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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인생 낙조를 보다

36일: 올베이로아에서 묵시아(34km)

2019년 6월 27일(목)


이른 아침 물안개가 세상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묵시아 가는 날이다. 컵라면으로 아침으로 먹고 길 위에 섰다. 안개가 자욱했다.  강이 있는 것을 산에 올라가니 알 수 있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 위로 물안개가 올라오고 있었고 그 안개가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혼자 걷는 줄 알았는데 사립 알베와  내가 잤던 알베 에서도 10여 명 넘는 이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피스테라까지 걷는 이들이 많구나 했다. 

쌀쌀한 날씨여서인지 걷는 동안 몸이 움츠러들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오 로고소 마을이 보였다. 입구에 알베와 식당이 있어서 커피를 먹으면서 몸을 녹였다. 이곳에서 묶은 몇몇 순례자들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고 있었다. 






30여분 걸으니 길은 오르막 도로로 연결되었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앞을 보니 갈림길이다. 왼쪽은 피스테라 오른쪽은 묵시아였다. 

나는 오른쪽 묵시아로 방향을 잡았다. 

같이 걷는 무리 중에 프랑스 친구 둘이서 사진을 찍는 것 도와주고 나도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같이 길을 걸었던 무리 10여 명 중 묵시아로 방향을 튼 것은 나뿐이었다. 대부분 피스테라에서 순례를 끝낸다. 그들 중에 소수는 묵시아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묵시아에서 피스테라로 가는 길에서 다섯 명쯤 만났다.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와 가까이 보이는 초지가 걷는 동안 길동무를 해주었다. 하지만 혼자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참 외로웠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보기에 좁고 험하며 찾는 이 매우 적어서~~”를 부르면서 내려갔다. 내리막길은 숲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도로를 횡단해서 숲으로 이어졌다.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숲길은 적당한 그늘을 제공해 주어서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 

나 혼자서 묵시아로 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시간쯤 걷다가 쉬고 있는데 내 뒤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성들도 오랜만에 인기척을 느꼈는지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두어 시간 두 명의 여성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는 길은 덜 외로웠던 것 같다.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기 싫어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퇴보할 뿐이다. 옳은 선택이든 그른 선택이든 삶에는 늘 선택의 갈림길이 수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선택의 몫은 오로지 내가 져야 한다. 

오늘도 묵시아로 꺾은 내 선택에는 외로움이란 결과가 뒤 따랐다. 하지만 여태까지 경험한 외로움의 시간은 나에게 좋았기에 잠깐의 외로움이었지만 오후 시간은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외딴집이 있었다. 커다란 철로 화살표 형태를 만들고 한쪽 면은 유리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빗살 조개와 순례자 모형이 있었다. 집주인의 솜씨인 것 같은데 쉬면서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집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다가 보이니 좋았다. 

오스 무인오스로 올라가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였다. 길은 내륙으로 이어진 삼거리로 이어졌다. 카미노 앱은 올베이로아에서 피스테라로 가는 여정만 굵은 선으로 안내해서 나는 지도와 지형을 살피면서 걸어야 했다. 직진하면 되겠다 싶어서 직진하니 오르막이다. 

사람이 걸을 수 있도록 보도블록 공사를 하는 오르막을 1km 정도 가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택단지가 조성되는 정상에서 앞을 보니 하늘색과 같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6월 9일 세브라요에서 멀리 바다를 본 후 18일 만에 바다를 보는 것이다. 









18일 동안 산만 보다 걷다가 바다를 보니 정말 반가웠다. 반가움은 힘으로 이어졌고 얼마 남지 않은 내리막길을 부지런히 내려갔다. 내리막길 끝은 왼쪽으로 이어졌고 오른쪽으로는 해수욕장이 보였다. 뜨거운 낮이었음에도 일단의 젊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 알베를 찾아야 했다. 

묵시아. 바다 색깔이 참 아름다웠다. 

