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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Jul 14. 2021

수박과 우리 집

 남편이 퇴근길에 수박 한 통을 사 왔다. 자주 가는 과일가게에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수박을 샀기 때문에 곧바로 시원하게 먹을 수가 있었다. 몇 조각 먹고 나니 더위가 어지간히 가신다. 


 수박은 선풍기 앞에서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한다. 선풍기를 회전 시켜 놓고 앉아 수박을 깨물면 마치 선물인 듯 바람 한 줄기가 더운 뺨을 스치는데, 그 스치는 바람결에 묻어나는 여름의 열기는 대체로 견딜 만하고, 내가 어릴 적 원두막에서 먹던 수박 맛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수박과 여름은 함께 간다.


 에어컨 앞에서 먹는 수박은 그다지 운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운 여름 시원하면 그만이지 웬 운치 타령인가 하겠으나 수박을 먹는 옛날 방식의 추억이 내게는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수박 농사를 지었다. 몇 덩이 따 먹을 요량으로 심은 게 아니라 가족의 생계가 달린 농사였으니 어지간히 수박을 많이 먹기도 했으나 잔심부름도 많았다.


 수박 농사는 일이 참 많았다. 모종 심는 일부터 순 따주는 일, 물 주는 일, 거름 주고 소독하는 일, 풀이 나지 않게 덩굴 밑에 지푸라기를 깔아주는 일까지 일이 끝이 없었으나 수확 철에 비하면 사실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박밭에는 으레 원두막이 지어졌는데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수박을 지키는 일이라기보다는 수박 순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다 동네 아이들이 수박 서리를 하러 왔다가 수박만 잘 따가면 되는데 급하게 따가느라 수박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여서 부득이 수박 수확이 끝날 때까지 밤마다 원두막에서 보내야 했다. 


 말이 지키는 일이지 ‘지키는 사람 열 있어도 도적 한 놈을 못 당한다’는 말처럼 그저 원두막에 사람이 있다는 정도의 잔기침만 보내는 일인데 우리는 사촌 오빠를 따라 밤이면 소풍 가듯 원두막으로 향하곤 했다. 


 우리가 웃고 떠드는 사이 밭 끄트머리에서는 누군가 더듬더듬 통통 두드리며 잘 익은 수박을 고르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나 여름 한 철 우리의 수박 지키기는 나름 의무감을 부여받은 심부름 중 하나였다. 


 다시 그런 밤들을 보낼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이따금 손전등을 휙 수박밭을 향해 비추고 나면 그만이었던 수박 지키기.


 어둠을 고스란히 맞으며 풀벌레 소리를 듣던 밤과 원두막에 친 모기장 안에서 동생 누군가는 새근새근 코를 골며 자기도 했다. 


 밤하늘에 쏟아지던 별과 붉은 살을 익혀갔을 수박의 시간을 어렴풋이 느끼며 나 또한 성장을 다졌으리라. 


 수박의 수확이 다 끝나갈 무렵이면 원두막의 밤도 선득선득하고 초가을 밤을 예고하는 온갖 풀벌레가 시끄럽게 구는데, 그 무렵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었다.  바로 넷째 동생의 생일이었다. 


 지금도 식구 중 누군가는 꼭 짚어준다. 넷째의 생일은 수박 끝물 때라고. 그래도 수박은 실컷 먹고 생일을 맞으니 다행인가 싶었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이것저것 과일은 흔전만전 먹을 수 있었던 우리 집이었으니 말이다. 


 몇 덩이의 수박을 먹고 나면 여름이 간다. 온갖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싫다가도 막상 여름이 가면 그래도 여름이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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