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마지막 날이다. 늘 맞이하던 아침이 왔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갈매기는 아침이 왔다고 알려주는 듯 시끄럽게 울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제 묵시아 맞은편 순례코스를 갔기 때문에 오늘은 알베 밑으로 난 길을 따라 묵시아를 벗어나 피스테라 가는 방향의 길로 걸었다.
도로를 따라 걷는 순례길은 평탄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은 밝아오는 태양 때문인지 뒤편부터 빨간색과 파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서쪽을 향해 걷던 순례길 은 왼쪽으로 꺾어지고 다시 산길로 이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늘이 없는 길을 걸어야 했기에 나무 그늘에서 선크림을 도배하다시피 노출된 부위에 바르고 걸었다.
198m 올라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9시쯤 가파른 언덕 앞에 도착했다. 67m에서 265m 올라갔다.
프리미티보 길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언덕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오르막이어서인지 정말 힘들었다. 뒤에 오던 두 명의 여성 순례자도 나와 같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고 있었다. 너무 평탄하면 야성을 잃는다.
이후로는 내리막길이었고 높지 않은 언덕을 세 개정도 넘어서 피스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반갑기도 했지만 힘들었다.
정오의 태양은 앞으로 더 뜨거울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침 점심을 먹으라는 듯 식당이 보였다. 더워서 입맛은 없었지만 길을 걷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야채 샌드위치와 얼음이 들어간 콜라로 점심을 먹으니 그나마 힘을 회복했다.
나는 평소에도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하루 세끼면 족하다. 군에 있을 때도 목양실 냉장고에 음료수나 간식거리가 있어도 거의 주일학교 아이들 차지였지 내 입으로 들어간 것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는 어쩌다 한번 먹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면서 정말 많이 마셨다.
순례길에서 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나는 언제나 콜라를 먹었다. 내 몸이 이렇게 콜라를 좋아했나 싶을 정도였다. 길을 걸으며 땀으로 범벅된 몸 안으로 콜라의 탄산이 들어갈 때의 쾌감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국해서는 그때 먹었던 그 맛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걸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도란거리는 우리말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국인 부부였다. 나보다 연장자로 보이는 부부도 나를 보더니 한국분이냐고 물었다. 10여분 부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부는 작년에 프랑스 길을 걸었다고 했다. 올해는 휴가가 짧아서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를 거쳐 묵시아까지 가는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대단하다며 나중에 프랑스길은 아내와 꼭 같이 걸어보라는 말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분이어서 참 반가웠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고 그늘 없는 길을 계속 걸었다. 눈앞에 바다가 보였다. 피스테라 근처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아직 멀었었다. 피스테라로 가는 도로가 보였다. 하지만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산의 5부 능선으로 이어졌다.
길게 이어진 순례길은 13시쯤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인 파로 데 피니스테라까지는 다시 3.2km를 가야 했다. 도심을 통과한 순례길은 완만한 오르막으로 파로 데 피니스테라까지 이어졌다. 가는 도중 보이는 표지석에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다음 모퉁이는 마치 라메사 갈 때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산모퉁이를 도니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가 보였다.
파로 데 피니스테라 십자가 탑 앞에서.
파로 데 피니스테라의 십자가 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백여 미터 걸어가니 km0.000의 표지석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옆에서 사진을 찍었듯이 나도 사진을 찍었다. 그 옆에 섰을 때 저 밑 모르는 곳에서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고 뒤편에 이어진 호텔과 등대를 지나 대서양이 보이는 넓은 바위 위에 앉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37일 동안 1,038km를 걸었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나서야 정말 가는구나 했다. 난생처음 밟아보는 바욘에서 대성당을 찾고 거기서부터 온전히 두 발로 걸어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 어렵고 힘든 여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이곳에 왔기에 난 걸어야 했다. 그렇게 걸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음성으로 나를 만나주셨고 어루만져주셨다.
옛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했던 곳에 왔다.
푸르른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37일간의 여정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갔다. 이게 뭐라고 내가 개고생 했나 하는 생각도 한쪽에서는 올라왔다. 하지만 고생한 내 발이 그리고 내 몸이 한순간에 물리쳤다. 지난 여정을 조금 더 묵상하고 싶었지만 하늘의 해는 그만하라는 듯이 나에게 뜨거운 태양열을 보내고 있었다. 뒤로는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 손님들의 함성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3.2km를 걸어 다시 피스테라로 왔다. 산티아고로 가려고 버스를 알아보았다. 많은 마을을 들려가는 버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산티아고 직행 버스는 저녁 늦게 있었다. 오늘은 피스테라에서 묶기로 하고 내일 아침 산티아고 직행 버스표를 구입한 뒤 바로 옆에 있는 공립 알베로 갔다.
알베 관리인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내 한국 여권을 보더니 알베르게 세요와 함께 참 잘했어요 라는 세요도 찍어주었다. 여기가 끝이냐는 물음에 난 자신 있게 “yes”라고 답했다. 관리인은 내 순례자 여권을 다시 들여다보더니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피스테라까지 걸어온 흔적. 마지막이 일품이다. 참 잘했어요!
알베 침대는 딱 다섯 자리 비어 있었다. 밑에 층에 짐을 풀고 빨래까지 끝내니 정말 순례가 끝난 것 같아 홀가분했다. 정말 기분 좋~~~~~~~다라며 하늘을 보고 웃었다. 아내도 정말 수고했다며 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대장정을 끝냈는데 무슨 감정 표현이 이리 짧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대단한 일을 했는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울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속이 참 복잡했다.
웃고 기뻐해야 하는데 무언가 하나를 끝내고 다음 숙제를 기다리는 그런 마음이 나를 찾아왔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끝이라는 생각과 무뎌진 칼을 갈아야 하는 부담감에 잠시의 웃음으로 순례의 끝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한가한 늦은 오후의 피스테라.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마침 오늘이 피스테라 음악 페스티벌이 있는 날이었다. 군데군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음악이 들려오는 골목으로 갔다.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건너편에는 거리의 악단 같이 보이는 밴드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귀에 익숙한 팝송을 부를 때면 나도 흥얼거렸다. 그 밴드의 노래가 끝나자 무대에서는 본격적인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정도 자리에 앉아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알베로 왔다. 23시가 되었는데도 노랫소리는 여전히 들렸고 나도 잠이 오지 않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 잠에 들었던 것 같다.