앞을 보니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길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두 번이나 했다. 만실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따라 가면 공립 알베에 가겠다 싶었다. 지도를 보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에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큰길에서 왼쪽으로 벗어나 오르막을 오르니 끝 지점에 공립 알베가 있었다. 사립 알베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젊은 순례자들이 들어가는 곳으로 나도 들어갔다. 

건물은 최신식이었다. 폴라 데 시에로 알베 보다도 더 좋았다. 친절하게 생긴 남자 관리인은 알베와 묵시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지도와 그림을 곁들여서 설명해주니 무슨 말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짐 정리와 빨래까지 끝내고 나니 16시가 넘었다. 내일 순례길은 마을 반대편까지 가야 한다는 말을 관리인이 해주었다. 내일 걸을 거리를 단축시키고 저녁도 먹을 겸 알베를 나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바닷가여서 인지 갈매기들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갈매기들이 하늘에서 싸 대는 똥들이 문제였다. 걷다가 주차한 차들을 보니 이곳저곳에 갈매기 똥이 떨어져 있었다. 이런 것에 익숙했는지 사람들은 그런 거에는 무관심한 것 같았다. 



묵시아의 순례길은 세 곳을 거쳐 간다. 세 곳은 묵시아 끝에 있는 코르피노 전망대 근처에 위치해 있다. 전망대, 돌 배, 마리아 기념 성당이다. 항구 끝까지 걸어가면 묵시아 등대가 나오고 왼쪽으로 마리아 기념 성당이 있다. 그 밑으로 돌배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 밑에는 구멍이 있는데 검색을 해보니 그 밑으로 통과하면 허리가 튼튼해진다고 많은 이들이 구멍을 통과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망대로 올라가면 돌 십자가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가면 편하다. 

코르피노 전망대.

항구 끝을 벗어나 길을 걷던 나는 왼편에 있는 오래된 성당을 보고 올라갔다. 거기서 화살표를 보고 바위 위로 나있는 길로 올라가느라 조금 고생했다. 

코르피노 전망대에 올라가서 바라본 대서양은 마음을 확 트이게 해 주었다. 파란 바다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누구의 파란색이 진짜인지를 겨루는 것 같았다. 

마리아 기념 성당.

세 곳을 둘러보고 항구로 다시 왔다. 식당들이 18시가 넘었는데도 문을 연 곳이 드물었다. 잠시 그늘에 앉아서 바닷가를 보면서 묵시아까지 온 여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바다를 바라보는 동안 내 앞으로 지나간 사람의 숫자는 다섯 명이 되지 않았다. 등 뒤로 넘어가는 태양 빛은 뜨겁지 않은 열기로 내 몸을 나른하게 해 주었다. 


19시가 되니 이곳저곳 식당이 문을 열었고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저녁을 먹고 알베로 왔다. 3층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였다. 탁자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음료수를 마시면서 여태까지 보고 왔던 바다를 또 바라보았다. 

21시를 넘어가니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들어갔던 젊은 순례자 2명은 또래의 순례자 2명과 커다란 와인과 과자를 가지고 올라왔다. 

잠시 뒤 다양한 인종의 순례자들이 의자를 끌고 와서 바다를 향해 앉았다. 서서히 넘어가는 낙조는 정말 장관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30여분 동안은 사진만 찍었다. 22시 10분이 돼서야 해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묵시아의 알베는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그곳에서 봤던 낙조는 인생 낙조라고 부를 만큼 멋있었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내일이면 피스테라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끝난다. 눈에 보이는 순례는 끝이 나지만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내 인생길은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출발이라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이 달라진 내가 걷는 길이기에 그 결과도 다를 것이다. 

길을 걸으며 들려주신 세미한 음성은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크고 확실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나는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믿기에 힘들더라도 중도 포기 없이 맡겨주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마지막 날로 가는 밤이지만 육체는 피곤해서인지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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