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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n 03. 2021

달그락거리는 수수꽃다리 신혼



 “싸우지 마라. 습관 된다!”


 엄마는 신혼을 보내고 있는 딸에게 가끔 전화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 안다는 듯, 안 봐도 빤한 일이라는 듯, 전화를 끊을 때마다 차차 나아질 것이란 말을 했다. 


 신혼, 많이 싸우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싸우고 갈등하고 번민한 시절이었다. 서로의 낯선 정서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 다시 말해 결혼 전 각자 살아온 삶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이 내게는 신혼이었다. 


 주인집에 세 들어 사는 집이 네 집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앞집에 사는 민이 엄마는 그릇 씻기 대장이었다. 하루 삼시 세끼, 날이면 날마다 그녀는 수북하게 그릇을 쌓아 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즐거울 때 하는 설거지와 화가 났을 때 하는 설거지가 달랐음은 물론이다. 틀어놓은 수돗물은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나는 그녀가 하는 설거지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마음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곤 했다. 


 주인집 현관 앞에 있는 수도 외에 마당 가로질러 대문 옆에 있는 수도는 중년의 부부와 이제 막 신혼을 시작한 내가 쓰는 수도였다. 크기도 그렇고 모양새도 볼품없어 농사짓는 주인댁에서 허드레로 만들어 놓은 수돗가라고 보면 되었다. 크기가 작다 보니 중년의 부부는 주인집 수도를 더 많이 썼다. 그래서 작은 수돗가는 내 차지나 마찬가지였다. 


 시멘트 바닥에 수도 달랑 한 개, 배수는 잘 되었으나 조심스럽게 한다고 해도 그릇의 밑바닥이 긁히기 일쑤였다. 시골이라 동네 사람들이 툭하면 주인집을 드나들었는데, 밖에서 설거지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부끄러웠다. 한숨 쉬며 고개를 들면, 수돗가 가장자리 흐드러지게 핀 수수꽃다리가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서너 살 된 그녀의 딸아이가 다가와 저도 쪼그리고 앉아 묻곤 했다. 


 “언니야! 뭐 하는데?”


 일 년 후면 집이 생긴다는 기대감이 나를 버티게 했다. 신혼을 시작한 곳은 작은 읍이었고, 남편이 살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빼도 십 리는 멀리 내뺐을 것 같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결혼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일 년의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방 한 칸에 코딱지만 한 마루 한 개, 구멍 숭숭 뚫린 부엌과 재래식 화장실, 그리고 수돗가. 어찌 남편은 그런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형편없는 곳이었으나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좁은 방을 벗어나면 바로 논이 있고 산등성이에 밭이 있고 과수원, 사슴 농장이 있었다. 남편하고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곳에 올랐고, 엄마가 한 말을 새겨보곤 했다. 그래, 싸움도 습관이겠지. 그런데 어찌 싸울 일만 생겼던 것일까? 한 오 년 힘껏 싸우고 나니 힘에 부쳤는지 치열했던 싸움도 얼마쯤 시들해진 계기가 있었는데 남편이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어떻게 30년 살아온 삶을 결혼 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하느냐. 서서히 조금씩 살면서 바꾸자!”  


 나는 이 말을 무슨 화두처럼 여기며 살았다. 바꾸려고 했던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또 그게 안 되고, 그건 아니라고 여겼던 수많은 시행착오가 난무하던 신혼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수수꽃다리 나무 아래서 그릇을 씻고, 입덧할 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감자를 씻고, 두 사람의 수저를 씻었다.


 수수꽃다리 자잘한 꽃을 보면 어김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금 가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살피며 결혼 생활을 꾸리던 풋내기 어린 신부가 보이고 거기, 보랏빛 신혼이 수수꽃다리로 머무는 곳.


 은유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싸울 때마다 투명해’졌고, 그 무렵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기에 수수꽃다리는 여전히 내게 신혼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꽃으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싸우며 산다. 그때와는 다른, 이제는 서로의 성향이 엇갈리는 부분에서 부딪치곤 한다. 어쩔 거나 이 싸우는 습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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