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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선 - 전어

보통날의 시선 54

by 호랑
보통날의 시선 54 전어 그림.jpg


추석 연휴 중에 동생들과 전어 회무침을 먹으러 부안으로 향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했다. 작년에 맛있게 먹었던 집을 떠올리며 가는 길은 모처럼 나온 쨍한 햇살로 눈이 부셨다. 양옆으로 새만금방조제를 끼고 달리는데, 명절에 맡았던 들척지근한 냄새들이 모조리 날아가는 듯하다. 10여 일의 긴 연휴가 지루하다고 여겨질 즈음이었으니 딱 맞춤한 외출이라 할 수 있다.


군산에도 전어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으나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여서 좀 멀리 나가지 싶었던 길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더구나 요즘 한창 제철인 전어를 먹으러 간다는데 기꺼이 나설 수밖에 없잖은가.


몇 년 전만 해도 전어를 먹지 않았다. 가시가 많아서 씹히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여행지에서 노릇노릇 잘 구운 전어구이를 맛본 후로 전어 맛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전어는 여름과 초가을에 나오는 것이 연해서 뼈째로 먹기 좋고 가을이 무르익으면 억세진 뼈를 발라내고 먹으면 된다. 뼈 씹는 게 좋은 사람들은 그냥 먹는 맛을 최고로 친다. 적당한 시기를 알고 먹어야 했는데 괜히 전어 탓을 한 셈이다.


수산시장에 나가 보면 대부분 전어 찾는 사람들이다. 물론 대하나 꽃게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많다. 모두 가을에 먹을 수 있는 제철 수산물이기 때문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전어는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기, 박대, 가자미도 구워 먹어 봤으나 풍미로 치자면 단연 전어의 고소함을 따를 수 없다. 그 고소함은 상급이다.


‘서해안에선 8월 말부터 전어 철이 시작된다. 특히 개흙을 먹고 사는 전어는 갯벌이 잘 발달해 있는 보성 득량만 일대, 부안 곰소만 일대, 군산 · 김제 ·부안 일대의 새만금 갯벌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전어를 실으러 온 차들이 포구에 즐비하게 대기한다.’라고 한다.


‘개흙은 갯바닥이나 늪 바닥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흙으로, 유기물이 뒤섞여 있어 거름으로도 쓴다. ‘개흙 밭’은 보통 개펄을 말하는데, 서해안이 가장 많아, ‘한국 총 갯벌 면적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갯벌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과 이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악전고투가 곳곳에서 일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추석 명절 연휴에다 전어 철이어서 많이 바쁘셨겠어요.”라고 물으니 횟집 이모님은 손을 내두르며, “어제는 점심 먹을 새도 없이 손님이 몰려왔어요.”라며 즐거운 노동을 내세운다. 힘드셨겠으나, 무엇이든 한철이다.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다. 조물조물 손으로 직접 무쳐온 전어회무침은 때깔부터 한몫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전어 무침회 접시 앞에 휴대전화가 몰린다. 오늘, 이 순간 가을의 전어 맛과 햇살, 변산 격포항의 갯바람을, 그리고 함께 한 시간을 기록한다.


제철에 나오는 것들을 챙겨 먹는 일은 특별히 맛에 일가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계절을 느끼고 그 계절이 주는 특혜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사실 그러기에도 바쁘다. 계절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럼에도 몇 가지는 꼭 챙겨 먹는다. 그중 하나가 전어 철에 전어를 먹는 일이다. 철마다 잊지 않고 나오는 것들은 우리를 경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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