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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Aug 19. 2021

자두 이야기

 내게는 잊지 못할 자두 이야기가 있다.


 얼마 전에 단골 과일가게에 들러 자두 가격과 맛을 여쭈니 아직 이르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니 조금 더 있다 먹어야 맛있다고 다른 과일을 추천했다. 내가 생각해도 막 먹기 좋은 자두를 만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더 맛있는 자두를 위해 며칠 참기로 한다. 그러나 자두는 오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제맛을 즐기기 어렵다. 자두는 설익어도, 너무 푹 익어도 맛이 나지 않는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노랗게 익은 속살에서 후룩, 과즙이 흐르며 적당히 단단한 것이 자두의 맛이라 생각하며 먹는다.


 자두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신혼 초였다. 주인집에는 자두나무밭이 있었다. 마당 가로질러 장독대 지나면 밭이 나오고 그 밭의 끝 낮은 언덕을 오르면 자두밭이었는데 자두가 익기 시작하는 칠월 초가 되면 향긋한 자두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자두나무 사이를 걸으며 붉게 익은 자두 한 개를 따서 쓱 옷자락에 닦는다. 그리고 바로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붉은 과즙이 흘렀다. 아니 정확하게는 붉은 과즙이 아니다. 껍질은 붉으나, 과육은 노란색이었는데 향긋한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몇 개인가를 따먹고 내려오면 주인집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말씀하신다. 


 “자두 많이 따 묵었나. 실컷 따 묵으라. 지금이 젤 맛있다 아이가!”


 우리하고 마주치기만 하면 자두 따 먹으라며 손짓하던 할머니였다. 사실 우리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부터 산책하러 나가면 자두밭을 눈여겨보다가 붉은빛이 나는 자두를 슬쩍 따 먹었는데 너무나 신맛에 다 먹지 못하고 버리곤 했다. 무엇이든 다 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저절로 익히게 된 셈이다. 


 아마 할머니는 모를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두를 따 먹고 내려왔는지. 자두로 배를 채웠다고나 할까? 사실 자두의 크기가 대단해서 세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으니 둘이 합쳐 족히 일곱 개 정도는 먹었다. 이렇게 몇 번인가 자두밭을 오르내리다 보면 여름이었다. 땡볕에 과수원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을 즈음이면 자두도 끝이 나고 잎만 무성한 자두밭을 볼 뿐이었다. 


 한 해 여름을 나고 이듬해 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가다 주인집 과수원을 지나치면 저절로 군침이 돌며 그해 여름 한 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누가 있어 내게 자두 실컷 따 먹으라는 말을 건넬까? 멀리서 시집온 전라도 말을 쓰는 새댁에게 경상도 할머니는 무척이나 살갑게 대해 주셨다. 그 후로 한두 번 찾아가 인사를 드리다 이런저런 핑계로 오랫동안 가지 못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역을 아예 떠나왔다. 


 자두가 나오는 초여름이면 주인집 할머니 생각이 나고 자두를 따 먹던 신혼 시절이 떠오르니, 이만하면 내 자두 이야기는 충분히 달큼한 추억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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