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산등성이 진달래를 찾아 고개를 길게 늘이곤 한다. 등성이마다 진달래가 붉게 번져 어우러져야 비로소 봄인듯하다. 화려한 색깔하고는 거리가 있고, 특별한 향을 지닌 것도 아닌 진달래는 수수한 그 여린 꽃잎 하나로 온 산과 봄을 증거 한다.
시골 부모님 사시던 집 뒤꼍 텃밭을 오르는 언덕에 한 그루의 진달래가 있었다. 무심한 듯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겨울을 살다가 어느 날 마른 가지에서 연분홍 꽃봉오리가 대지의 봄을 기웃거리며 인간의 삶 쪽으로 제 몸을 기울이면 그제야 사람들은 진달래에 눈길을 주며 ‘거기 네가 있었구나’ 새삼 주변을 돌아본다.
있는 듯 없는 듯 참 조용하게 피는 꽃 중의 하나가 진달래꽃이다. 꽃은 휠 것 같은 여름의 고독한 열기를 견디고 가을의 쓸쓸함을 다독였고 시린 겨울을 진득하고 성실하게 견디며 지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기 때문에 그 어느 꽃보다 곤궁한 세월을 견딘 사람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꽃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는데 진달래색 한복을 입고 찍은 어느 어르신의 사진 한 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까닭은 바로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예쁘다고 여겼던 시절의 엄마가 입었던 한복이 바로 저 진달래색 한복이었기 때문이다. 진달래색에 반짝이가 살짝 들어간 한복을 엄마는 집안의 경사가 있거나 자식들의 입학식 날, 혹은 투표하러 갈 때 차려입곤 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던 그 순간이 어쩌면 유일하게 엄마만의 설레는 기분과 한가로움을 느꼈던 아주 잠깐의 시간은 아니었나 싶다. 집은 언제나 다섯 아이와 농사를 거드는 동네 삼촌, 아저씨 아줌마들로 어수선하게 붐볐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한복 색깔이 한없이 좋았다. 넓은 치마 안을 드나들며 동생들과 숨바꼭질도 하고, 깔깔한 촉감이 좋아 만지작거리기도 했으며,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색깔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꾸만 엄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곤 했다.
엄마는 진달래 같았다. 또 그런 삶을 살았다. 삶에 투정이 왜 없었을까만, 엄마는 묵묵히 살아냈다. 존재감 없는 듯 조용한 삶을 살았다. 농사일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별말 없이 그 많은 일을 치렀고, 땀으로 젖어 쉰내 나는 속옷을 어두운 우물가에 앉아 빨았다. 이미 밤이 되었으나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늦도록 부엌에서 들려오는 그릇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어김없이 아침은 오고 잠결에 엄마의 도마소리를 아득하게 들으며 나는 이불깃을 끌어올렸다. 다시 잠으로 빠져들거나 그런 엄마를 담보로 내 미래를 뒤척이곤 했다.
이제 와 새삼 “엄마, 투정도 좀 하고 살지 그랬어!” 말해주고 싶으나 이제 세상에 없는 엄마가 되었으니, 엄마 생각이 나면 눈물만 지을 뿐이다.
돌아가시기 전 해의 봄이었던가. 큰사위가 “어머니 꽃구경하시게요, 오늘이 절정인 것 같아요.” 하며 멀리는 가지 못하고 엄마가 오래 보아온 ‘전군가도(번영로) 벚꽃 백릿길’ 드라이브를 나섰다. 지아비를 잃은 지 두 번째의 봄을 맞는 엄마 나이 여든일곱의 봄날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그야말로 시내는 꽃 축제나 다름없이 화사하고 고왔다. 감탄과 환호성을 지르며 “엄마 저 꽃 좀 봐. 잘 보이지! 진짜 곱네.” 연신 들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벚꽃을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엄마의 삶도 이렇듯 꽃같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닌가. 늙어가는 한 여자의 삶의 봄날이 한없이 아쉬워, 문득 이 봄날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엄마 어렸을 적 국민핵교 다닐 때 벚꽃이 쌀이라면 우리 동포 굶지 않겠다고 글을 적었는디, 잘 썼다고 상을 주더구나.”
차 안에서 엄마는 무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엄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왜 더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 살았을까. 엄마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맘껏 펼쳐 볼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손주들에게 슬며시 용돈을 주면서 꼭 했던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바로 “책 사 보아라!”였다.
엄마도 가슴 안에 꼭꼭 숨겨 놓았던 분홍빛 꿈이 있었을 텐데. 펼쳐 보지도 못하고 아내로, 엄마로서만 살아낸 것 같다. 엄마에게도 따뜻한 봄날이 있었기를 바랐다.
봄이 오면 진달래 피는 산과 들녘을 향해 소리 내어 엄마! 하고 외쳐 보고 싶다. 비록 메아리 되어 되돌아올지라도 그동안 부르지 못했던 엄마를 실컷 부르고 싶다. 분명 엄마는 그 조용한 눈빛을 하고 마른 가지 같은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바람에 조용히 나부끼는 진달래처럼. 그리고 메아리를 향해 힘주어 말하고 싶다.
“엄마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엄마 때문에 많이 행복했어.”
세상에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엄마의 자명한 사랑처럼 봄이 오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핀다. 엄마 닮은 진달래 피는 봄이 내 곁에 있으니 이제 눈물을 거두고 봄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