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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n 10. 2021

노지 딸기 맛을 잊는다


 우리 집은 원예농업을 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집이었기 때문에 토마토며 수박, 참외, 오이, 배추, 무, 상추 등은 원 없이 보고 질리게 먹으며 자랐다. 


 집에 없는 고추나 가지, 아욱, 쑥갓이며 시금치 등은 이웃과 서로 바꿔 먹기도 했다. 심지 않은 작물 중에 딸기가 있었는데, 내 집에 없으니 언제나 귀하고 궁했다. 


 어느 해부터 몇 포기의 딸기가 밭 가장자리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저절로 난 것이 아니라면 아마 아버지가 종묘사에서 사다 심은 것이겠지. 크지도 적지도 않은 딸기밭이었으나 동생들이 여럿이다 보니 빨갛게 익은 딸기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익기 바쁘게 누군가의 손길에 따지기 일쑤였는데, 물론 언제나 동생들이었다. 


 내가 온전히 익은 딸기를 따 먹을 수 있는 때는 대체로 토요일 오후였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는 때여서 공부를 마친 동생들이 친구들과 노느라 늦게까지 오지 않아 딸기는 내 차지가 되었다. 


 비닐하우스가 아닌 바깥에서 자라는 딸기는 제철에 나오기 때문에 5월에서 6월이 다 지나도록까지 따 먹을 수 있었다. 자잘한 딸기에서 나는 향이 약간의 더운 공기와 섞여 농익은 냄새를 훅, 풍기면 머리가 아득해졌다. 초여름 햇살이 얹힌 딸기는 물컹한 듯 단단했다. 겨울과 봄을 통과하며 익힌 맛이라 그 어떤 과일의 농도보다 진한 맛을 선사했다.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따 먹는 딸기 맛을 어디에 비유할까? 딸기 잎을 이리저리 살살 젖히며 살피다가 뒹굴 듯 혼자 익어가고 있는 딸기의 분홍빛 섞인 모습을 본다.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어린 영혼의 열망이 보이곤 했다. 향긋함이 퍼지는 딸기밭에 내가 앉아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가느다란 줄기 끝에 달린 딸기를 똑, 소리 나게 따서 후, 먼지를 털고 그대로 입안에 넣는다. 달큼한 것이 물큰하게 터지며 입안 가득 채우면 세상 부러운 것 없는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지금이야 끝물 딸기를 모아 주스도 만들고 딸기 잼이나 딸기청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지만 당시에는 먹기도 아까운 것 가지고 이것저것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더는 딸기가 열리지 않고 뒤늦게 열린 연녹색의 딸기가 더디 익거나 하면, 여름의 한가운데다. 줄기와 잎도 진한 녹색으로 거칠어진다. 실컷 따먹은 딸기를 뒤로 하고 이제 다른 맛을 기웃거리며 딸기 맛의 기억을 거둔다. 그제야 또 한 계절이 성큼 저만치 가버린 것을 실감한다.


 과일 가게에서 사는 딸기 맛은 어찌 가게마다 맛이 다 다르다. 그래도 당도는 예전에 노지에서 따 먹던 맛보다 더 달고 맛있다. 당연히 예전 맛은 아니다. 그러나 단맛에도 고급스러움이 있다면 나는 예전의 딸기 맛을 적극 지지한다. 예전 맛을 아니까 요즘 맛과 비교가 가능하겠으나, 과일 본연의 맛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조금 아쉽고 그립다. 


 딸기가 그 맛이 그 맛이지 뭐 다른 게 있을까 싶으나,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익은 딸기의 맛을 알고 있는 한, 그 맛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여름이 오기 전에 먹어둘 끝물 딸기 한 상자 샀다. 맛보다 영양으로 산, 딸기다. 브릭스에 맞춤한 딸기가 나오는 세상에 새삼 노지 딸기에 연연해할 필요 없다. 노지 딸기의 맛일랑 이제 잊어야 하나. 맛도 과학을 따라가는 시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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