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꽃 모가지 움켜준 손에서
헌걸찼던 여름 쫓긴다
꼿꼿하고 당당하던 분홍, 빨강, 노랑 허룩하다
백일홍은 꽃잎의 결로 말하지 않는다
두터운 꽃잎 사이사이 촘촘한 그늘로 읽힌다
그토록 기운차던 발 주춤
돌연, 거둔다
씨를 굳히는 일이란
발밑 돌아보는 일
햇살과 바람의 관계 챙기는 일
시간의 흔적과 마주하는 일
꺾이면서 안다
까맣게 타들어 간 씨앗과 속살의 달콤함이
얼마나 많은 바람을 탔었는지
위태로움과 간혹, 숨이 멎는 외로움과 타협했는지
백일홍의 비명이 여름을 향해 머리 조아린다
여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