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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by 호랑
백일홍 그림.jpg

백일홍꽃 모가지 움켜준 손에서

헌걸찼던 여름 쫓긴다

꼿꼿하고 당당하던 분홍, 빨강, 노랑 허룩하다


백일홍은 꽃잎의 결로 말하지 않는다

두터운 꽃잎 사이사이 촘촘한 그늘로 읽힌다

그토록 기운차던 발 주춤

돌연, 거둔다


씨를 굳히는 일이란

발밑 돌아보는 일

햇살과 바람의 관계 챙기는 일

시간의 흔적과 마주하는 일



꺾이면서 안다

까맣게 타들어 간 씨앗과 속살의 달콤함이

얼마나 많은 바람을 탔었는지

위태로움과 간혹, 숨이 멎는 외로움과 타협했는지


백일홍의 비명이 여름을 향해 머리 조아린다

여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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