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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l 11. 2021

해바라기와 나


이탈리아 영화 ‘Sunflower’에 나오는 배우 ‘소피아 로렌’을 보기 위해 소극장을 여러 번 찾았던 시절이 있었다. 빗줄기 내리는 듯한 선명하지 않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던 ‘헨리 맨시니’의 ‘Loss of Love’ 주제 음악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음악이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눈이 부신 햇살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에도 소피아 로렌의 오열이 영화관 밖으로 따라오곤 했다.


 온몸을 흔들며 맘껏 울고 있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뭔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더욱 치열하게 살겠다는, 어떤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읽혔다고나 할까? 이후로 우는 여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녀 ‘소피아 로렌’이 떠오르곤 한다. 


 우크라이나 벌판 가득 노란 해바라기밭이 펼쳐지고 어렵게 만난 연인‘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안토니오)를 두고 떠나오는 기차 안에서 소피아 로렌(지오반나)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오열하는데, 이상하게 그녀는 해바라기와 참 잘 어울렸다. 큰 키에 가무잡잡한 얼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커다란 눈과 입에 묘하게 끌려서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소극장을 찾고 또 찾았다. 


 시내 소극장에서는 같은 영화를 일주일에 몇 번씩이라도 다른 영화와 끼워서 상영했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만 찾아볼 수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도 그녀의 실루엣은 컸다. 몇 번을 본 영화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과 소피아 로렌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나에게 해바라기는 소피아 로렌으로부터 온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결혼을 하자마자 러시아로 끌려간 남편을 찾아 나선 길, 그 먼 길을 사진 한 장 들고 물어물어 찾았으나, 남편은 이미 다른 여자와 삶을 꾸린 상태였고 아이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전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편을 두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오열에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옛 아내를 찾아온 남편 ‘안토니오’를 망설임 끝에 겨우 만났으나 그때는 이미 ‘지오반나’도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었다. 두 연인은 결국 서로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바라기를 보면 키 큰 여자의 고독 같은 것이 함께 떠오르는데 스무 살 무렵에 본 이 영화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햇살 속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그 풍경에 소피아 로렌을 좋아했던 내 스무 살 무렵이 노랗게 너울거린다. 


 해바라기꽃에 눈길이 간다. 주체할 수 없는 생의 열망을 촘촘하게 담고 태양을 맞받아치는 노란 의지(意志) 같은 꽃이 가끔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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