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53
바람 끝이 달라진 이후로 그동안 미뤄 두었던 산책을 하기로 세웠던 계획이 여러 날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위는 핑계에 불과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나 자신에게 늘 부채감을 느끼는 것이 운동이다.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가장 취약한 지점에 내몰아(언제나 운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맨 끝!) 방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다지 나를 아끼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작정하고 산책에 나선 날, 대지는 이미 다채로운 색깔로 변해 있다. 유난히 빨리 잎을 떨어뜨리는 벚나무의 휑한 모습을 보니 조급한 마음이 인다.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초롬한 하늘을 보니, 꼼짝없이 가을이구나 싶어서 주변의 사물에 애틋한 시선을 보낸다.
질서 정연한 듯한 코스모스 군락지는 장난기 많아서 뜯어말려도 소용없이 땀 뻘뻘 흘리며 뛰노는 악동들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며 가는 허리가 자지러지도록 들까불고 있다. 담황색으로 익어가는 들녘의 벼들은 또 어떤가. 잦은 비로 인하여 어느 논의 벼들은 모조리 쓰러져 누워 있고, 추석에 먹을 햅쌀 수확을 마친 논이 군데군데 비었다. 뜻도 없이 재촉해 대는 성미 급한 사람을 보는 듯 생경하다. 늦도록 피어 있는 진홍색 나무 백일홍꽃이 빛을 잃고 너울거리는 옆에서 청년의 모습을 한 억새의 고개가 빳빳하다. 제 세상 만났다는 것이다. 계절은 단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풍경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을 옆에 두기 시작하면 으레 내 가을의 시작이다. ‘산책은 말입니다. 활기를 찾고, 살아 있는 세상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없으면 나는 한 마디도 쓸 수가 없고, 아주 작은 시도, 운문이든 산문이든 창작할 수가 없습니다. 산책을 못 하면 나는 죽은 것이고, 무척 사랑하는 내 직업도 사라집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산책이야말로 나를 윤택하게 하는 일임이 분명한데도 늘 뒷전이다.
동네를 산책하는 일과 공원을 산책하는 일, 변두리 들녘을 산책하는 일은 조금씩 그 결이 다르다. 동네엔 사람이 있고 생활이 있어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나란히 어깨를 견줄 수 있다. 지난여름은 몹시 더웠으며, 가을이 그렇게나 더디 오더니 가을장마처럼 툭 하면 비가 내려, 햇볕 볼 일이 갈수록 귀한 일이 된 것 같다며, 그동안의 안부를 대신 하는 게 동네 산책이다. 공원 산책은 늘 비슷한 코스다. 그게 그거인 것 같아 때로 놓치는 풍경이 있을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한꺼번에 모아 놓은 장소를 한 바퀴 휙 바쁘게 걷는다. 약간의 의무감이 동행하는 산책이어서 운동에 가깝다. 들녘의 산책은 단연 산책의 백미로 꼽는다. 그러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내놓고 자랑할 일이 아님에도 들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낀다. 어릴 적 익숙하게 보았던 풍경이어서인지 모르나, 계절을 받아들이고 있는 들녘을 보면 무해해진다. 저절로 되는 일 없어서 농부의 수고와, 계절 손님인 햇빛과 바람과 비를 잘 받아들인 것들의 결괏값은 가히 탁월한 넉넉함을 베푼다.
대지의 모든 녹색이 점점 그 색깔을 바꾸면서 노란색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보는 일은 경이롭다. 엽록소의 분해 과정을 알면서도 자연현상의 신비로움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특히나 가을의 들녘에 서면 그렇다. 벼가 익어가는 과정의 스펙트럼은 극적이다. 누군가 밤에 몰래 나와 색깔 놀이를 하고 간 듯 쓱, 바뀌어 있는 들녘의 파노라마를 보는 일이 내내 즐겁다.
개여뀌의 살랑거림과 강아지풀의 어리광, 수확을 기다리는 서리태 콩 줄기에서 떨어진 잎이 발길에 차인다. 이맘때의 논에서 ‘피’라는 이름을 가진 잡초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벼가 초록으로 자랄 때는 닮아서 보이지 않다가 벼가 노랗게 익으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에는 논에 ‘피’가 많으면 게으른 농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이웃 눈을 의식해 번번이 ‘피’ 제거하는 일, 즉, ‘피사리’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우뚝하게 솟아있는 ‘피’를 보니 어릴 적 농부들이 허리 숙여 ‘피’를 뽑거나 잡초를 골라내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산책이 끝나간다. 저 뚝 멀리서 노란색의 돼지감자꽃이 화사하다. 돼지감자의 울퉁불퉁한 생김새와 달리 꽃이 참 예쁜 돼지감자꽃이다.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의 들녘 산책은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한 발짝 나섬으로써 비로소 산책은 시작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이 무한한 공짜를 열심히 누려야 계절을 잘 살아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