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네그레이라에서 올베이로아(36km)
2019년 6월 26일(수)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30km가 넘었다. 어제 자기 전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 잤는데 그래서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넓은 알베에 묶었던 순례자들은 10명 정도였다. 짐을 싸는데 일본 여성이 오늘 올베이로아까지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다면서 따라나선다. 아마도 이른 아침 혼자 걷기에 꺼림칙했던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켜져 있는 가로등만으로는 노란색 화살표 찾기가 힘들었다. 지도를 보면서 가니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이 보였다.
성문처럼 생긴 출구에는 동상이 하나 있었다.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바지를 붙잡는 어린아이의 팔이 창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뒤편으로 가니 아내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바지를 잡은 어린아이의 나머지 한 팔은 엄마를 잡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우두커니 동상 앞과 뒤를 몇 번이고 보았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얼까?
순례길은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이어졌다. 430m 정도까지의 오르막은 빌라세리오 못미처까지 이어졌다. 하늘은 금세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회색이었다.
9시가 넘어서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는 비 때문에 배낭이 젖지 않을까 싶어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갔다. 파사이아 공동체에서 얻은 커다란 비닐로 배낭을 감쌌다. 옆에서 지켜보던 순례자가 중얼중얼거린다.
배낭을 감싸고 인사를 나누었다. 워싱턴에서 온 남자는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끝냈어야 했는데 왜 여기까지 걸었는지 자기가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당신 생각과 같다고 말하려다 그냥 웃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그렇다고 해서 걷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빗줄기가 좀 가늘어졌다 싶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빗줄기는 다시 굵어졌고 바람까지 불어서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좌우로 넓은 초지를 관통하는 도로여서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2시간을 그렇게 걸었다. 내리막길 끝에 알베와 식당이 보였다. 따뜻한 온기가 퍼져있는 식당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커피와 케이크로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제공하며 몸도 말렸다.
430m까지 올라간 길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큰 고도 차이 없는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했다. 다행히 비바람은 식당을 나온 지 20여분 만에 그치고 파란 하늘로 얼굴을 바꾸었다. 유럽 날씨 정말 변덕스럽다더니 이후에 내리쬐는 태양에 젖었던 옷과 신발이 언제 젖은 적이 있냐는 듯 말랐다.
길에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피스테라까지 가는 순례자들도 이따금씩 만났고 피스테라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도 만났다. 산티아고까지 오는 길에서 만난 숫자에 비하면 가뭄에 콩 나듯 이였지만 만남은 참 반가웠다.
늦은 점심을 길가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다. 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졌고 2차선 좁은 도로로 접어드니 오늘 목적지인 올베이로아가 나왔다. 마을은 작았다. 알베가 있어서 들어가니 올베이로아를 얼마 앞두고 나를 앞서갔던 순례자가 있었다. 직원이 내 앞에 있는 순례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마지막이란다. 시설이 좋다 싶었더니 사립 알베였다. 세 번째이니 그리 겁날 것도 없었다. 공립알베를 찾으면 되었다.
지도를 보니 공립 알베는 바로 뒤편에 있었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좋은 침대는 다 차지하고 있었다. 빨래까지 다 끝냈는데 몇 번 스치며 인사를 나눈 여성 순례자가 다른 곳에도 침대가 있다고 알려준다. 따라가 보니 짐을 풀었던 곳보다 좋았다. 처음 짐을 풀었던 곳은 너무 습했기에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침대 위를 보니 장애인을 위한 자리였다. 다시 위층에 짐을 옮겼다.
햇볕이 좋아서 마을 구경을 했다. 10분 정도에 마을 한 바퀴를 돌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가장 번잡한 곳은 사립 알베였다. 다양한 나라의 순례자들이 늦은 오후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알베 정문에는 오레오가 있었다.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인데 갈라시아 오레오는 다른 주 오레오에 비해 길이가 길고 폭은 좁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레오에 십자가가 장식되어 있었다. 마을 구경을 끝내고 돌아와 발바닥을 보니 굳은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뜯어도 되겠다 싶어서 정리를 했다.
공립 알베 옆에는 외양간이 있는지 소들이 울어대고 있었다. 저녁에 시끄럽겠다 싶었는데 소도 잠을 자니 괜한 걱정을 했다. 저녁에 접수를 받으러 온 관리인이 오늘은 장애인 순례자가 없으니 아래층을 사용해도 된다며 짐을 옮겨도 좋다고 했다. 덕분에 위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이틀 뒤면 순례길이 끝난다. 48살. 적다고 하면 적고 많다고 하면 많은 나이다. 이 나이에 아프지 않고 35일을 걸었으니 주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문득 48살이란 나이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초임 군목 시절 두 분의 연대장님과 근무했었다. 두 분 다 불자였는데 종교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너무나 잘 대해주셨다. 계급으로 봐도 대령이고 나는 중위였다. 하지만 언제 라도 사무실 들어오라시며 자주 얼굴 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첫 번째 연대장님과는 1년을, 두 번째 연대장님과는 17개월 근무했다. 두 분은 늦게 대령 진급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지금 내 나이 아니면 한 살 어렸을 것 같다. 그때 봤던 연대장님들은 정말 커 보였다. 그리고 늙어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부대를 지휘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쓸어내리는 일들이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두 번째 연대장님 때는 사고가 많았다. 여러 사고가 겹치니 얼굴이 한순간에 할아버지처럼 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들이 잘 처리되어서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그 당시 마음고생을 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 부대의 최고 어른으로서 져야 했던 무게는 당시에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때 연대장님들 나이가 된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듬직한 사람인지 궁금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은 잘 감당하고 있는지도 나에게 물었다. 길은 이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하고 또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