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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Nov 19. 2023

커피 소회

보통날의 시선 10

집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카페에서 마시는 것도 즐긴다. 혼자 들르는 일은 거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간다. 


나는 카페에 나가 글을 쓰지 않는다. 집에서 글을 쓰다가 문득 카페에 가고 싶을 때 온전히 그곳의 카페를 누린다. 카페라는 공간에 나를 앉히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자주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카페를 알아 두었다가 아끼듯 간다.


작은 카페는 작아서, 넓은 카페는 확 트여서 좋다. 특히나 창 넓은 카페에 바깥 풍경이 들어오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시내 외곽으로 나가기 일쑤다. 카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카페만 같이 가는 친구. 여행만 같이 가는 친구처럼 말이다.


스무 살 무렵 하루에 두 번 이상 가는 카페가 있었다. 퇴근하면서, 혹은 늦게 퇴근하는 친구를 만나러 다시 그곳으로 가곤 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카페였는데 곳곳에 그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비교적 소박한 실내에 유일한 사치라면 계절 꽃을 아끼지 않고 카페에 꽂아 놓았다. 꽃을 보면서 앞당겨 계절을 살기도 했다. 카페에 한참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글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림 한 장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이날의 카페를 떠올리며 뭔가를 적어 내려가곤 했다. 그런 시간이 있어 견딜 수 있었던 이십 대였다. 


결혼하면서 살던 도시를 떠났다. 사람 그리운 거야 말할 것도 없었으나 카페가 가장 그리웠다. 친구들과 함께 듣던 음악, 실내에 퍼지던 커피 냄새, 주인의 잔잔한 품성, 카페 밖으로 보이던 느티나무, 두고 온 젊음의 소리와 향기, 소소한 이별 따위들이 나를 못내 그리움에 떨게 했다. 특히 사이폰 커피가 추출되는 모습이 좋았다. 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물을 끌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퍽 낭만적이었다. 


지금도 커피를 즐겨 마신다. 딱히 시간 구애 없이 마시는 커피지만 아주 진한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다. 맑게 쓴맛의 커피를 선호하는 내게 지인들은 커피 맛을 모른다고들 한다. 카페에 들러 커피가 나왔을 때 맑고 쓴맛을 내는 커피가 나오면 자주 들르는 취향 저격 카페로 등록한다. 


그러다 보니 커피 선물을 자주 받는다. 어느 날은 드립 해서 마시고 싶은 커피를 빨리 개봉하고 싶어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기도 한다. 


남편과는 커피 취향이 같다. 별일 없이도 남편과 자주 카페에 들른다. 커피 맛을 모르고 즐기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나름 커피 맛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딸은 가끔 아빠를 부추긴다. 아빠는 노후에 바리스타 하면 잘할 것 같다고. 나는 반대다. 카페 순례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멋진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 마시며 좋은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면 족하다.


예전 카페는 주인 취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카페가 많았다. 실내장식부터 틀어 주는 음악이나 커피잔, 유리컵, 분위기와 조명까지. 그래서 어느 카페를 떠올리면 흐르던 음악이 저절로 생각이 나고 그 음악을 배경으로 떠돌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요즘 카페는 대체로 주인은 볼 수 없고 아르바이트생이 주는 커피를 마신다. 그것대로 편하다. 안면 익힐 일 없이 오롯이 카페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인가 강원도 고성 여행 중에 들른 카페가 있다. 커피에 대한 기대가 컸다. 유명한 곳이어서 그랬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다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는데 나온 커피 맛이 생각과 달라 실망하고 나온 적 있다.   


커피는 사실 여유롭게 마셔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비즈니스로 마실 때의 커피는 그냥 커피다. 고급스러운 커피 취향도 아니면서 커피에 대한 기대감은 몹시 크다. 


어제는 첫눈이 내렸다. 늦가을 미처 보낼 겨를없이 맞은 첫눈이 좀 생경하다. 11월이면 노랗고, 빨갛고, 갓 구운 빵 껍질 같은 낙엽을 실컷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잘 가거라, 나의 가을이여! 는 아니더라도 이별 예식 같은 것도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오늘 아침엔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웠다. 건너편 신호등 앞에 겨울옷 입고 잔뜩 웅크린 어깨들이 펭귄 같다. 


이제야말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계절이다. 따뜻한 커피를 앞에 놓는 일이 잦을 것이다. 나와 마주 앉은 타인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카페가 우후죽순 생긴다. 그만큼 서로 소통이 필요한 시대인가. 커피 마시는 일이 문화가 되었을 만큼 이제는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커피를 앞에 놓고 앉은 순간만이라도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오늘은 밖에 나가 커피 마실까? 그러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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