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천 원짜리에
검정 매직으로 쓴 글자
‘지갑 밑천’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나
곱던 매화 거무칙칙하고
퇴계 이황의 주름이 깊다
씨앗 돈에 인생 걸고 본전치기라도 하려는
어느 곡진했을 불안이
생의 골목 휘젓고 다녔으리라
귀퉁이 닳도록 헤매고 부딪쳐도 밑천의 두께 부풀지 않았을 것
누구는 코 묻은 돈이라 거들떠보지 않는 천 원짜리
늦은 귀갓길, 구걸하는 눈빛 선한 노인에게도 선뜻
내놓지 않았던 밑천이 그만, 휘청거렸을까
가파르게 쫓기던 지갑의 허기
차고 일어날 일밖에 없는 ‘지갑 밑천’
누군가의 다짐과 간곡함을 손에 쥐고 내 것인 듯
오래 쓰다듬는다
부풀어라,
부풀어라,
‘지갑 밑천’을 고이 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