. 그런데 그때 나는 컴퓨터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내가 시작했고, 내가 성공했고, 결국 내가 망해버린 이유가 그 안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패한 사람에게 세상이 생각보다 너그럽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현실은 늘 사람을 과거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기준을 세웠다. 지금 시작해도, 그동안 배워온 게 없어도, 출발선이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것.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시작하더라도 형평성이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경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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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코인을 했고, 누군가는 주식을 했고, 누군가는 또 다른 걸 했다. 나도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긴 했다. 그런데 나는 ‘전자’적으로 생긴 무언가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싸이월드 도토리도 안 샀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걸 돈 주고 사는 게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집이고 편견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분명한 기준이었다. 주식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결국 사고팔고 타이밍을 맞추는 게임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부동산은 달랐다.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현장에 가서 집을 보고, 가격을 알아보고, 데이터를 쌓고, 손품과 발품이 결과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하루 만에 결정되지 않는다. 생각할 시간이 있고, 준비할 여지가 있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게 나에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15번 패찰과 첫 낙찰, 그리고 무서움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다. 나는 경매를 시작하고 15번 패찰했다. 직장 다니면서 15번 입찰한다는 건, 단지 15번 법원에 가는 문제가 아니다. 입찰하기 위해선 그 몇 배의 물건을 봐야 한다.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 걸러내려면 물건 분석을 훨씬 많이 해야 하고, 직접 가서 보는 임장도 수십 번 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은 40~50건, 임장은 30군데쯤, 입찰은 15건 정도 진행해서 결국 첫 낙찰까지 4~6개월쯤 걸렸다.


다만 더 중요한 건, 첫 낙찰 이후의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낙찰 받으면 무조건 기분이 좋을 줄 아는데, 초보는 그 반대다. 낙찰을 받는 순간부터 무서움이 먼저 온다. ‘잘한 거 맞나?’, ‘잔금은 어떻게 내지?’, ‘대출은?’, ‘잘 팔 수 있나?’ 이런 걱정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모르는 게 걱정을 만든다. 경매가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모르니까 무서운 거다.


“망한 게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삼각김밥의 기억

나는 첫 건에서 손해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하지 말자” 모드였다. 무려 6개월쯤을 쉬었다. 손해를 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숨는다. 그때 내가 지금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생겼다. 가능하다면 첫 건은 반드시 수익이 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사람은 수익보다 확신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첫 경험이 좋으면 두 번째로 넘어갈 힘이 생기고, 첫 경험이 나쁘면 ‘내가 이걸 계속 해도 되나’라는 의심이 일상이 된다. 결국 의심은 행동을 멈춘다.


이쯤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듣는 말이 하나 있다. 나는 종종 “망한 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직장 다닐 때는 월급이 들어오니까, 시간 관리를 느슨하게 해도 된다. 생활이 굴러가고, 적당히 만족하고, 그러다 보면 돈이 어디로 새는지, 시간이 어디로 빠지는지 모르는 상태로 익숙해진다. 그런데 망하고 나면 다르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돈이 안 벌리고, 계획이 없으면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다. 그래서 나는 경매를 다시 시작하면서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었다. 오늘 이걸 안 하면, 오늘 밥을 굶는다고 마음먹었다. 추우면 이불 속이 제일 안전하다. 그런데 이불 속은 안전한 대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바뀌고 싶었고, 그래서 움직였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사실 거창한 낙찰이 아니다. 웃기게도 삼각김밥이다. 예전에 나는 삼각김밥 1+1을 사서 하나는 점심, 하나는 저녁으로 버텼다. 어떨 땐 굶기도 했다. 그리고 삼각김밥 옆에 있던 샌드위치는 비싸서 못 먹던 날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작은 선택 하나를 포기해야 했고, 그 포기는 하루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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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시간’, 그리고 내가 강의를 하는 이유

지금은 그런 걱정이 없다. 먹고 싶은 건 다 먹는다. 돈 걱정 안 하고. 하지만 내가 진짜 얻고 싶은 건 단지 ‘돈이 많아지는 것’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돈의 크기로만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는 시간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거기까지는 못 갔다. 오늘도 출근하고 있으니까. 다만 확실한 건 있다. 예전의 나는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며 무너졌고, 지금의 나는 내일이 무섭지 않다.


나는 강의를 한다. 사람들이 묻는다. 이미 많이 벌었는데 왜 강의를 하냐고. 처음엔 단순했다. 주변에서 물어보면 알려줬고, 같은 질문이 너무 많아져서 “모아서 하자”가 됐다. 그런데 하다 보니 알게 됐다. 강의는 내 일을 살린다. 수강생이 배우고, 실행하고, 목표를 이루는 순간이 쌓이면 그게 내 삶의 낙이 된다. 돈 버는 것보다 더 크게 만족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은 목표를 “내가 몇 건 낙찰한다”로 잡지 않는다. “학생들이 낙찰 받게 해주자”로 잡는다. 올해 목표도 그렇다. 경매 건수로 학생들 낙찰 50건 정도. 어제만 해도 다섯 건이 낙찰됐다. 인천 하나, 서울 북부 두 개, 남부 하나, 평택 하나. 경매 물건은 멈춤이 없고, 할 일도 멈춤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바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바쁨이 싫지 않다. 예전엔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제일 무서웠다. 돈도 못 벌고, 내일도 불안한 상태에서는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할 일이 있다는 건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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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누가 내게 “올해 뭘 시작해야 저처럼 될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결국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경매하라고. 내가 경매로 살아남았고, 그 성공을 전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처럼 정책과 규제가 섞인 시장에서는 경매가 오히려 기회가 되는 구간도 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하지만 배운 게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길에서 결국 사람을 바꾸는 건 재능이 아니라 시간을 쓰는 방식이다. 삼각김밥 옆의 샌드위치를 못 먹던 사람도, 끝까지 하면 바뀐다는 걸 내가 증명한 사람이고, 그래서 오늘도 출근해 투자와 강의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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